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기술 독립 불씨”…삼성전자, 美 정부에 中규제 경고

日·이란·中 등 규제의 역설…삼성전자 “반도체 규제, 오히려 중국 기술 독립 가속”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에 중국에 대한 반도체 규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성 의견서를 제출했다. 과거 다른 국가들이 규제를 계기로 기술 독립을 이뤄낸 전례를 볼 때, 중국 또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다.

25일 미국 연방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삼성전자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첨단 반도체 및 직접회로에 대한 추가 실사 조치’에 관한 잠정 최종 규칙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삼성전자는 “규제가 미국 국가 안보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길 바라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로 혁신을 저해할 우려를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반도체 기술 독립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특히 삼성전자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유입을 막으면, 기존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 스스로도 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고객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 삼성전자가 미국 상무부에 제출한 의견서. [사진=미국 연방 정부 웹 사이트]

실제 규제가 기술 독립과 산업 성장으로 이어진 사례는 여러 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이후 한국은 초순수(극초순도 물) 국산화에 성공했다. 초순수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 제거에 필수적인 소재로, 그간 일본이 기술을 사실상 독점해왔다.

하지만 일본 수출 규제 이후 한국은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주도로 연구를 가속화해 지난해 초순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가 현저히 줄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오랜 기간 미국의 제재를 받은 이란은 드론, 미사일, 핵 등 첨단 군수 기술을 자체적으로 발전시켰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이 미국 규제 기간 동안 놀라운 수준의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자체 개발한 드론 ‘358’을 통해 대 드론전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중동 지역 반미 세력들에게 수출되고 있다.

이란은 제약산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미국과 서방 제재로 의약품 및 의료 장비 수입이 어려웠던 이란은 자국 내 제약 기술을 키워 현재 약 100여 개 제약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 다로팍쉬 파마켐 케미컬은 중동 최대 제약사로 성장했으며, 인슐린, 인터페론, 에리스로포이에틴 등 주요 바이오 의약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 이란은 미국의 규제 이후 미사일 등 군수 분야와 제약 기술력이 크게 올라갔다. 사진은 이란의 최신식 미사일. [사진=이란 혁명수비대]

이런 전례를 고려할 때, 중국에 대한 반도체 규제가 강화될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는 이미 반도체 기술 독립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SMIC는 정부 지원과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성장해 지난해 80억3000만 달러(약 11조600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기술력도 빠르게 진전돼 현재 7나노 공정 양산 수준에 도달했다.

삼성전자 외에도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미국 장비기업 AMAT, 중국반도체산업협회(CSIA) 등도 비슷한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전반이 규제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 또한 규제 강화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오히려 촉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 터프츠대학교 크리스 밀러 교수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공급 과잉 우려에도 불구하고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며 “향후 3년 내 60%, 5년 내 두 배 수준까지 생산 능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규제가 강화될수록 중국 내 반도체 산업 투자와 기술 자립화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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