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실직 경험 유튜브로…“아픔 뒤에도 흘러가는 삶 보여줄게”

“여름의 어느 날, 저는 집을 뛰쳐나와 엄마와 동생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30대 여성 오바다(활동명)가 2개월 전 올린 유튜브 영상의 시작이다. ‘리얼 이혼 브이로그’라는 제목을 단 이 영상을 시작으로 그는 이혼 과정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을 올리고 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다르게 영상은 지난해 7월부터 준비한 이혼과정을 덤덤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전 남편을 ‘휴먼’이라 칭하고, 산책하던 중 청계천에 세워진 ‘청혼의 벽’을 보며 “세금 낭비”라고 말하는 등 자조적인 유머도 섞여 있다. 16만명이 시청한 한 영상에는 “남은 인생이 더 행복하길 응원한다”, “솔직한 내용을 들으니 친구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브이로그(V-LOG)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혼’ ‘파산’ ‘실직’ 등 어두운 경험을 공유하는 브이로그 콘텐츠도 늘어나고 있다. 에스엔에스(SNS)에는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공유한다는 속설과 다르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들 유튜버들은 “실패나 아픈 경험 뒤에도 일상은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과 공감과 위로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26일 유튜브에 ‘이별’ ‘이혼’ ‘파혼’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십건의 브이로그 콘텐츠가 뜬다. ‘파산’ ‘실직’ ‘해고’와 같은 경제적 어려움과 관련한 처지를 보여주는 콘텐츠도 있다. 대부분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지만, 얼굴을 드러내는 브이로그도 있다.
이러한 ‘실패담’을 공유하는 콘텐츠 제작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자신을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밝힌 1990년대생 유튜버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이하 ‘실수’)’는 “절망감과 소외감,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영상 기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몸이 아파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계속되는 수입 감소로 2021년 말부터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공공도서관의 편집기를 이용한다는 그는 주민센터에서 받은 후원물품 ‘언박싱(박스에서 새 상품을 꺼내는 콘텐츠)’부터, 일용직 일자리와 집을 구하는 과정까지 영상으로 올린다.
‘이혼 브이로거’ 오바다도 그저 현재의 삶을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편과 살던 집을 뛰쳐나온 뒤, 삶을 살아갈 어떤 원동력도 없다고 느꼈기에 열심히 살아보려고 만들게 됐어요.” 사업하다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뒤 파산한 ‘파산 브이로거’ 40대 여성 미스사공은 “구독자들, 즉 보이지 않는 눈의 힘으로 사회적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길 원했다”고 영상 제작 동기를 밝혔다.

구독자들의 응원은 앞으로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 “아무 희망 없던 회색빛 인생이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이메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니 힘을 얻었고 전보다 부지런해졌어요.” ‘실수’가 말했다. 그는 가장 최근 올라온 영상에서 공공근로사업에 합격해 일하는 등 ‘탈수급’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바다도 “여전히 내 자신을 실패자라고 느끼지만, 브이로그를 만들고 구독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이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스사공은 “사람들이 감성에 취해 보내는 달콤한 응원에 안도하지 말라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들 덕분에 구직활동 등 경제적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가끔 ‘불행 포르노냐’ ‘별걸 다 콘텐츠로 만든다’는 비난 반응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이들에게 ‘일상’은 실패를 떼놓고 그럴싸하게 전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수’는 “내 처지가 이런데 다른 사람처럼 고급 레스토랑 가는 걸 보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내 환경에서 내 눈에 보이는 걸 찍어서 올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오바다도 “과거의 나도 그랬고, 사람들은 인생에서 실패한 것을 드러내기 어려워한다”며 “아무렇지 않게 이혼 경험을 얘기하는 제 영상을 보며 위로 받고 마음의 짐을 덜어놓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고 했다.
이들의 콘텐츠에서 위로를 얻은 것은 구독자도 마찬가지다. 각종 브이로그를 즐겨본다는 김지현(30)씨는 “최근 알고리즘을 통해 이별이나 이혼, 파혼 등을 주제로 한 브이로그 채널을 접하게 돼 구독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너무 우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브이로그와 차별점도 느껴지고, 일상으로 회복하려는 모습을 응원하게 된다”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중요한 것은 헌재에 지지 않는 마음…한동훈식 정신승리법 [영상]
- 김남국 “한동훈, 헌재 결정으로 이미 탄핵한 것이나 마찬가지”
- 김재원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천하통일” 미국서 강연
- [단독] 무연고자 사망신고, 30만원 없어 못하는 일 없어진다
- 노소영, SK 최태원 혼외 동거인에 “30억 배상하라” 손배소
- 금요일 학교 급식실 멈춘다…“조리원 폐암 산재 대책 마련을”
- 국힘→민주→이번엔? ‘민주당 후보’ 없는 전주을 4·5 재선거
- “안산 나이지리아 4남매 숨진 화재, 현관문서 최초 발화”
- 윤 대통령 지지율, 올 들어 최저치…3주 연속 하락 36%
- 전두환 손자, 5·18재단에 “피해자 한 풀어드리고파…도와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