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지 단 4개월 만에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는 신인배우였고, 월급은 40만 원.
당시 장인어른은 방송국 간부였고,배우라는 직업을 불안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는 결심했다.
“연기보다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이성재는 결혼을 빨리 결정한 사람이다.
사랑 하나로 결혼을 시작했다.

결혼 후에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현장에서 묵묵히 쌓은 작품들,‘미술관 옆 동물원’, ‘공공의 적’, 그리고 수많은 드라마.
가정을 지키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렸다.하지만 가장 큰 결정은 2010년에 찾아왔다.
아내와 두 딸을 캐나다로 보냈다.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러기 아빠 생활은 어느덧 15년이 됐다.
이성재는 혼자 서울에 남아 배우 생활을 이어갔다.촬영이 없는 날이면 집은 더 조용했다.
배우 이전에 그는 아버지였다. 그의 하루는 늘 가족으로 시작해서, 가족으로 끝났다.

“한 달 수입이 0원이던 날도 있었죠. 그래도 생활비는 밀린 적 없습니다.”
첫째 딸은 캐나다에서 무용을 시작했다.어릴 적엔 포기하겠다며 울기도 했던 아이였다.
이성재는 “한국에 있었다면 더 나쁜 길로 갔을지도”라는 딸의 영상편지를 보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언젠가 가족 곁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어떤 삶을 시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15년차 기러기 아빠 그는 결국...
첫째는 결혼했고, 손자와 손녀가 생겨 할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팬데믹 동안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그는 말했다.
“굶어도 가족은 먹입니다.”
매달 꼬박꼬박 보내는 생활비, 가끔 도착하는 사진과 영상이 전부였다.
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살아간다.

이성재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 앞에서도 그는 조용했다.
소박한 식사, 혼자 맞는 아침,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그게 가장 궁금했어요.”
할아버지가 된 그는 지금도 가족을 위해 사는 중이다. 멀리 있지만, 한 번도 멀어진 적은 없다.
출처=이미지 속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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