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성과' 집중해 기업 흔드는 행동주의 펀드... 공익 vs 사익

박찬규 기자 2024. 10. 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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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 기업사냥 거부감에 강력한 주주환원 요구하며 경영진 압박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국내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가 두산밥캣을 겨냥, 기업가치 제고와 함께 1.5조원에 달하는 주주환원 등을 위한 조치, 이사회 개편도 요구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1%대 지분을 앞세워 무리한 경영 간섭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얼라인파트너스는 최근 400억원대 자금을 투입해 두산밥캣 지분을 1% 넘게 확보한 다음 지난 20일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두산밥캣에 두산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향후 재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공표할 것과 함께 1조5000억원에 대한 특별배당계획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이 돈은 포괄적 주식교환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에 대응하기 위해 쌓아둔 것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이사회 구성의 개편과 제도적인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조치도 요구했다. 다음 달 15일까지 공개 발표할 것과 함께 내용이 충분치 않으면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경영계에선 얼라인파트너스가 소수 지분을 앞세워 두산그룹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운영까지 쥐락펴락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두산그룹은 사업 부문을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 및 첨단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정리하면서 부문별 시너지 창출 목표를 밝혔다. 이후 투자자들의 강한 반발로 당초 계획을 철회했지만 두산밥캣을 인적분할, 두산로보틱스 산하 자회사로 두는 형태의 개편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행동주의 펀드, 기업 협공하며 진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은 최대 관심사다. 사진은 두산로보틱스 수원공장 1층 전경 /사진=두산로보틱스
얼라인파트너스는 SM엔터테인먼트, JB금융지주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며 차세대 행동주의 펀드로 관심을 모았고 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백억원 규모의 펀딩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엔 두산밥캣을 겨냥한 상황이다.

전현직 투자사 관계자들이 만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KCGF)은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새로운 형태의 행동주의로 불린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대표 행동주의로 불리는 강성부 KCGI 대표가 발기했다. 현재 회장은 이남우 전 노무라증권 아시아고객관리 총괄대표다. 이번에 두산밥캣에 주주서한을 보낸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도 주요 회원이다.

이들은 미국의 주주행동주의가 한국에선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보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긴 호흡으로 접근한다. 최근 두산로보틱스 합병, 영풍·고려아연 분쟁 등 기업의 경영과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이남우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영풍·고려아연 분쟁에서 사모펀드 MBK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사모펀드 MBK는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도 개입한 바 있다.

포럼은 기업 밸류업 방안에 대한 평가, 두산밥캣-로보틱스 합병비율, CJ CGV 유상증자, 동원산업 합병비율 등 논란이 일었던 기업활동에 대한 논평들도 있지만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 주가 등 경영활동과 무관한 사항들에 대한 지적도 많다. SK(주) 이사회를 상대로 "밸류업 진심이면 25% 자사주 전량 소각을 권한다"는 공개서한을 작성하기도 했다.

강성부 대표의 KCGI는 한진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지만 강력한 한진 측 우군들의 협력으로 일단락된 바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소규모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진을 압박하는 일이 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소규모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진을 압박하는 행동주의 사례는 더 있다. SK스퀘어도 최근 영국 기반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팰리서캐피털의 공격을 받았다. 팰리서캐피털은 최근 SK스퀘어의 지분 1% 이상을 확보한 뒤 기업가치 제고 방안과 이사회 개편도 요구하고 있다. 과거 삼성물산을 상대로도 비슷한 주주 행동을 펼친 적이 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 캐피털 파트너스(FCP)는 최근 KT&G의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를 1조90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발송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른바 '개미'로 불리는 소액투자자들도 행동주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소액주주들은 주가와 배당에만 관심을 보였지만 최근엔 이사진 선임 등 경영진을 압박하기도 한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전 고려대 교수)은 대표적 소액주주운동가다. 2006년 토종 행동주의 펀드 1호로 꼽히는 '장하성 펀드'도 운영하며 소액주주 운동을 벌였고, 투자 기업마다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손실을 입어 2012년 청산했다.

장 전 실장은 청와대 재직 시절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 행동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국민연금 등의 기업 투자 확대 물꼬를 텄는데 당시 '기업들의 이익은 배당을 통해 나눠주고 투자는 차입과 증자를 통해 해결하라'는 주장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영계 관계자는 "행동주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자신의 이득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다른 대안에 대한 수용성이 낮다"며 "오히려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부분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찬규 기자 sta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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