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 조용한 혁신

보테가 베네타는 로고를 최소화한 디자인과 뛰어난 장인정신으로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1966년 작은 가죽공방에서 시작된 보테가 베네타가 오늘날 가장 우아하고 가장 정제된 미학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보테가 베네타는 브랜드의 아이콘인 인트레치아토 수공 기법을 앞세워 로고 없이도 뛰어난 품질과 디자인만으로 가치를 전달한다.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는 1966년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비첸차에서 두 명의 가죽 장인 미켈레 타데이(Michele Taddei)와 렌초 첸자로(Renzo Zengiaro)가 설립했다.

브랜드명은 이탈리아어로 ‘베네치아의 공방’을 뜻하며, 이름 그대로 장인정신에 뿌리를 둔 품질 높은 가죽 제품으로 출발했다.

창업자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최상급 가죽 제품은 당시 상류층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가죽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장인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엮어 만든 일명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기법은 훗날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적인 요소가 되었다.

특별한 장식 없이도 고급스럽고, 실용성이 돋보이는 까바백.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보테가 베네타는 1972년 뉴욕에 첫 해외 부티크를 열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했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뉴욕 보테가 베네타 매장의 단골이 될 만큼 이 브랜드를 좋아했다. 1980년에는 보테가 베네타를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엘튼 존 등 당대의 문화 아이콘들이 보테가 베네타의 제품을 즐겨 사용하며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창립자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타데이의 아내였던 라우라 몰테도(Laura Moltedo)가 1970년대 말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를 이끌며 인트레치아토 디자인을 계승했다.

특히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배우 로렌 허튼이 들고 나온 인트레치아토 클러치 ‘로렌 1980’가 크게 히트하며 브랜드 명성을 이어갔다.

독특한 짜임으로 대표되는 독보적 매력

하우스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코드인 인트레치아토 수공 기법은 1975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탈리아어로 인트레치아토는 ‘짜기, 엮기, 직조(Weaving)’를 뜻한다.

가죽을 가는 끈 형태로 길게 자르고, 이들을 꼼꼼하게 엮어 격자 문양을 이루도록 하는 제작 기법이다.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뛰어난 장인정신과 노하우를 요구하며, 이탈리아 베네토주 몬테벨로 비첸티노 아틀리에에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수되고 있다.

또한 컬러, 스타일, 사이즈, 구성 기법의 다채로운 변주로 끊임없이 진화하며 매 시즌 새로운 매력을 어필한다.

수작업으로 매듭지은 우븐 가죽 소재의 뮬 펌프스.

얇게 만든 가죽 스트랩을 손으로 엮어 견고한 직조 패턴을 만든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보테가 베네타 제품 특유의 우아함과 내구성을 모두 갖춘 혁신이었다.

이 독특한 직조 가죽은 이후 가방, 지갑 등 모든 가죽 제품군에 사용되며 보테가 베네타를 상징하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인트레치아토는 보테가 베네타의 역사와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 자체가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작용하는 중요한 요소다.

로고 없이도 뛰어난 품질과 디자인만으로 가치를 전달하며, 보테가 베네타의 핵심 철학인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당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보테가 베네타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가방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안디아모(Andiamo)’ 백은 2023년에 출시된 이후, 다코타 존슨, 헤일리 비버, 제이콥 엘로디 등 유명 인사들이 착용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하우스의 상징적인 핸드백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두 명의 장인이 이틀에 걸쳐 완성해 장인정신의 정수라고 불리는 까바(Cabat)백, 낙하산 셰이프의 유연한 실루엣을 강조하는 파라슈트(Parachute)백 등은 인트레치아토 수공 기법으로 독보적인 장인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그니처 아이템이다.

하우스의 아카이브 백인 파라슈트 토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안디아모 파라슈트 백.
‘뉴 보테가’ 시대를 열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보테가 베네타는 소규모 사업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가죽을 엮어 만들어야 하는 브랜드의 작업 특성상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무리하게 제품군을 확장하며 브랜드의 정체성마저 잃어갔다.

1990년대, 보테가 베네타는 로고 열풍에 편승하며, 절제미로 대표되던 브랜드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위기를 맞았다.

보테가 베네타는 결국 2001년 현재의 케어링 그룹(당시 구찌 그룹)에 인수되었다.

이후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수장이 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는 절제의 미학을 복원하고, 장인정신의 가치를 브랜드 최전선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위상을 되찾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여정을 그리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대담한 상상력이 결합한 성장 이야기를 담아낸 보테가 베네타 25 여름 컬렉션. 이탈리아의 세련된 미학과 어린 시절의 유쾌하고 대담한 에너지가 더해져 새로운 발견과 실험이 가득 찬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5년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론칭하고 향수, 주얼리, 시계, 안경, 방향제, 가구 등 새로운 아이템을 내놓으며 성공적으로 토털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매출 성장에 힘입어 케어링 그룹이 인수할 당시 전 세계 17개였던 매장은 2006년 140개로 확장되었다.

2012년, 보테가는 연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단순한 부활이 아닌 ‘재탄생’을 입증했다.

토마스 마이어는 로고 없이도 명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정의를 업계에 제시하며 또다시 주목받았다.

2018년 6월 마이어가 퇴임한 이후에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다니엘 리(Daniel Lee)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다니엘 리는 과거 셀린느에서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로, 보테가 베네타에 모던하고 젊은 감각을 불어넣으며 일약 ‘뉴 보테가’ 시대를 열었다.

그가 선보인 더 파우치(The Pouch) 클러치백, 카세트(Cassette)백, 조디(Jodie)백 등 다양한 액세서리는 연달아 히트 아이템이 되었고, 보테가 베네타를 밀레니얼 세대가 열광하는 가장 뜨거운 패션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조각 같은 메탈 잠금 장치와 가죽 위빙 코드가 돋보이는 리베르타 백.

2021년 초 다니엘 리 재임 중에 보테가 베네타는 돌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모두 삭제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 ‘디지털 침묵’ 전략은 당시 업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과 입소문을 더욱 증폭하는 효과를 낳았다.

케어링 그룹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보테가 베네타는 브랜드 포지셔닝에 맞춰 홍보를 공식 채널이 아닌 앰배서더와 팬들에게 맡기는 전략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떠난 뒤 #NewBottega 등 해시태그와 팬 계정들이 활발히 브랜드 이야기를 전하며 오히려 자발적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다니엘 리의 디렉팅 아래 디지털 매거진 ‘이슈(Issue)’를 분기별로 발행하여 소셜미디어를 대체하는 콘텐트 플랫폼을 선보이기도 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이 온라인 저널에서 패션 필름, 인터뷰, 에디토리얼 화보 등 심도 있는 콘텐트를 선보이며, 단순히 피드 스크롤에 소비되는 이미지를 넘어 몰입형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러한 고급스럽고 폐쇄적인 디지털 전략은 “과잉 노출보다 의도적인 침묵이 오히려 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2020년대 중반 들어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보테가 베네타의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현재 그리고 미래

2018년 부임했던 다니엘 리의 갑작스러운 퇴임 이후, 2021년 말부터 하우스를 이끈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는 브랜드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취임 후 첫 컬렉션에서 과감한 디테일 대신 기본에 충실한 ‘조용한 디자인’을 선보여 보테가 베네타만의 우아함을 재확인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핵심인 가죽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은 블라지 시대에도 이어졌으며, 케어링 그룹은 그가 재임 기간 보여준 새로운 볼륨감과 가죽 처리의 기발한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3년간 하우스를 이끌었던 블라지는 2024년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보테가 베네타를 떠나 다른 메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테가 베네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인정신과 창의성에 대한 탐구를 담아낸 필름 크래프트 인 모션 (Craft In Motion) 속 장면들. 제작자인 장인과 착용자 사이의 지속적인 관계를 감정과 움직임의 교환을 통한 ‘크래프트 인 모션’ 이라는 비전으로 표현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2024년 기준 약 17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며 케어링 그룹 내에서 두 번째로 큰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23년에는 약 16억4000만 유로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2024년 상반기에만 8억36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 성장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글로벌 CEO 레오 롱고네(Leo Rongone)의 비전과 더불어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 루이스 트로터(Louis Trotter)는 다시 한번 브랜드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조용한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브랜드의 이름 대신 품질과 디자인으로 승부해 조용한 명품의 철학을 확립하고자 한 보테가 베네타.

이러한 절제미와 장인정신을 이어가려는 고집은 보테가 베네타를 세계적 명성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한 원동력이다. 브랜드 로고보다 장인의 손길을, 유행보다 가치와 철학을 앞세우는 이 브랜드는 오늘날 명품 시장의 과잉을 정화하는 ‘미니멀리즘의 목소리’이자, 명품 소비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몬테벨로에 있는 보테가 베테타 아틀리에.

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


보테가 베네타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가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2025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역할을 시작한 트로터는 케어링 그룹 내 유일한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까르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그는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능력과 장인정신에 대한 섬세한 접근 방식으로 주목을 받아왔으며, 오는 9월 밀라노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보테가 베네타 CEO 레오 롱고네는 “루이스 트로터를 하우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맞이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루이스의 미학은 탁월한 디자인과 정교한 장인정신을 완벽하게 결합하며, 그녀의 문화적 증진을 향한 헌신은 우리의 브랜드 비전과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 보테가 베네타는 그녀의 세련된 시각을 통해 하우스의 유산을 기리는 동시에 현대성을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루이스 트로터는 “하우스가 지닌 예술성과 혁신의 유구한 유산은 깊은 영감을 주며, 하우스의 미래에 기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기대된다“고 화답했다.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Copyright © 포브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