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케이블 수량까지 '디테일' 공고…2단계 코어뱅킹 핵심축은

서울 여의도의 KB국민은행 신관 /사진 제공=국민은행

KB국민은행이 은행 전산 시스템의 핵심인 '코어뱅킹'과 관련, 현대화 2단계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코어뱅킹은 예금, 대출, 계좌 관리 등 은행의 기본 거래를 실시간 처리하는 이른바 '디지털 심장'에 해당한다. 과거 솔루션의 적합성을 검증했던 '코어넥스트(CoreNext)' 단계를 넘어 실제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대면과 비대면 금융 서비스 기반을 완전히 재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최근 '코어뱅킹 현대화 2단계 프로젝트관리조직(PMO)' 선정 절차에 나선 데 이어 백업장비와 모니터링 시스템 등 관련 인프라 구매 공고를 잇달아 냈다. 사업의 핵심은 한 번에 모든 시스템을 갈아엎는 방식이 아니라 계정계를 성격에 따라 두 개로 나누는 것이다.

수신과 여신 등 안정적인 대용량 처리가 중요한 핵심 업무는 기존 메인프레임 기반의 '코어1(Core1)'에 두고, 변화가 빠르고 민첩한 대응이 필요한 개인·기업 중심 업무는 클라우드 기반의 '코어2(Core2)'로 별도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메인프레임의 견고함과 클라우드의 민첩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이원화 전략이다.

이 방식을 택한 배경은 대형 은행 전산 특유의 복잡성 때문이다. 기존 시스템은 보안은 뛰어나지만 신규 서비스 반영에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반면 클라우드 기반의 코어뱅킹2는 기능을 잘게 나눠 개발할 수 있어 거래량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시스템 간 결합도가 낮은 업무부터 단계적으로 클라우드로 이전해 2030년까지 전면 전환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사업 범위는 단순히 화면을 바꾸는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 비대면 플랫폼 재구축, 핵심 업무 재설계, 실시간 데이터 처리 체계 구축, 고객 식별체계 통합 등이 포함된다. 거래 처리 방식부터 데이터 흐름, 영업점 업무 구조까지 통째로 손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인프라 요구 수준에서도 사업의 난도가 드러난다. 모니터링 시스템 공고에 따르면 기존과 신규 인프라를 중단 없이 통합 관제해야 하며, 최소 20개 기종의 1만3000대 이상의 네트워크 장비를 지연 없이 수용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에 쌓인 3년치 로그를 빠짐없이 옮기고, 장애 시 즉시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롤백' 보장도 필수 조건이다.

데이터 보관과 복구를 위한 백업 체계도 대폭 강화된다. 국민은행은 LTO9 기반 백업 장비(PTL)를 운영 환경에 90대 규모로 배치할 계획이다. 최신 테이프 백업 규격인 LTO9은 랜섬웨어 등 외부 공격으로부터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분리해 보호하는 '에어 갭(Air-gap)' 보안에 탁월해 '최후 방어선'으로 불린다.

코어뱅킹 시스템 단계별 구축 현황 /자료 제공=국민은행

특히 김포와 여의도 거점의 케이블 포설 예상 수량까지 공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겼다는 점은 이번 사업이 논리적 설계를 넘어 물리적인 인프라 재배치까지 포함된 대규모 공사임을 시사한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이 추진하는 인공지능(AI) 활용도가 주목받고 있다. 국민은행은 기존 코볼(COBOL) 언어를 자바(Java)로 바꾸는 과정에 AI 기반 자동 전환 기술을 적용한다. 주목할 점은 AI 도입에 따른 계약 방식의 변화다.

그동안 시스템 구축(SI) 업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이 몇 달간 투입되느냐'를 기준으로 사업비를 계산해 왔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AI 활용으로 투입 인력이 줄어들면 그만큼 사업비도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검토 중이다. '사람 머릿수'로 비용을 따지던 관행을 깨고 기술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시도로, 국내 금융권 SI 시장이 양적 성장 중심에서 기술 중심의 질적 성장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잇따른 인프라 재공고 역시 사업 차질보다는 요구 사양과 책임 범위를 세밀하게 다듬는 리스크 관리 과정으로 해석된다. 메인프레임과 클라우드를 병행하는 구조는 장애 위험을 낮추는 대신 운영 복잡도가 높아질 수 있는 만큼, 국민은행은 PMO와 외부 점검 체계를 가동해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경로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2단계 사업의 관건은 안정성과 속도를 함께 입증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번 사업이 계획대로 안착하면 국민은행은 대형 시중은행에 최적화된 차세대 코어 전환 모델을 제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거래 급증 등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코어뱅킹 현대화는 필수적인 선택"이라며 "안정적인 대고객 서비스와 디지털 혁신을 동시에 실현해 미래 금융 경쟁력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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