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작' 애플 비전 프로는 왜 중고시장 애물단지 됐나 [IT+]
기대 한몸에 받은 비전 프로
반년 지나자 판매량 뚝 떨어져
가격 비싸고 쓰임새 적어
애플 보급형 기기 개발 착수
의료·헬스케어 앱 대거 추가
‘콘텐츠 가뭄’ 해결해야
올 상반기 확장현실(XR) 업계는 애플의 '비전 프로'로 뜨거웠다. X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VR·AR을 함께 활용하는 혼합현실(MR)을 망라하는 표현이다. 비전 프로는 애플의 MR용 헤드셋 기기로, 지난 1월 사전예약 기간에만 20만대의 주문량을 올렸다.
사전 판매의 호조세에 애플 주가도 급등했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애플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2% 오른 193.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2조9980억 달러를 기록해 기존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2조9470억 달러)를 앞질렀다.
하지만 2월 2일(현지시간) 제품이 정식으로 출시되자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상반기 총 판매량은 전망치(30만~40만대)를 훨씬 밑도는 17만대에 머물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애플의 XR 시장 점유율은 16.0%였는데 2분기엔 3.0%로 곤두박질쳤다.
비전 프로의 인기가 급격히 식은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은 '비싼 가격'을 그 이유로 꼽는다. 비전 프로 가격은 일반 모델 기준으로 3499달러(약 465만원)에 달한다. 일반 소비자가 호기심으로 구매해볼 만한 가격대가 아니다. 시중의 XR 기기와 비교해서도 비싼 편이다. 현재 XR 시장을 주도하는 '메타'가 2023년 내놓은 '메타퀘스트3'는 66만원이었다.
가격은 비싼데 쓰임새가 적다는 점도 문제다. 이제 막 1세대를 출시한 비전 프로는 호환되는 앱이 많지 않다.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 등 주요 콘텐츠 플랫폼도 비전 프로 전용 앱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구글은 비전 프로용 유튜브 앱을 출시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지만, 앱 개발이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올 3분기 비전 프로 판매량을 2만~3만대 수준으로 전망했다. 가뜩이나 저조했던 1분기 판매량에서 75% 줄어든 수치다. IDC는 올해 내로 50만대를 판매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고 예측했다.
저조한 성적에 애플은 비전 프로의 생산량을 기존 계획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애플 전문가로 알려진 밍치궈 TF인터내셔날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4월 24일(현지시간) "애플은 70만~80만대의 판매량을 예측했지만 최근 이를 40만~45만대로 낮췄다"며 "미국 외 지역에 비전 프로를 출시하기도 전에 주문을 줄인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인지 비전 프로가 중고 시장에서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5000달러(용량 1TB)로 출시한 최고 사양 모델은 최근 한 미국의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3200달러로 거래됐다.
최근엔 보안 취약점을 노출해 논란을 일으켰다. 비전 프로는 기기를 조작할 때 시선 추적을 사용하는데, 시선 추적 정보를 해킹해 개인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던 거다. 플로리다 대학, 텍사스 공과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VR·MR 기기' 관련 논문에 따르면 비전 프로를 착용했을 때 발생하는 동공의 움직임을 분석하면 이용자의 비밀번호를 예상할 수 있다. 보안 취약점을 확인한 애플은 시선 위치 정보를 구체적으로 입력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애플은 현재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의료·헬스케어 분야의 앱을 대거 추가하고 가격대가 낮은 보급형 기기 개발에 착수한 건 대표적인 행보다. 하지만 킬러 콘텐츠 없이는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핵심 경쟁력인 '콘텐츠'가 부족하다면 이용자는 떠나기 마련이다. 프로 비전은 이 '숙제'를 잘 풀 수 있을까.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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