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차량 구매를 위해 전시장을 방문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요즘 국산차는 가성비가 아니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합리적인 선택'의 대명사로 불리던 국산차는 이제 풀체인지를 거칠 때마다 수백만 원씩 가격이 상승하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이는 단순한 물가 상승 때문만이 아니라,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의 전환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로 해석된다.
끊임없이 오르는 부품 비용과 원자재 가격

자동차 가격 인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다. 차량 제조에 필수적인 철강재,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의 글로벌 단가는 공급망 차질과 수요 증가로 인해 수년째 고공 행진 중이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로 수요가 급증한 리튬, 니켈, 코발트와 같은 배터리 핵심 광물의 가격 변동은 제조 원가에 민감하게 반영된다.
부품 가격도 예외는 아니다. 차량 1대당 반도체 탑재 수가 기존 수십 개에서 수백 개 이상으로 증가하면서, 첨단 사양의 부품 가격 부담도 커졌다.
고도화된 ADAS 기능과 고해상도 디지털 계기판, 커넥티드 서비스 등이 확산되면서 제조사는 그만큼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기술혁신의 대가, 천문학적 연구개발 투자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첨단 기술이 집약된 디지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불릴 정도다. 이러한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 제조사들은 막대한 R&D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총 109조 원을 미래 모빌리티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며, 이 중 11조 5천억 원을 2025년 한 해 연구개발에 배정했다.
이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의 고도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의 전환,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 확보 등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결과로 신차 가격은 불가피하게 인상될 수밖에 없다.
고급화를 향한 변화와 소비자의 기대치 상승

국산차 브랜드는 더 이상 ‘저렴한 차’가 아닌 ‘가치를 갖춘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기아는 1억 원에 육박하는 플래그십 전기 SUV EV9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고급화 전략은 소비자의 기대 수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화면 디스플레이, 다양한 주행보조 시스템, 고급 내장재 등 과거에는 상위 트림에서만 볼 수 있던 옵션들이 이젠 하위 트림에도 기본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연스레 ‘엔트리 트림’이라 부르던 차량들의 시작 가격도 이전 세대 상위 트림과 맞먹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기술과 가격 사이, 소비자의 고민은 깊어진다

자동차 업계의 고급화와 기술 진보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산차는 여전히 품질과 기술 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가파르게 오르는 가격 탓에 일부 소비자들은 수입차나 중고차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결국, 국산차 브랜드가 직면한 과제는 첨단 기술과 고급화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문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