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입힌 하드웨어에 용도별로 튜닝… '구매자 맞춤형 휴머노이드' 新시장 열린다 [NEW 휴머노이드가 온다]
중국 맹활약... 안정적인 동작, 3000만원 안팎 판매도
중동서 한국까지 수천km 텔레프레즌스 가능성 확인
휴머노이드 기술 화두, 보행 넘어 조작·소통으로 확대
편집자주
로봇은 인간을 얼마만큼 닮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국제제어로봇시스템학회를 찾아 로봇 기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인공지능을 만난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를 진단한다.
1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립전시센터(ADNEC). 중국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업 부스터로보틱스가 전시장 중앙에 로봇 축구장을 차렸다. 휘슬이 울리자 어린이만 한 휴머노이드 두 대가 부지런히 공을 따라 움직이더니 거침없이 공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한 로봇이 먼저 득점에 성공하자 마치 진짜 축구선수가 세리머니를 하듯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축구 경기를 하는 이 로봇을 만드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1년. 부스터로보틱스는 2050년엔 사람과 축구로 경쟁하는 휴머노이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지난 14일 이곳에서 개막한 세계적 권위의 로봇 학술대회 '국제 지능로봇시스템 콘퍼런스'(IROS)에는 각국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내로라하는 휴머노이드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부스터로보틱스를 비롯한 중국의 활약이 거세다. 축구 이외에도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해진 최신 휴머노이드는 더 이상 상상이나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가격과 기능을 놓고 평가받아야 할 어엿한 상품이 됐다.
"기업은 로봇의 가능성 제공, 활용은 구매자 몫"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IROS에선 지난해부터 휴머노이드 전시가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올해 역시 관람객들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단연 휴머노이드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외 과학자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의 영향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과거 평지에서 걷기도 어려웠던 휴머노이드가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로봇과 인사하는 등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이 향상된 건 AI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63개 기업·연구소 상당수가 AI를 접목한 휴머노이드를 내놓았다.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중국이었다. 참여 기관 수도 많고, 기술력도 뛰어났다. 이탈리아나 UAE 등도 팔다리가 달린 휴머노이드를 선보였지만, 지지대에 매달린 채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전원이 나가 멈추기도 했다. 반면 부스터로보틱스나 유니트리 같은 중국 기업 휴머노이드들은 스스로 균형을 유지할 뿐 아니라 위·아래로 점프도 하고,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등 다양한 동작을 안정감 있게 보여줬다.
중국 기업 세 곳은 AI 기술을 접목한 휴머노이드를 2,000만~4,000만 원 선에서 판매도 했다. 이들의 '상품'은 걷거나 달리기, 물건 집기와 나르기 같은 기본적인 동작들이 AI 기술로 학습돼 있어 가능하다. 휴머노이드를 구입한 뒤 기본 이상의 변형 동작을 시키거나 특정 용도에 맞춰 개량하는 건 구매자의 몫이다. 사람을 닮은 로봇 하드웨어에 AI를 장착한 다음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기능이나 용도를 변형하는 '튜닝'이 가능하도록 제작한 것이다. 휴머노이드 상품 판매를 시작한 중국 기업 PND의 리우 홍유 프로젝트 매니저는 "우리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고, 활용하는 건 구매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기본 하드웨어에 얼마나 많은 기능이 장착돼 있는지에 따라 가격에 차이를 두는 식으로 시장성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도 있었다.
휴머노이드의 자율적 동작 대신 소통에 집중하는 흐름도 눈에 띄었다. 사람이 가기 어렵거나 위험한 곳에서 휴머노이드가 사람 대신 일할 수만 있다면 굳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원격조종을 받더라도 쓰임새가 클 거란 발상에서다. 오사마 카팁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IROS 현장에서 '텔레프레즌스1' 기술을 시연했다. 아부다비에서 햅틱 장치를 이용해 수천km 떨어진 미국·한국·싱가포르·독일 연구실에 있는 휴머노이드나 로봇팔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힘, 감정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로봇과 상호작용하는 '유연한 로봇' 단계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카팁 교수는 말했다.
국제학회 전시장 휩쓴 중국, 안 나타난 미국
IROS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들은 '만능'이 아니다. 만들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공장이나 가정으로 들어와 사람을 도울 것처럼 예측됐던 미래 모습과 다소 거리가 있다. 휴머노이드 뒤로 사람이 졸졸 쫓아다니면서 별도의 조종기를 이용해 움직임을 만들어내거나, 커다란 지지대 없이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불안정해 보이는 로봇도 적지 않았다. 완벽한 범용 휴머노이드 개발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장 민 유니트리 세일즈디렉터는 "범용 휴머노이드가 가능하려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데이터, 컴퓨팅 파워,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합작이 필요하다"며 "아직 10%쯤 온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학회에선 적정 수준의 기술만 선보이고, 핵심 '하이엔드' 기술은 보안을 유지하는 게 최근 추세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IROS에 옵티머스, 피규어01 같은 강력한 휴머노이드를 앞세운 테슬라나 구글 등 미국 빅테크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빅테크는 휴머노이드의 동작 시연 영상만 편집해 공개하고 있어 실제 어떤 기술을 썼는지 등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번 IROS를 둘러본 연구자들은 휴머노이드 개발 기업이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황동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기술 화두도 더 이상 보행에 국한되지 않고 조작 방식이나 비언어적 상호작용 등으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아부다비=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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