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속에서나 보던 스텔스 전투기, 정말 우리는 그것을 탐지할 수 없을까요?
지금까지의 답은 "거의 그렇다"였습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설계된 스텔스기를 잡아내는 일은 현대 방공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 게임의 규칙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양자레이더'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의 국산화에 한화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단순한 기업의 도전이 아닙니다.
정부가 향후 5년간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에 무려 60조 원 이상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한 큰 그림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양자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기술이 어떻게 우리 산업과 안보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정부와 기업이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양자기술, 드디어 산업현장으로 내려오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0일 '제2차 양자기술 협의체' 회의를 열고 양자기술의 산업현장 적용 유망 분야를 논의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제조, 통신, 금융, 시스템통합(SI), 바이오, 방산 등 주요 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등 20여 개 기관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동안 양자기술이라고 하면 학계 연구실에서나 다루는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회의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통신망을 운영하고,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직접 "이런 곳에 양자기술을 써보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들고 나왔던 것이죠.

이는 양자기술이 더 이상 실험실 안의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도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양자 강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하는데, 이번 협의체가 그 출발선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죠.
LG·포스코·코오롱이 내놓은 양자 활용법
이날 회의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조기업들의 발표였습니다.
LG전자, 포스코홀딩스, 코오롱인더스트리 같은 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이 양자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과제를 내놓았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제품 설계의 최적화, 그리고 공정의 가속화입니다.
조금 더 풀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동차 한 대, 반도체 한 칩, 신소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변수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변수가 너무 많고 복잡해지면 기존 컴퓨터로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이 걸려도 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신소재나 신물질을 탐색하는 작업은 기존 컴퓨팅 환경에서는 한계가 분명한 영역이었죠.
기업들은 바로 이런 난제를 양자컴퓨팅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양자-AI 융합'으로 풀어내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는 무한한 경우의 수를 하나씩 일일이 계산해야 했다면, 양자컴퓨팅은 그것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신약 개발이든, 배터리 소재 발굴이든, 철강 공정 최적화든 모두 적용 가능한 영역인 것이죠.
우리 제조 기업들이 이 기술을 손에 넣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한 차원 다른 무기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절대 못 뚫는다"…KT의 양자암호통신 상용화 도전
통신 분야에서는 KT가 의미 있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양자암호통신 상용화를 위한 기술개발 과제입니다.
양자암호통신이 무엇인지 짧게 설명드리자면,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통신 방식입니다.
누군가 도청을 시도하는 순간 그 사실이 즉시 드러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절대 보안에 가깝다고 평가받죠.

문제는 이 기술이 너무 비싸고 장비가 거대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부 정부기관이나 핵심 보안시설에서나 제한적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이죠. KT는 양자암호통신 장비 단가를 낮추고 핵심 부품을 양산화해 상용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만약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금융권, 의료기관, 기업의 핵심 데이터 통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양자암호통신이 일상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이버 공격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는 시대에 '뚫리지 않는 통신망'이라는 무기는 그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한화시스템, 스텔스 잡는 '양자레이더'에 도전장
이번 회의에서 방산업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발표는 단연 한화시스템의 양자레이더 국산화 과제였습니다.
한화시스템은 스텔스 표적 탐지 등이 가능한 양자레이더 국산화 개발 과제를 제시하며 국방 분야에서의 양자기술 적용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양자레이더가 왜 중요할까요. 기존 레이더는 전파를 쏘아 그 반사파를 잡아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스텔스 전투기는 바로 이 반사파를 흡수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흩뜨리도록 설계돼 있죠.
그래서 레이더 화면에서 마치 유령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반면 양자레이더는 '얽힘(entanglement)' 상태의 광자를 활용해 표적을 탐지합니다.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하지만, 핵심은 스텔스 설계로도 회피하기 어려운 차원이 다른 탐지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한화시스템이 양자레이더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우리 군은 주변국의 스텔스 전력에 대응할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쥐게 됩니다.
중국의 J-20, 러시아의 Su-57, 일본이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까지, 동북아 하늘을 둘러싼 스텔스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양자레이더는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죠.
한화시스템은 이미 함정의 두뇌(CMS)와 심장(ECS)을 모두 국산화한 기업입니다. 여기에 '스텔스 잡는 눈'까지 더해진다면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입니다.
5년간 60조원…국가전략기술에 쏟아붓는 메가톤급 투자
이날 같은 시간 정부서울청사에서는 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이 주재한 제8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는 무려 7개 안건이 한꺼번에 논의됐습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국가전략기술 선도 NEXT 프로젝트 추진방향'입니다. 정부는 이 안에 따라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 투자를 향후 5년간 60조 원 이상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60조 원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안 오실 수 있는데, 우리나라 1년 국방예산이 60조 원대 초반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 규모가 짐작될 것입니다.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사업으로 선정되면 기업매칭비율 완화 같은 특례가 주어지고, R&D 예산 우선 검토와 특허 우선 출원 등도 지원받게 됩니다.
단순히 돈만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행정적 장벽까지 낮춰주겠다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범부처와 산학연이 함께하는 'NEXT 얼라이언스'도 구축됩니다. 분야별 협의체에서 프로젝트 추진 현황을 관리하고, 민관 협업 방안과 환경 변화에 따른 선제적 대응 전략을 함께 논의하는 구조입니다.
과거에는 부처끼리 따로 놀고 기업과 학계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죠.
이번에는 그 칸막이를 허물고 한 방향으로 달려보자는 의지로 읽힙니다.
사라지는 '암묵지'부터 마약 탐지까지…숨은 안건들도 묵직하다
이날 회의에서는 의외로 묵직한 부수 안건들도 함께 의결됐습니다.
그중 하나가 '암묵지 기반 제조AX 지원방안'입니다. 암묵지가 무엇이냐 하면, 숙련공들이 수십 년 현장에서 익힌 노하우 중 말이나 글로 옮기기 어려운 감각적 지식을 말합니다.
베테랑 용접공이 불꽃 색깔만 보고 온도를 알아내는 것 같은 능력이죠. 문제는 이런 분들이 은퇴하면 그 지식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국비 480억 원을 투입해 30개 공정별 제조 암묵지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이를 AI와 결합해 제조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국가 마약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과학기술 지원 방안'입니다.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는 '마약류 대책 협의회'에 과기정통부의 참여가 공식화됐고, 정부는 밀반입과 유통 단계에서 마약을 탐지·추적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을 공항, 항만, 우편집중국 등 현장에 즉시 활용할 방침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마약 탐지·분석 기술을 화학물질이나 폭발물 탐지 등 국방 분야로도 확산하겠다는 점이죠.
마약을 잡던 기술이 테러를 막고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기술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데이터 거래·개방·활용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AI 대전환 시대 데이터 정책', AI 업무관리 플랫폼 '온AI'를 40개 이상 중앙부처로 확산하는 계획, AI소재 전용 자율실험센터를 구축하는 R&D 플랫폼 전략, 해외 IT지원센터를 AI 전주기 지원 거점(KAIN)으로 재정립하는 글로벌 AI 혁신 거점 구축 전략 등이 줄줄이 의결됐습니다.
양자기술과 AI, 60조 원 규모의 국가전략기술 투자, 그리고 제조 암묵지부터 마약 탐지까지. 이 모든 것이 결국 향하는 곳은 같습니다.
미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또 앞서 나가기 위한 큰 그림인 것이죠.
한화시스템의 양자레이더 도전이 단지 한 기업의 일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