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 부적’ 오픈런·복채는 ‘좋아요’…젊어진 점술 트렌드

우리의 삶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측 불허의 삶에 동반되는 옵션은 불안과 걱정이다. 인공지능(AI)이 깊숙하게 파고든 2023년에도 여전히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비로운 힘을 빌려 불행이나 재해를 해결하려는 주술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이 ‘옵션’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부적과 점술이 신세대를 만나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천태만상 부적을 위해 ‘오픈런’을 불사하고 ‘오늘의 운세’를 보기 위해 유튜브를 켜는 세상이 도래했다. 소리 없이 번지며 하나의 트렌드가 된 요즘 시대 점술의 이모저모를 톺아봤다.
■부적의 변신은 무죄다
‘칼퇴 부적’ ‘잘못해도 살짝 넘어가는 부적’ ‘먹은 만큼 살 안 찌는 부적’. 현대인들의 희망사항을 담고 있는 듯한 이 문구는 지난달 서울 홍대 인근에서 운영된 팝업스토어 ‘건강이 최고심’에서 마주한 글귀다. 약국을 모티브로 한 이 팝업스토어는 최고심 작가와 협업해 건강과 고민을 해결해주는 공간을 콘셉트로 꾸며졌다. 최 작가는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의 힘을 불어넣는 글과 그림으로 MZ세대 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이곳의 대표상품인 부적의 가격은 개당 500원. 저렴한 가격이지만 손에 넣기까지 다소 노력이 따른다. 평일 기준 최소 2시간의 ‘웨이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손주연씨는 고심 끝에 10장의 부적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소장만으로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려니 한다”며 웃었다. 3시간의 대기 끝에 입장했다는 직장인 고지환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철학적인 말이나 영혼 없는 위로보다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문구들이 와닿았다”고 털어놨다.
부적을 떠올리면 ‘미신’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어 연상되는 이미지는 노란 종이에 적힌 빨간 글씨다. 그러나 요즘 ‘잘 나가는’ 부적은 그 형태부터 다르다. 귀여운 캐릭터와 기발한 문구를 전면에 내세워 소장 가치를 높였다. 최 작가 외에도 소셜미디어에는 부적을 제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개개인의 요청사항을 받아 ‘커스터마이징’하는 부적도 눈에 띈다.
신앙의 상징보다는 굿즈에 가깝다 보니 젊은 감각에 맞게 디자인돼 판매되는 액세서리 부적도 인기다. 주로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 ‘아이디어스’에서 ‘부적’을 검색하면 ‘액막이 키링’ ‘스티커 부적’ ‘운수대통 팔찌’ 등 다채롭게 변주된 부적들이 상위 판매 품목 리스트에 올라 있다. 개업과 집들이 선물용으로 제작된 ‘액막이 명태’ 제품도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이미지를 넘어 동영상 형태로 제작된 부적도 있다. ‘이 영상을 올리면 반 배정에 성공함’이라는 식의 문구가 들어 있는 일명 ‘쇼트폼 부적’은 10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틱톡’ 등에서 목격되는데 초·중·고교생 사이에서는 ‘반 배정 부적’으로 통한다. 12년 차 초등교사인 김수진씨는 “학기 말이면 휴대전화 배경 화면이나 카카오톡 프로필에 ‘반 배정 부적’을 올리는 아이들이 있다”면서 “이들 중 대다수는 학교 규정에 따라 학급이 결정되는 것을 알지만 일말의 간절함을 드러내고 나아가 나도 이 유행에 함께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올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불안을 해소하는 동시에 소원 성취를 이뤄주는 욕망의 상징, 이외에도 부적에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시대의 고민과 생활상을 반영하는 척도다. <부적의 비밀: 기원과 상징의 문화>의 저자인 자현 스님은 “부적은 시대의 애환과 함께하는 문화적 산물로, 시대를 읽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요즘 부적에는 어떤 ‘애환’이 반영돼 있을까.

디지털 크리에이터 ‘그늘정거장’의 이진주 대표는 미니엽서 형태의 부적을 판매 중이다. 그는 “신년을 맞아 카톡이 아닌 손글씨로 좋은 말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면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말을 적었다”고 전했다.
타로카드를 연상케 하는 부적에는 ‘솔로 탈출’ ‘행운 가득’ ‘절대 합격’ 등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적혀 있다. 경험의 부재,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한 ‘현생’의 고민을 반영한 문구이지만 진지함이나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다. ‘개성과 유쾌함을 놓치고 싶지 않은’ 세대의 특성이 반영됐다.
부동산 반등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은 부적도 있다. ‘꽃지 작업실’을 운영하는 꽃지 작가는 자신의 부동산 거래 경험을 담아 ‘부동산 반등 기적 부적’을 제작했다. ‘역전세 맞지 않길. 임차인님 가정에 평안함이 깃드소서’ 등의 문구가 웃음을 자아낸다.
■신흥 큰손·팬데믹이 키운 시장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점술 시장의 주변인이 아니다. 네이버에 따르면 지식거래 플랫폼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지난 3년간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운세·사주, 타로, 심리 상담 등이다. 전체 이용자 가운데 MZ세대 비율은 77.9%며, 특히 타로의 경우 정기적으로 보는 이용자의 비중이 높았다.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MZ세대 10명 중 9명이 “운세를 본 적 있다”고 답했다. ‘막연한 호기심’(42.7%), ‘불안한 미래에 위안을 얻기 위해’(22.9%), ‘스트레스와 고민을 덜기 위해’(13.2%) 등이 그 이유다.
젊은 세대의 유입은 점술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음지에 머물던 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렸고 ‘흥미와 힐링의 시간’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에도 성공했다. 여기에 팬데믹 이후 거세진 ‘언택트’ 바람은 스마트폰으로 미래를 점치는 이른바 비대면 트렌드까지 확산시켰다.

기술이 더해진 점술 시장은 영리해졌다. 스타트업 천명앤컴퍼니는 점술 서비스 중개 플랫폼 ‘천명’을 출시했다. 이 플랫폼은 고객이 제출한 고민 내용을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해 고객 만족도가 높았던 3명의 전문가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입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한계를 사용자 후기, 즉 또 다른 입소문으로 해결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상담 이후 굿이나 부적 등 추가적인 서비스를 원하는 경우엔 내부 안심 결제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스타트업인 띵스플로우가 서비스 중인 ‘헬로우봇’은 ‘챗봇’이 역술인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름과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연애 타로, 심리 분석, 사주 등 각 분야마다 캐릭터를 지닌 챗봇이 자신이 담당하는 전문 분야에 맞춰 고민을 상담해 준다. ‘최종 보고서’를 통해 의뢰인의 상황에 맞는 조언도 받을 수 있다. AI로 손금과 관상을 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담까지 해주는 챗봇도 성행 중이다.

최근에는 앱에 집중됐던 시장의 중심이 유튜브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더불어 돈이 들지 않는다는 강점 덕분이다. 유튜브를 통해 보는 점과 운세, 타로의 복채는 ‘좋아요’와 ‘구독’ 버튼이다.
유튜브 통계 분석 사이트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타로 관련 국내 채널은 1200개가 넘는다. 해외 채널까지 포함하면 2만개 이상이다. 대다수의 타로 채널은 타로리스트가 직접 카드를 뽑아 카드 더미를 만들고 구독자에게 번호를 선택하게 한 다음 이를 각각 풀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댓글 창에 적힌 카드별 해석이 시작되는 영상 시간대를 확인하면 내가 고른 카드의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도 있다.
영상의 주제는 월별운, 연애운, 취업운 등 다양하다. 2019년 개설 후 현재 42만7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호랑타로’는 ‘연애운’을 궁금해하는 이들의 성지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회차 영상은 247만회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채널 구독자인 박보라씨는 “이럴 땐 이렇게 하라 등과 같은 구체적인 조언이 있어 선호한다”며 “조곤조곤한 말투에 신뢰감이 간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영상은 불특정 다수의 구독자를 대상으로 점을 보기 때문에 ‘제너럴 리딩’(일반적인 카드 풀이)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채널 구독자들은 점괘에 집착하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편이다.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답답했던 고민을 해소하는 창구, 나아가 심리적 위안으로만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일부 구독자들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또는 감사의 뜻을 전하며 ‘소통’하기도 한다. 현직 타로리스트가 운영하며 입소문을 탄 채널 ‘타로마스터정회도’의 ‘2023년 전체운’ 영상에서 한 구독자는 댓글로 “아쉽게 점수가 부족해서 삼수에 도전하게 됐다. 시험이 끝나고 한 달 동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2023년 오랜 기간 바랐던 결실을 본다는 말을 들으니까 눈물이 난다”며 “기죽어 있던 마음을 다잡고 멘털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위로하는 마음
업계가 내놓은 한국 점술 시장 규모는 1조4000억원이다. 집계되지 않은 수치를 고려했을 때 실제 규모는 이보다 클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주, 타로, 관상 등 점술과 관련한 비대면 온라인 강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101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사주·타로·명리학 관련 클래스 개수는 전년 동기간 대비 각각 3배, 1.5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사주카페를 운영하던 박시형 점술가 역시 최근 점술 교육자로 직업을 변경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점술의 이미지가 친근해지면서 사업적으로 접근해 수익을 내려는 이들과 ‘부캐(릭터)’, 즉 취미를 위해 배우는 이들이 많아지는 추세”라며 “수강생의 90%가 20·30세대”라고 언급했다.
점술가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점술의 위상이 심리 상담의 한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하며 ‘무릎팍도사’와 같은 기괴한 복장이 아닌 옆집 언니, 누나 같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점술가들이 많아졌다.

<신령님이 보고 계셔>의 저자이자 스스로를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전업 무당’이라 소개하는 홍칼리씨는 한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신당 대신 카페에서 점을 본다. 홍씨는 “서로 편하기 때문”이라며 “위화감을 주는 한복으로 대화의 본질을 흐리기보다는 의뢰인의 운명과 인생 자체에 집중하려 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MBTI를 비롯해 점술, 역술, 무당을 찾는 이유는 결국 ‘나’를 해석하는 다양한 언어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며 “명확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담을 진행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점술에 대한 높은 관심이 ‘불안함’과 ‘나를 위한 소비’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MZ세대는 내(Me)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미이즘(Meism)’이 강하다. 헌신이나 희생보다는 나의 삶이 소중하다 보니 불안과 어려움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정적인 흐름을 점술로 해소하려는 성향이 짙어지다 보니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고 접근성이 쉬운 타로나 사주를 가까이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가볍게 상담을 받듯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며 “ ‘굿즈’를 통해 위로를 얻으려는 것도 일맥상통한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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