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수도권 집중 현상 왜 해결 못하는가
분권형 성장 모델 전환 필요, 장기비용 혜택…기업 유치를
허현도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중소기업회장
대한민국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600만 명이 모여 산다. 대한민국 500대 기업의 본사도 77%나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서울은 55%나 차지한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마다 ‘지역균형발전’을 외쳤지만,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부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체감하는 현실은 더욱 절박하다. 우수한 인재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젊은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서울에 가야 기회가 있다”는 인식이 너무나 강하게 뿌리내려 있다.
도대체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실효성 결여에 있다. 역대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대부분 단발성에 그쳤고, 정권이 바뀌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30년, 50년을 내다보는 장기 비전 없이 임기 내 가시적 성과에만 집중하다 보니,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다.
또한 수도권 규제의 실효성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으로 수도권 내 개발을 제한하고 있지만, 규제는 항상 예외와 완화의 압력에 시달린다. 경기 침체가 오면 “규제 완화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규제는 유명무실해진다. 정부의 잇단 집값 안정화 대책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금융규제는 강화했지만, 주택 공급 확대를 통한 아파트 가격 안정화를 목적으로 수도권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보자는 방안은 근시안적 정책이다. 이는 결국 수도권의 정주 여건만 개선시켜 비수도권의 인구 유출을 가속화하고 균형 발전의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교육과 문화 인프라의 격차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수도권에는 명문대학, 대형병원, 문화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려 해도 직원들이 자녀 교육 문제, 배우자 취업 문제, 의료 및 문화 혜택 감소를 우려해 반대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유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질 문제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보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더욱 명확히 보인다. 인재가 없으니 기업이 성장하기 어렵고,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니 좋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인재들이 떠나고, 그렇게 지역경제는 점점 더 위축된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을 서울의 아류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라, 각 지역만의 강점을 살린 특화 발전 전략이 절실하다. 미국의 경우 실리콘밸리, 보스턴, 오스틴 등 지역별로 산업과 문화의 특성이 뚜렷하게 발전하면서 국가 전체의 혁신 역량을 높여왔다. 지역 주도의 자율적 혁신이 중심이 되었고, 기업·대학·지방정부가 결합한 지역 생태계가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우리도 이러한 분권형 성장 모델을 참고해 지역이 스스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발표한 800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계획과도 연계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에 재정을 나눠주는 시혜적 접근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권한과 자율성을 이양해야 한다. 지역이 스스로 산업정책을 수립하고, 규제 특례를 운영하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지방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지방이전기업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실질적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한 정책은 단기적 세제 감면에 머물러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 비용 구조 개선이다. 따라서 세제 감면 지원을 더욱 강화하고, 입지 보조금 지원, 설비 투자 보조금 확대, 금융 지원, 직원 정주 지원이 뒤따른다면 기업 유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현 정부가 권역단위 성장엔진 발굴,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을 포함한 ‘5극 3특’ 정책을 통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전국 곳곳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심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책 방향이 일회성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속적인 실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등지지 않고, 전국 어디서나 꿈을 펼칠 수 있는 날이 비로소 대한민국 전체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날일 것이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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