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전자 새 리더를 맡은 류재철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적자' 성적표를 받았다. 희망퇴직으로 일회성 비용 발생하긴 했지만 지난해 4분기 LG전자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수장으로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류 사장에게 이런 상황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가전 명가' LG전자에 '가전 전문가'가 새 수장이 됐지만 전문 분야인 가전에 더불어 차량용 전장과 냉난방공조 등 B2B(기업간거래)사업으로 위기 돌파 전면에 나섰다. 침체된 조직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리고 빠르게 실적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키를 잡은 류 사장의 리더십이 주목되는 이유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잠정 영업손실로 1094억 원을 기록했다. 분기 적자에 빠진 것은 지난 2016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적자로 전환한 이유는 주력 제품인 생활가전의 판매량 부진이다. 가전 사업은 주로 상반기에 신제품 출시가 몰려 하반기에는 판매량이 줄어드는 상고하저 흐름이 나타난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희망퇴직으로 위로금과 퇴직금을 지급하면서 발생한 일회성 비용도 실적에 영향을 줬다. LG전자는 체질 개선 차원에서 지난해 8월 TV 사업을 담당하는 MS사업부를 시작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9월부터는 전 사업부로 희망퇴직이 확대되며 업계와 시장의 우려도 커졌다.
문제는 계절적 비수기와 희망퇴직 비용으로도 LG전자의 진짜 위기를 감출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 4780억 원으로 전년(3조 4197억 원) 대비 27.5% 줄었다. 시장에서는 희망퇴직으로 발생한 일회성 비용을 4000억 원으로 판단하는데, 이를 감안하더라도 전년도(2024년)보다 15.8% 감소했다.
실적 반전 카드 '전장·공조'에 힘실어
새 리더가 된 류재철 사장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전 카드로 B2B 사업인 전장(VS)과 냉난방공조(HVAC)에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십년간 LG전자를 지탱한 전통 가전 대신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두 분야를 성장엔진으로 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류 사장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일정을 마친 직후 전장 사업의 핵심 기지인 멕시코로 향해 현지 생산라인을 점검했다. 멕시코는 LG마그나 전장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이곳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LG마그나 전체의 약 40%다. LG마그나 생산 거점은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도 있다.

LG마그나는 LG전자의 전장 자회사다. 2021년 7월 LG전자와 캐나다 자동차 부품 기업 마그나 인터내셔널이 공동 설립한 합작 법인이다. 전기차의 심장 역할을 하는 구동 모터와 인버터, 컨버터 등 파워트레인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류 사장이 CES 2026 이후 멕시코 LG마그나를 찾은 것은 전장 사업 등으로 주력 사업의 무게추를 바꾸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그는 전장을 대표적인 고성장 사업 포트폴리오로 내세우며 LG전자가 근원적 경쟁력을 되찾는 핵심 중 하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전장(VS) 부문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제품이나 전기자동차용 구동 부품, 자동차 램프 및 보안용 소프트웨어 등을 생산·판매한다. 품질과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공급 부품에 대한 높은 신뢰성과 기존 사업 경험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다. B2C인 가전과 달리 B2B 사업이라 상대적으로 경기 흐름에 영향을 덜 받는 것도 장점이다.
LG전자 관계자는 “VS 부문은 적극적인 수주 활동으로 수주 잔고가 약 100조 원에 이른다”며 “신규 계약도 줄을 잇고 있는데, 특히 IVI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전장 핵심 부품 일감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오디오, 커넥티드 기술을 결합한 IVI 분야는 LG전자가 완성차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대표 영역이다. 제품 라인업의 다양화와 함께 수익성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21년 936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VS 부문은 지난해 1~3분기 4009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LG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15.0%를 차지했다. 1조 원 수준의 적자를 내던 ‘아픈 손가락’이 4년 만에 ‘효자’로 환골탈태했다.
‘두자릿수 이익률’ 냉난방공조서 새 기회
냉난방공조(HVAC)도 류 사장이 집중하는 분야다. 인공지능(AI) 투자 광풍에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자 LG전자의 고효율 공조 시스템은 핵심 인프라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HVAC 사업을 담당하는 ES 부문은 지난해 1~3분기 매출 7조 8658억 원, 영업이익 7901억 원을 달성했다. ES 부문의 매출 비중은 12.0%, 영업이익 비중은 30.5%다.
영업이익률은 10%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냉장고와 세탁기, 청소기 등 전통 가전을 판매하는 HS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7% 안팎이다. 고마진이 담보되는 만큼 사업 육성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ES 부문은 꾸준히 일감을 확보하며 LG전자 실적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AI 데이터센터에는 수백억 원 규모의 공랭식 칠러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AI 데이터센터에는 무급유 인버터 터보 칠러와 공기조화기 공급 계약을 체결해 꾸준히 일감을 모으고 있다.
LG전자는 “고온 건조한 사막부터 다습한 열대, 한랭 지역까지 다양한 환경에 맞춘 냉난방공조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며 “미국 알래스카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노르웨이 오슬로 등 현지 연구소와 컨소시엄을 통해 HVAC 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수요 시장에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증권가는 류재철 사장의 전장·냉난방공조 중심 신규 전략에 힘입어 LG전자가 올해 빠른 이익 회복세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김소연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실적 저점이던 4분기를 지나 올해 가파르게 이익이 개선될 것”이라며 “VS 부문은 미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라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와 원가 구조 개선으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ES 부문은 빅테크 기업과의 협업을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용 냉각 솔루션 수주량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전장과 냉난방공조를 중심으로 실적을 회복해 올해 연결 기준 예상 영업이익으로 3조 5444억 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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