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가야의 춤을 상상하다
잊혀진 가야의 춤을 상상으로 복원한 창작 공연 <거북땅 태양의 왕국, 가야>가 지난 27일 오후 7시부터 성산아트홀 소극장 무대에서 펼쳐졌다. 이 공연은 예품무용단이 주관하고 창원문화재단이 주최했다. 예품무용단은 전통을 기반에 둔 창작무용과 현대 무용 중 하나인 컨템포러리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무용 단체다. 이번 공연은 경기도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 구미시립무용단에서 예술감독과 상임 안무자를 역임하고 현재 국립창원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노현식(51) 무용가가 총연출을 맡았다.
◇가야의 화려함과 어두움 = 먼저 가야의 화려함과 역동성을 표현한 무대 '가야의 혼'이 시작됐다. 무대 중앙, 허황후의 이미지를 따와 배꼽춤(밸리 댄스)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모둠북을 잡았다. 모둠북은 웅장한 소리를 내는 북이다. 그를 호위 무사처럼 둘러싼 이들이 북을 울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왕국 가야를 알리듯 묵직한 리듬이 반복됐다. '북을 치는 허황후'란 이미지는 가야의 다국적인 역사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리듬이 보다 경쾌해지자, 허황후는 북소리에 맞춰 배꼽춤을 췄다. 이국적인 배꼽춤과 전통적인 북은 각각 허황후와 김수로를 연상케 했다.
이어서 가야의 '어두운 부분'으로 순장 문화도 작품에 담았다. 구체적으로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소녀 인골 '송현이'의 삶을 한국 창작무용으로 표현했다. 송현이는 키 152.3㎝의 15~16세 소녀로 무덤 주인의 시녀로 살다가 주인이 죽으면서 함께 순장된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노 연출은 "꽃의 이면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며 "가야의 어두운 부분을 자극적이지 않게 이미지화해서 내용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춤"이라고 설명했다.
남녀 무용수 2명이 등을 맞대고 섰다. 한 명은 등을 구부리고 있고, 한 명은 그 등에 누웠다. 주인의 죽음을 짊어진 송현이를 떠올리게 했다. 13명의 무용수는 단체로, 듀엣으로 대형을 맞춰가며 입체감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무대 마지막에 모든 무용수가 송현이의 마음으로 바닥에 눕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겼다.
◇상상으로 빚어낸 과거, 미래의 현실로 = 공연의 핵심은 바로 가야의 춤(가야지무) 원형을 상상해 선보인 것이다. 실제로 가야 춤은 원형을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가야의 춤에 대한 설화가 기록돼 있다. 신라 문무왕 8년(668년) 때 국원(현 충북 충주)에서 15살 소년 능안(能晏)이 왕에게 가야의 춤을 받쳤다는 내용이다. 문무왕이 고구려를 점령하고 돌아오는 시기였다. 춤은 검무 형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검무는 전쟁 승리를 축하하고, 병졸들의 사기를 북돋고자 행해졌다.
가야지무 무대에는 노 연출이 직접 올랐다. 그는 능안의 가야지무를 홀 춤 형식 검무로 창작 복원한 동작을 선보였다. 그는 지난 2년간 능안이 췄다는 춤을 상상하며 동작을 만들었다. 부산 복천동 22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청동 방울 청동칠두령을 단검무로 제작했고, 삼국시대 머리장식인 조우관, 절풍도 만드는 등 의복과 도구도 고증과 창작을 더 해 재현했다.
노 연출은 '가야지무' 무대를 장기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야의 춤은 원형을 알 수 없는 만큼 여러 해석을 내놓아야 하며 이런 도전은 새로운 역사이자 원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춤은 추상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창작 공연 <거북땅 태양의 왕국, 가야>는 추상적인 몸짓 언어로 '가야'를 구체화한 무대였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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