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미, 아름다운 추억 선사하고 떠난 모두의 어머니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일용 엄니' 김수미가 지난 25일 세상을 떠난 후 각계각층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발인식이 거행되던 27일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은 눈물바다였다. 유족은 물론 지인과 동료들이 오열했다. '전원일기'에 같이 출연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배우들이 안타까움을 전했고, 정준하·윤정수·장동민 등이 운구하며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를 뉴스 화면으로 지켜본 시청자들도 슬픔을 함께 나눴다.
19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한 김수미는 지난 50여 년간 드라마와 영화, 예능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국적인 외모와 빼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망가지는 캐릭터'도 가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표현해 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30대의 젊은 나이로 할머니 '일용 엄니'역을 인상 깊게 소화했고, 영화 '마파도'(2005) '맨발의 기봉이'(2006) '헬머니'(2015) '가문의 영광: 리턴즈'(2023) 등에서 잊을 수 없는 캐릭터로 맹활약했다.
예능에 출연한 모습도 대단했다. KBS2 '엄마가 있는 풍경 마마도'(2013), tvN '수미네 반찬'(2018), SBS '밥은 먹고 다니냐?'(2019) 등에서 밥과 반찬을 테마로 친근하고 기대고 싶은 엄마의 이미지를 보여줘 공감을 샀다. 김수미는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손수 지은 밥과 반찬을 내어주며 따뜻하게 위로했다. 마치 맛으로 소문이 자자한 노포 식당의 '욕쟁이 할머니'처럼 친근하고 유쾌하게 그들을 어루만졌다.
2018년 7월, '수미네 반찬'의 방송에 맞춰 열린 제작발표회 자리를 잊을 수 없다. 앞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김수미가 새 예능의 대표 호스트로 참석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 물론 테마는 그가 연기 다음으로 제일 잘한다는 집 반찬이었다.
정갈한 한정식도, 화려한 양식도 아닌, 보통의 찬(饌)에 초점을 맞춘 게 신선했다. 아무리 '먹방'과 '쿡방'이 많다지만 누구도 반찬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꾸민 적은 없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소재가 과연 지속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김수미는 익히 알려진 음식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반찬의 대가'로 등장해 내로라하는 양식과 중식의 스타 셰프들에게 자신만의 비결을 알려줬다. 고사리 굴비, 연근전, 연어 스테이크, 간장게장, 소라 강된장, 여름김치 등 익숙하면서도 뭔가 새로운 반찬들이 계속 등장했다. 그 자리에서 반찬을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는데 주저하는 법이 없이 능숙해 보였다. 정말 많이 해봐서 손에 익은 느낌. 계량 스푼 하나 없이 "이만큼, 요만큼" 하면서 자신만의 '적당한' 용량으로 깊은 맛을 재현하는 솜씨가 두드러졌다. 계량되지 않은 레시피에 오히려 유명 셰프들이 쩔쩔맸다. 김수미의 음식 준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김수미의 진심과 정성, 사랑이 아니었을까. 김수미는 이날 참석한 취재진을 위해 손수 도시락을 싸왔다. 새벽부터 만들었다고 했다. 잡곡밥과 김치 반찬으로 이뤄진 아주 소박한 도시락이었다. 취재진을 향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당시 김수미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건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신 저녁 밥상이다. 지금도 부엌에 들어가는 건 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며 "음식은 많이 해야 제맛이고 그러면 주위에 나눠주게 돼 있다. 나도 이제 70인데 아직 기운 있을 때 많은 사람과 음식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수미는 특유의 유머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선물한 반찬통 위에는 '남기면 죽어!'라는 재치있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밥과 반찬을 정말 남김없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빈 도시락 그릇은 그대로 집에 가져갔다. 지금도 수납장 한 켠에 보관하고 있다.
김수미는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와중에 간간이 글도 쓰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인 정명호 나팔꽃 F&B 이사에 따르면, 어머니의 집에는 육필원고가 꽤 많이 남아 있었고, 이를 모아 만들 책의 이름도 미리 정해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목은 '안녕히 계세요'. 은퇴 후 음식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메시지가 있다. 음식으로 정성을 표현했던 김수미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연기자 후배들을 향해 "나도 평생 조연으로 살았던 배우로서 말해주고 싶다. 지금 힘들고 슬럼프가 있더라도 이 바닥은 버티면 언젠가 되니 중간에 절대 포기하지 말라."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는 세태에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사진 속 김수미는 목도리를 두른 채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고인이 출연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 포스터에 쓰였던 사진이다. 아마 모든 팬들이 기억하고, 앞으로 기억될 그의 모습은 이처럼 해맑은 미소일 것이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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