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마하의 대표 모델로 오랜 시간 자리매김해 온 YZF-R1의 단종 소식은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양산 제품 라인업에서 1,000cc급 슈퍼스포츠 모델은 슈퍼바이크 챔피언십을 비롯한 각종 레이스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브랜드의 기술력과 자존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 물론 야마하에서는 단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레이스 전용 YZF-R1은 계속 출시하겠다고 밝히긴 했으나, 일반도로용이 아닌 모델에 얼마나 개발 역량을 쏟아부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

물론 야마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단순히 촉매 하나 더 넣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이전 세대보다 성능이 떨어진 신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의 혹평은 안 봐도 뻔한 일이기 때문. 그렇다고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는 것도 적잖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신규 라이더의 유입이 서서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거둘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새 엔진 개발을 쉽게 결정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브랜드는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 놓였고, YZF-R1은 선택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것은 무엇일까? 야마하가 2014년 이후 밀고 있는 CP 시리즈 엔진이다. 2기통과 4기통 두 엔진의 장점을 조합한 3기통 엔진을 탑재한 CP3 엔진, 부드러운 특성으로 미들급 입문자들에게 호평받는 CP2 엔진은 MT 시리즈를 비롯해 여러 라인업에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고, 가능성을 본 야마하는 지난 2021년 CP2 엔진을 얹은 슈퍼스포츠 YZF-R7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특유의 다루기 쉬운 특성으로 이전에 단종된 YZF-R6보다 미들급에 막 입문한 라이더들이 쉽게 적응할 수 있어 시장에서의 반응이 뜨거웠다. 여기에 탄력을 받았는지 야마하는 지난 2024년 밀라노 모터사이클쇼(EICMA)를 앞두고 신제품을 공개했다. 바로 CP3 엔진을 얹은 슈퍼스포츠 YZF-R9(이하 R9)다. 올해 국내에도 출시가 예정되어 있는데, 출시 전 모터사이클 전문 미디어를 대상으로 시승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지난 19일 강원도 태백스피드웨이를 방문했다.

확실히 모터사이클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건 전면부인데, R9는 좌우 주간주행등 사이로 헤드라이트를 배치한 디자인으로 근미래적인 느낌을 보여준다. 구성은 R7과도 비슷하지만 주간주행등 아래로 윙렛을 배치한 덕분에 느낌은 크게 달라진다. 다운포스 형성을 위해 설치되는 윙렛이지만 이제는 하나의 디자인 요소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단순히 좌우로 뻗은 날개 형태가 아닌, 꺾쇠 형태로 위아래 모두 연결되는 카울의 일부로 구성된 형태여서 일상에서 손상될 우려가 적은 점은 반가운 부분. 후미는 R 시리즈답게 각을 살린 디자인을 이용해 날카롭게 마무리됐는데, 시트 형태를 리어 카울의 디자인과 이어 연료탱크까지 라인이 이어지도록 했는데, 이는 단순히 디자인적인 측면뿐 아니라 실제 탑승했을 때를 고려한 인체공학적 설계이기도 하다.


계기판은 TFT 풀 컬러 디스플레이가 채택되어 다양한 주행 정보가 선명한 화질로 표시되기 때문에 파악이 쉽고 빠르다. YRC, ABS, 안정성 제어 등 차량의 각종 기능들을 계기판을 통해 설정할 수 있고, 좌측 핸들바 조작 스위치는 새로운 디자인이 채택됐는데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방식. 방향지시등 버튼 디자인이 변경됐는데, 보는 그대로 좌우 버튼을 눌러 조작할 수도 있고, 더 튀어나온 우측 부분을 좌우로 밀어주는 방식으로도 조작이 가능하다. 참고로 방향지시등을 끄는 방법은 켜진 방향으로 스위치를 한 번 더 조작해 주면 된다. 이 밖에도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 있어 장거리 주행 시 편리하고, 우측 핸들바 킬 스위치 아래로는 주행 모드 변경 버튼을 배치했다.

차량을 살펴봤으니 이제 직접 달려볼 차례. 오늘의 주인공은 당연히 R9이지만, 여기에 주인공 못지 않은 조연들도 함께 자리했다. 바로 클래식 레이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XSR900GP와 CP 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던 MT-09의 고성능 버전인 MT-09 SP다. 한 자리에서 다양한 맛의 모터사이클을 즐길 수 있다니, 마치 뷔페에 온 느낌이다. 일단 나온 순서대로 보자면 먼저 MT-09 SP는 가볍고 경쾌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핸들바가 높다 보니 라이딩 포지션이 훨씬 편해지는 건 물론이고 코너에서도 자세를 잡기 수월하다. 하지만 전면 페어링이 없다는 건 개방감을 높이는 부분이면서도 반대로 고속 주행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주행풍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다 보니 고속에서는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게 되고, 그러면서 앞바퀴 접지력이 낮아져 불안해지는 현상이 있다. 서킷에서 즐기기에 부족한 건 아니지만 고속에서는 앞바퀴에 체중을 실어주는 요령이 필요하고 직선 구간에서는 다른 모델에 비해 바람 저항을 줄이기 위해 더 바짝 엎드리던지, 아니면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이 좋겠다.

XSR900GP부터는 그런 면에서 많이 자유로워지는 편이다. 디자인을 위해 탑재된 로켓 카울 같지만, 막상 서킷에서는 이 전면 페어링의 유무가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특히 메인 스트레이트를 지나 제동을 시작하기 직전 200km/h를 넘는 속도에서는 MT-09 SP의 경우 앞바퀴의 불안함이 느껴졌지만, XSR900GP부터는 확실히 불안함이 없고 좀 더 속도를 높이게 된다. 이날 시승에서는 220km/h까지 근접할 정도의 속도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코너 탈출에서 좀 더 속도를 높여준다면 240~250km/h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듯.

여기에 일반 도로에서는 불편해지는 핸들바 포지션이지만, 서킷에서는 재미를 높여주는 요소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허리를 숙이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고, 덕분에 MT-09 SP보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앞 타이어의 그립력을 높여 직선이나 코너링 모두에서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충분히 감속하고 탈출구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스로틀을 열어주면 코너 공략이 그리 어렵지 않다.

R9도 XSR900GP와 맥락은 비슷하지만 핸들바가 좀 더 낮아 셋 중에선 가장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앞선 XSR900GP도 직선에서 충분히 안정적인 모습으로 속도를 높였는데, R9은 그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이다. 디자인 요소처럼 보이던 윙렛이 속도를 높일수록 함께 높아지는 다운포스로 앞바퀴의 그립력을 더 높여주기 때문. 덕분에 앞바퀴의 불안함 따위는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쭉쭉 달려나가주니 직선 구간에서 10~20km/h 높은 속도로 첫 번째 코너를 맞이하게 된다.

XSR900GP와 차이점을 보이는 또다른 부분은 포지션에 있다. 물론 핸들바가 좀 더 낮다는 점도 있지만, 포지션 차이를 만드는 의외의 부분은 시트에 있다. XSR900GP는 체중 이동 과정에서 전후로 움직이는 과정이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R9은 시트로 인해 전후로의 움직임이 상당히 제한되는 편. 이는 야마하에서 의도적으로 최적의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시트 등으로 라이딩 포지션의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 예상된다. 덕분에 몸을 코너 안쪽으로 내밀며 코너에 진입하는 행오프 자세가 매 코너가 반복되면서도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세 모델 공통으로 보여주는 엔진의 특성도 주목할 점이다. 과거 CP3 엔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거침, 난폭함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곤 했는데, 890cc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러한 평가에 대해 의식했는지 세팅 자체가 꽤나 부드러워졌다. 과거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타는 느낌에서 이제는 길이 잘 든 준마를 타고 있는 느낌으로 바뀐 것. 강력한 파워는 예전이나 지금 모두 동일하지만, 그 파워가 뻗어 나오는 과정이 다듬어져 출력 특성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마치 MT-07에 탑재되는 CP2 엔진의 부드러운 특성을 CP3 엔진에 고스란히 갖다 입힌 느낌이랄까.

이런 요소들이 조합이 되니 다루기가 한결 수월하다. 함께 시승했던 다른 기자들의 평도 동일할 만큼 R9을 다루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예전 4기통 모델들은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이상 엔진 회전수를 꾸준히 높여줘야 하지만 R9은 전 영역에서 고르게 파워가 뻗어나오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 좋다. 특히 비슷한 출력대의 YZF-R6와 비교하면 더 확실해진다. R6 역시 재밌는 모델이지만 제 성능을 발휘하려면 일정 이상의 회전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를 놓치게 되면 저회전에서는 성능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R9은 저속에서도 파워가 꽤나 두툼하게 나와주는데다 5,000~6,000rpm만 넘겨주면 부족하지 않은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에 부담이 한결 적어진다.

제동 성능이야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이 탑재됐는데 긴말이 필요할까. 앞에는 브렘보 스틸레마 모노블럭 캘리퍼와 320mm 디스크가 좌우 양쪽으로, 뒤에는 220mm 디스크와 1포트 캘리퍼가 한쪽에만 달려있는데,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200km/h 넘는 고속으로 달려오다가도 코너 진입을 위해 속도를 줄이기가 무척 쉽다. 특히 마스터 실린더까지도 브렘보 제품이 탑재되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제동력이 균일하게 나오기 때문에 처음 타본 것임에도 원하는 정도까지 속도를 정확하게 줄일 수 있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KYB 제품으로, 앞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뒤 모노 쇼크 업소버 구성이다. 앞은 압축과 신장, 예압을 모두 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포크 상단 볼트 모양 다이얼을 돌려 조절하는 방식이고, 뒤는 예압을 조절할 수 있는데 조절 다이얼이 옆으로 따로 나와있는 방식이라 조절이 수월하다. OEM 방식으로 공급되는 제품에 비해 훨씬 넓은 대응 범위를 갖다 보니 시승에서는 별다른 세팅 없이 기본 설정 그대로 탔음에도 노면에서의 피드백도 잘 전달될 뿐 아니라 승차감 또한 슈퍼스포츠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좋은 편이다. 다만 트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체중이나 조건 등에 맞춰 ‘새그(SAG)’를 세팅한 다음 여러 차례 주행을 진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부분에 맞춰 조금씩 세팅을 변경해 준다면 랩타임을 조금 더 단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R6보다 훨씬 많은 각종 안전·주행 보조 기능도 R9을 다루기 수월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엔진 출력 특성부터 트랙션 컨트롤, 슬라이드 컨트롤, 윌리 컨트롤 등 여러 기능들이 탑재되어 자신의 실력이나 취향에 따라 적절히 조합해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주행모드인 YRC 기능을 이용해 한꺼번에 제어할 수 있다. 특히 R9의 경우는 기본 제공되는 스포츠, 스트리트, 레인 외에도 2개의 커스텀 모드가 제공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그날의 날씨나 환경, 컨디션 등을 고려해 미리 세팅해 놓고 필요에 맞춰 우측 모드 버튼으로 손쉽게 골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

R1 단종은 지금 생각해도 꽤나 아쉬운 일이지만, 이번 시승을 통해 YZF-R9이 아쉬움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능 측면에서야 200마력을 120마력이 만회할 수는 없겠지만, 단계별로 R3에서 R7, R9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라이더라면 적응도 수월하고, 숙련자가 타더라도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며 달리는 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여기에 아직 가격이 발표되진 않았지만 XSR900GP를 생각하면 3,000만 원 전후인 리터급 슈퍼스포츠보다 훨씬 접근하기 수월한 가격대로 만날 수 있어 부담도 크게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