한국문학번역원 웹진 〈너머〉에서 주목한 통영 출신 재미소설가 김용익

한국문학번역원이 운영하는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가 소개한 통영 출신 재미소설가 김용익. /누리집 갈무리

한국문학번역원이 운영하는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diasporabook.or.kr)가 올해 여름호에서 통영 출신 재미 소설가 김용익(1920~1995)을 조명했다. 이 잡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이 2022년 11월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이주·이산) 문학을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창간했다. 이번 호에서 김용익은 <경계를 넘는 작가들>이란 코너를 통해 '김용익, 예술의 영토를 찾아 떠돌았던 영원한 이방인'이란 제목으로 소개됐다. 외국에서 주목받은 한인 디아스포라 작가를 소개하는 일종의 인명 사전적 성격을 띠는 코너다. 글은 정주아 강원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가 썼다. 그는 문학평론가로 현재 계간 <창작과비평> 비상임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용익은 통영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후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고 창작활동을 한 1세대 한국계 미국 작가다. 영어로 소설을 썼고, 그래서 국내보다 외국에서 '마술의 펜'이란 칭호를 얻을 만큼 유명하다. 2019년 통영에 있는 출판사 남해의봄날에서 그의 소설집 <꽃신>과 <푸른 씨앗> 두 권을 냈는데, 이 책에 실린 작가 소개를 보자.

"미국과 유럽 청소년들은 김용익의 소설을 읽고 자랐다. 그의 소설집 '행복의 계절(The Happy Days)'은 1960년 미국도서관협회 올해의 우수 청소년도서로 선정되었고, '푸른 씨앗(Blue in the Seed)'은 1967년 오스트리아 정부 문화상은 물론 덴마크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해녀(The Sea Girl)'는 미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며 깊은 인상을 주었다. 김용익의 대표작 '꽃신(The Wedding Shoes)'은 <하퍼스 바자>에 게재된 뒤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선정되어 <뉴요커>, 이탈리아 <마드모아젤> 등 유명 매체가 앞다퉈 소개하며 극찬했다."

 2019년 통영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 다시 출판한 김용익 소설집 두 권. /남해의 봄날

정 교수는 김용익이 '모어를 영어로 하는 한국계 작가들과 달리 학습한 영어로 소설을 쓴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어휘의 정확성이나 표현의 밀도 면에서 문학어가 일상어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감탄할 만한 일'이라고 적었다. 실제 김용익의 지난 인터뷰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가 많다. 정 교수는 김용익이 왜 하필 미국에서 작가가 되려고 했을까 하고 묻는다.

"김용익이 도미한 것은 한반도가 해방된 이후인 1948년, 그가 28세 되던 때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기는 했으나 한국인이기에 차별받고 쫓기던 시절은 끝났다. 그러므로 굳이 미국에서 영어로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한 그의 선택을 두고 이채롭다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가 1963년에 발표한 소설 '밤배(From Here You Can See the Moon)'에서 찾는다.

"어려서부터 수재로 소문난 장남을 편애하는 아버지 때문에 상처받은 차남의 이야기이다. 글공부보다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차남은, 예술적 자질을 인정받기는커녕 밥벌이는 그른 한심한 한량인 양 취급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시선에 위축된다. 허구적으로 가공된 소설이기는 하지만, 돈벌이와 무관한 예술적 재능을 아직은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사실일 것이다. 고향 땅과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작중 차남의 모습은 작가 김용익을 닮아 있다. (중략) 김용익의 미국행은 생존 경쟁과 이데올로기 다툼만이 최고의 관심사였던 가난한 땅에 태어난 예술가 지망생의 자발적인 망명으로 요약된다. 몸도 마음도 외롭고 가난했던 예술가 지망생에게, 우방국의 지식인을 포용하고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던 문화 냉전기의 미국은 기회의 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 김용익의 형 김용식(1913~1995)은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법조인, 외교관, 고위 행정관료, 정치인,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사회 단체장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

이 외에 정 교수는 김용익이 영어로 쓴 작품을 스스로 한국어로 번역해 발표했던 '이중어 창작'을 '장인의 집념'으로 설명했다.

"그의 예술가적 영혼이 형성된 고향 땅(통영)을 제재로 다루는 동안 영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오직 모어로만 살릴 수 있는 표현들이 너무 많이 생겨났다. (중략) 독자들에게는 낯선 작업이기는 하겠지만 그 다시 쓰기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것은 피조물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 내려는 꽃신 장인의 집념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통영시 태평동에 작지만 단아한 '김용식김용익기념관'이 있어 김용익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통영시는 매년 청마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과 함께 김용익소설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한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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