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대변혁…자율주행·SDV가 그리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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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전례 없는 기술적 혁신의 시대를 겪어왔다. 앞서 시작된 전기차 산업의 대중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 기술은 자동차의 본질을 근본부터 재정의하고 있다. 이들 기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었던 자동차를 지능형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며,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자율주행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KPMG에 따르면 2020년 71억달러(약 7조2600억원)였던 자율주행차 시장은 2035년 1조1204억달러(약 1468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매년 평균 41% 급성장이 예상되는 셈이다. 이에 자동차업체 뿐만 아니라, 삼성, 아마존, 소니, 화웨이 등 정보기술(IT)기업이나 구글, 네이버, 바이두 같은 플랫폼기업까지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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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시작된 자율주행 '씨앗'…구글·테슬라·GM·현대차 '빅4' 자리매김

자율주행의 역사는 1990년대 이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는 2004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DARPA 그랜드 챌린지'였다. 모하비 사막의 240㎞ 코스를 자율주행으로 완주해야 했던 이 대회를 통해 개발된 기술과 경험은 이후 구글, 우버, 테슬라 등 다양한 기업의 자율주행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연결됐다. 특히 스탠포드대학교의 '세바스찬 스런(Sebastian Thrun)', 카네기멜론대학교의 '크리스 엄슨(Chris Urmson)' 등은 향후 구글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자율주행 기술 표준은 2014년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J3016'을 만들면서 확립됐다. 이후 수 차례 개정됐고, 현재는 운전자 자동화 수준에 따라 레벨 0부터 5까지 6단계로 구분한다. 자율주행의 레벨은 운전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는지 또는 얼마나 시스템·인공지능(AI)에 넘겨주는지에 따라 레벨이 달라진다. 레벨0~2는 운전의 주체가 사람에게 있는 '운전자 지원' 단계이고, 레벨3부터 자율주행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도자율주행'이라고 불리는 레벨4는 비상 상황을 빼곤 시스템이 운전을 이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와 완성차 업체들이 2027~2030년 내에 달성을 목표로 하는 수준이다. 레벨5는 '완전자율주행'으로, 모든 환경에서 시스템이 운전한다.

초기 자율주행 기술은 구글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2009년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시작했던 구글은 실제 도로 환경에서의 자율주행을 목표로 1년 만에 공개 개발로 전환했다. 구글은 라이다(Lidar), 레이더(Radar), 카메라(Camera) 등 다양한 센서를 결합한 고도의 기술을 사용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제 도로에서 수백만마일의 주행 테스트를 실시하며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2016년 이 프로젝트는 '웨이모(Waymo)'라는 독립 기업으로 분사했고, 2020년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완전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율주행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린 곳은 단연 '테슬라'다. 2014년 테슬라는 모빌아이의 'EyeQ3' 칩을 사용한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오토파일럿'을 상용화했다. 오토파일럿은 '자율주행'을 연상시키는 명칭처럼, 주행주도권을 경쟁사 ADAS보다 과감하게 부여했다. 이후 테슬라는 엔비디아의 '드라이브PX2' 플랫폼를 거쳐 자체적으로 '풀셀프드라이빙(FSD·Full Self Driving)' 칩까지 개발했다. 2020년엔 오토파일럿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은 'FSD 베타(Beta)' 프로그램을 배포했다. 테슬라는 FSD 이영 데이터를 확보, 주기적으로 시스템을 업데이트 했다. 최근 배포된 12번째 버전(V12)부터는 AI가 이용자들의 FSD 데이터를 학습해서 주행 시스템을 만드는 '엔드투엔드(End to End)' 방식으로 바뀌었다. FSD V12는 기존 방식보다 학습 시간을 대폭 줄여, 현재 10억 마일(약 16억㎞) 이상의 주행 데이터를 확보한 상황이다.

전통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도 자율주행 시장에선 선두주자로 꼽힌다. 레벨3를 목표로 '슈퍼크루즈'를 자체 개발하던 GM은 2016년 약 10억달러(약 1조3800억원)에 자율주행 스타트업 '크루즈'를 인수했다. 2021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난해 8월엔 세계 최초로 24시간 운행에 돌입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크루즈 로보택시는 멈춰섰다. 갑자기 끼어든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950대 로보택시는 리콜에 들어갔고, 크루즈의 누적적자는 80억달러(약 11조원)에 달하게 됐다.

현대차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  사진 모셔널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숨은 강자로 통한다. ADAS 기능을 탑재한지는 1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자율주행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CES 2017'에서 세계 최초로 야간 자율주행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는 자율주행의 난제 중 하나인 야간 주행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오로라'와 협력을 맺고 레벨3·4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했다. 이듬해인 2019년엔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을 들여 미국의 자율주행 전문기업 '앱티브'와 합작법인 '모셔널(Motional)'을 설립했다. 모셔널은 2023년 6월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사고 없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레벨3 자율주행 상용화, 국내 레벨4 로보라이드 서비스는 멈춰서 있다.

다른 기업들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아마존이 인수한 죽스(Zoox)는 독특한 양방향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이며, 누로(Nuro)는 라스트마일 배송에 특화된 자율주행차를 선보이며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AG 등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초기에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었으나, 예상보다 느린 기술 발전과 규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포드와 폭스바겐의 지원을 받던 자율주행 기술기업 '아르고A'I가 2022년 폐업을 선언한 사례는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 우버는 2020년 자체 자율주행 부문을 오로라에 매각하고 협력 관계로 전환한 상태다.

사진 웨이모

SDV 등장으로 '차→모빌리티' 전환 가속화…中 기업들의 득세

최근 SDV의 발전은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크게 바꾸고 있다. SDV는 차량의 핵심 기능과 특성이 전통적인 하드웨어(HW) 중심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바뀐 이동수단을 의미한다. SW를 통해 성능, 기능, 사용자 경험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확장할 수 있다. 특히 테슬라처럼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을 개선할 수 있어, 차량의 수명 주기 동안 가치가 증대된다. 또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과 결합해 개인화된 서비스나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변화로 인해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던 독일, 미국, 일본의 전통 기업들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패러다임 전환 대응 지연 △조직 문화 경직성 △기존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규제 대응에 따른 자원 분산 등이 꼽힌다. 그런 상황에서 테슬라는 컴퓨터처럼 칩과 SW에 맞는 HW 플랫폼을 구축하며 SDV를 구현했다. 현대차그룹도 엔비디아와 손잡고 'ccOS(connected car Operating System)'를 개발, 내년부터 전차종에 적용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자율주행과 SDV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은 중국 업체들이다. 내연기관 기술의 부족함을 빠른 전동화로 극복했던 것처럼, 뛰어난 IT 기술력을 앞세워 SDV, 자율주행 분야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SDV와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자율주행 상용화 측면에서 중국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우한을 시작으로 베이징, 상하이, 천진 등 주요 대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일반 도로에서의 자율주행 테스트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업별로는 바이두,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의 IT 공룡들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면서 SDV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바이두의 아폴로 자율주행 플랫폼은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화웨이는 장안자동차, 닝더스다이(CATL) 등과 협력하며 SDV 생태계 전반에 걸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첫 전기차 모델 'SU7'을 공개한 샤오미는 자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사물인터넷(IoT) 기기에서 쌓은 SW 역량을 바탕으로, SDV 시장에서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의 전기차 기업들도 SDV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샤오펑(XPeng)은 테슬라 오토파일럿 팀의 전 수석 엔지니어인 '구 웬(Gu Wen)'이 2018년 합류, 자율주행 SW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샤오펑은 자체 자율주행 시스템인 'XPILOT'를 개발했으며, 이 시스템은 현재 샤오펑의 여러 모델에 적용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니오(NIO)는 모빌아이와의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발전시켜 왔으며,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와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프리미엄 전기차를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기업 중 하나는 포니AI다. 바이두 자율주행 부문 출신인 '펑쥔창'이 설립한 포니AI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포니AI는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독자적인 센서 퓨전 기술과 AI 알고리즘을 통해 빠르게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이 밖에도 차량공유 기업 디디추싱도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인프라 구축 지원은 빠른 SDV 상용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5G 네트워크, V2X 통신, 고정밀 지도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해 기술 발전과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의 SDV 기술이 모든 면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들을 앞서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첨단 반도체와 센서 기술 등 일부 핵심 부품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 측면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처럼 자율주행, SDV 기술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우리의 생활방식과 도시 구조, 나아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맥킨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자동차 SW 시장은 1조5000억달러(약 2072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런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자율주행 차량의 안전성과 윤리적 의사결정,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또 급격한 기술 변화로 인한 일자리 변동, 도시 인프라의 재설계 필요성 등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앞으로 10~20년 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모빌리티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움직이는 생활 및 업무 공간으로 진화하고, 도시와 심리스(seamless)하게 연결된 지능형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산업은 계속해서 혁신과 도전을 거듭할 것이며, 기술 기업과 전통적 제조사, 신생 기업들 간의 경쟁과 협력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의 성공은 자율주행 기술력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경쟁력에 달려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모빌리티 제조사와 기업들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자율주행이나 SDV 관련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