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통 끌어안고 오열했다..." 지옥을 버티고 이 전공을 선택한 38년 차 국민배우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겨울, 아무도 없는 화장실 변기통을 부여잡고 9살 꼬마가 피를 토하듯 울고 있다. 매니저도, 부모님도 없이 홀로 체한 배를 부여잡던 아이. 놀랍게도 이 불쌍한 꼬마는 훗날 대한민국을 뒤흔든 '천재 래퍼'이자 38년 차 '국민배우'로 성장한다.

초코파이 하나에 서렸던 9살의 눈물

1987년, 고작 아홉 살이던 꼬마 양동근은 매서운 추위를 뚫고 혼자 촬영장으로 향했습니다. 택시 기사인 아버지와 생업에 바쁜 어머니 때문에 매니저는 꿈도 꿀 수 없었죠.

어느 날 허겁지겁 입에 넣은 초코파이가 단단히 얹혔지만, 꼬마의 등을 두드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차가운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홀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에서는 'TV에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감독의 강압에 억지 눈물을 쥐어짜며 소년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습니다.

지옥을 학문으로 승화시키다

그 지옥 같은 트라우마를 겪었다면 카메라 렌즈만 봐도 도망치고 싶어질 겁니다. 하지만 이 '구리구리'한 매력의 배우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름만 걸어두는 연예인 특례 입학?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는 서일대학 연극영화과를 거쳐 용인대학교 연극학까지, 무려 두 번의 학위(전문학사, 학사)를 쟁취해 냅니다.

단순히 스펙 한 줄 얹으려는 얕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바늘구멍 같은 대구교통공사 시험을 독하게 준비하는 수험생들처럼, 자신을 옭아맸던 '연기'의 뼈대부터 철학까지 아주 밑바닥부터 파헤친 것이죠.

가짜 눈물이 진짜 '마스터'를 만들다

2~3년제 전문학사 과정에서 무대 위 호흡과 발성이라는 실전 '무기'를 연마했다면, 4년제 학사 과정에서는 연극의 미학이라는 묵직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어릴 적 돈을 벌기 위해 기계처럼 짜내던 눈물은, 이제 그가 최신형 스마트폰 화면을 자유자재로 터치하듯 완벽하게 통제하고 조종하는 강력한 예술로 진화했습니다.

상처받은 과거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 학문으로 지배해 버린 셈이죠. 흔한 종이 쪼가리가 아닌, 치열한 삶의 증명서가 바로 그의 학위입니다.

★ 역사적 한 줄 지식 : 1923년 윤백남 감독의 무성영화 '월하의 맹세'에서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아역 배우가 등장했으며, 초기 영화계의 아역들은 성인과 동일한 살인적인 밤샘 촬영을 아무런 아동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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