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이야기- 진주 대동공업] 6부 김삼만과 기공일생(機工一生) ⑪ 당신이 사장입니까

knnews 2025. 5. 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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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솜 ICA 부산사무소 ‘시바’ 차관담당관
농기계 제작 입소문 탄 대동공업사 방문
작업복 입고 기름 묻힌 사장 열정에 매료
전쟁 피해 입은 공장 복구 위해 목재 지원
공작기계류 구입자금 33만8000달러 배정


1955년이 되자 전쟁의 상처도 많이 수습됐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의 악조건을 하나둘 극복하면서 한국에도 농기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탄생했다.

이 시기 김삼만의 대동공업사는 석유 발동기와 탈곡기를 생산했다. 그리고 1956년 7월에는 디젤 원동기도 만들었다.

남다른 기술력을 가진 김삼만이 만든 탈곡기와 원동기는 인기가 좋아 주문 수량이 해가 갈수록 증가했다.이를 발판으로 농기계 제작 분야에서 대동의 지명도는 전국적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김삼만의 회고록에 “나는 대동공업사를 설립한 직후부터 머지않아 자동차도 생산할 것이다. 탈곡기나 재래식 원동기를 만드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로 볼 때 김삼만은 자동차까지 생산한다는 큰 포부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진주 주약동 대동공업사 공장 입구에 ICA 지원을 받았다는 관련 안내판이 보인다./대동50년사/

진주 주약동 대동공업사 공장 입구에 ICA 지원을 받았다는 관련 안내판이 보인다./대동50년사/

◇ICA 지원으로 농기구 생산

1958년, 유솜(USOM)의 ICA 부산 사무소 ‘시바’ 차관담당관이 대동공업사를 찾아왔다. 김삼만은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작업복을 입고 한창 작업중이었다.

시바 차관담당관은 “이곳이 농기구 생산 기업으로 알고 방문했습니다. Are You CEO (당신이 사장입니까?)”라고 말했다.

“네. 제가 사장 김삼만입니다.”

“전공은 무엇이며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입니다. 14세 때부터 쇠와 관련된 일을 해 30년이 지났습니다”

“아닙니다. 미국의 포드 사장도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학력이고, 에디슨도 학력은 없지만 한 분야의 최고가 됐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작업복을 입고 손에 기름을 묻히면서 기능직원들과 똑같이 작업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삼만은 시바 차관담당관에게 대동공업의 미래 계획과 앞으로 대한민국의 농업의 변화에 따른 농기계 생산, 한국 농촌의 변화 등을 설명했다. 시바 차관담당관이 부산으로 돌아간 지 얼마 후 김삼만 사장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유솜(USOM)과 ICA

김삼만의 기공일생 회고록에는 유솜(USOM)과 ICA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유솜은 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으로 ‘주한 미군 원조사절단’ 명칭이다. 머리글 USOM을 우리말로 발음하면 ‘유솜’이다.

ICA는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으로 ‘국제협력처’이다. 미국이 대외원조 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1953년 8월이다. 이때 대외활동본부(FOA: 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를 조직해 식료품, 농업용 원자재, 시설재, 농업용품 등을 개발도상국가에 경제 안정 및 산업 재건을 위해 지원했다. 1955년 6월까지 FOA 명칭을 사용하다가 1961년까지는 국제협력처(ICA :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로 개칭됐다.

김삼만의 대동공업사 공장을 찾아간 손님이 유솜의 ICA 사무실, 즉 미국의 원조사절단 국제협력처 부산사무소 ‘시바, 차관담당관’ 이라고 회고록에 기록돼 있다.

◇정직은 가장 훌륭한 자산

진주에서 김삼만을 만나고 간 차관담당관 시바 씨는 대동공업 공장 복구를 돕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차관담당관은 김삼만을 ICA 사무실로 방문토록 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김삼만 사장, 공장 복구에는 철근도 콘크리트도 필요하지만 원목 등 목재도 필요합니다. 이 아비통이라는 통나무가 한 재당 70원에 배당되는데 60만~70만 재의 원목을 신청하십시오. 일부는 대동공업사 공장 복구에 사용하고, 남는 것은 팔면 이윤이 붙을 것입니다. 이윤으로 공장 가동에 사용하십시오.”

김삼만은 “이렇게 도와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목재상도 아닌 철공인인데 이렇게 많은 목재를 배당받는 것은 정당하지 않아 사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시바 차관담당관은 김삼만의 이런 정직성에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하면서, 그렇다면 3만재 정도만 가져가 공장에 사용하라고 했다.

김삼만은 불하받은 원목으로 탈곡기, 쟁기, 탈맥기 등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나무의 재질이 좋아 완제품의 품질도 상당히 좋았다.

이를 계기로 김삼만은 농촌에 가장 필요한 탈곡기와 원동기 생산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김삼만이 ICA 시설 차관 자금으로 구입한 독일산 첨단공작기계./대동50년사/

김삼만이 ICA 시설 차관 자금으로 구입한 독일산 첨단공작기계./대동50년사/

◇ICA 차관담당관 시바

김삼만은 이익이 생기는 대로 확장을 하고 기계를 도입하는 등 시설 투자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하지만 대동공업사의 자체 재정 능력으로는 외국제 최신 기계를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김삼만은 부산 ICA 사무소 시바 차관담당관을 찾아가 자금 지원 방법에 대해 상의했다.

시바 차관담당관은 ICA 시설 차관 자금을 신청하라고 했다. 김삼만은 공작기계류 구입 목적으로 45만 달러 차관을 신청했다.

ICA를 통해 자금을 차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주라고 하는 국토 최남단의 도시에 소재한 작은 공장인 대동공업사에 당시 천문학적인 외국 자본을 배정하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1년이 지난 후 약 33만8000달러의 차관이 승인이 났다.

◇금 밥그릇과 엽총

김삼만은 시바가 ICA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대동공업사 마크를 넣은 금으로 만든 밥그릇과 금숟가락 세트를 선물했다.

시바는 소장하고 있던 엽총을 가져와 이것을 기념으로 김삼만씨가 받는다면 선물을 받겠다는 제안을 했다.

김삼만은 시바로부터 받은 총을 세관에 신고하고 경찰서에는 총기 소유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총기 전문가에게 가격을 알아보니 선물한 금 밥그릇의 8배 가격이었다.

김삼만은 대동공업사를 경영하면서 본인의 기공일생에 잊을 수 없는 분이 ‘시바 차관담당관’이라고 했다.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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