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관통하는 윤리적 이정표

시대를 초월한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시를 외워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민족 시인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시는 단순한 서정시를 넘어, 한 시대의 아픔과 지식인의 고뇌, 그리고 굳건한 삶의 다짐이 담겨있는 윤리적 선언과도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이유, 그리고 그의 시가 오늘날까지도 우리 마음에 깊은 파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 「서시」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서시」는 단순히 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시가 아닙니다. 시인이 자신의 시집 첫 페이지에 놓을 시를 고른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서시」는 윤동주 시인이 걸어가고자 했던 삶의 방향과 시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이정표’로서의 위상을 갖습니다. 시인은 서시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이 나아갈 실존적 방향성을 선언하고, 삶의 균열과 상처를 어떤 태도로 직시할 것인지에 대한 굳은 각오를 보여줍니다.

제목 없는 시, 「서시」가 되기까지

흥미롭게도,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에는 이 시의 제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고지에는 시의 내용과 창작일(1941년 11월 20일)만이 적혀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서시」라는 제목은 어떻게 붙여지게 된 것일까요?

이 제목은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1948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될 때 비로소 탄생했습니다. 시인의 친동생인 윤일주와 그의 연희전문학교 후배였던 정병욱 교수가 논의하여, 시집의 서문 격으로 이 시를 맨 앞에 배치하며 「서시(序詩)」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책의 머리에 서문처럼 쓰는 시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시집 전체의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시인의 정신을 대표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유고 시집의 발간 과정 자체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정병욱 교수는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전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를 자신의 어머니께 맡기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원고를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간절한 부탁을 지키기 위해 집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그 안에 원고를 숨겨두셨습니다. 해방 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정병욱 교수는 마룻바닥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원고를 찾아냈고, 윤동주의 유족과 함께 마침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시인의 혼이, 후배의 숭고한 노력과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시집의 첫 장을 여는 「서시」의 첫 구절이 더욱 무겁고 비장하게 다가옵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 담긴 시대정신

윤동주의 「서시」는 모든 구절이 아름답고 의미심장하지만, 특히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문장이 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여기서 ‘별’은 순수함, 희망, 이상향과 같은 긍정적 가치를 상징합니다. 시인은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바로 ‘죽어가는’입니다. 이는 이미 죽어버린, 과거가 되어버린 존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추모나 애도의 대상을 넘어섭니다. ‘죽어가는 것’은 현재 진행형의 고통입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말살되고, 수많은 생명이 억압받으며 스러져가던 시절입니다. ‘죽어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아픔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존재, 즉 고통받는 우리 민족과 조국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그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으려 합니다.

따라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나 또한 그 죽어가는 존재 중 하나’라는 뼈아픈 자기 인식과 동시에, 그 고통의 현장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단단한 결의의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한 연민을 넘어, 고통받는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시대적 책임을 다하려는 지식인의 투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윤동주를 읽는가

윤동주 시인이 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세대를 넘어 깊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그의 시가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이유는, 그의 언어가 자신만을 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에는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고, 시대의 아픔에 함께하려는 ‘시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의 예민한 감수성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불의한 현실에 눈 감지 못하는 순수한 양심의 발로였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그의 다짐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윤동주 서시는 한 편의 시를 넘어, 어두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선배 시인이 어떻게 시를 통해 시대를 지켜냈는지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것’들을 향했던 그의 뜨거운 시선을 잊지 않고, 우리 시대의 아픔에 온기를 더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오늘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윤동주의 「서시」를 다시 한번 조용히 읊조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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