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수장, 국회에 가다... 논란의 '몸통' 정몽규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현대가 출신으로 세 번의 구단주 경력
2011년 연맹 총재로 행정가 변신
승강제 도입 등 개혁 드라이브 걸었지만
협회장 당선 후엔 '승부조작 축구인 기습사면'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 논란에 사퇴 요구 직면
편집자주
최근 가장 '핫'한 스포츠 이슈를 찾아 주요 인물의 스포츠 인생을 정리해보는 코너입니다. 프로 무대의 스타플레이어를 비롯해 아마추어 '신성', 지도자, 체육단체장 등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변화하는 스포츠 세상 속에 사는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봅니다.
한국 축구계가 유례없는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2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축구 대표팀 감독 부임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한국 축구는 이어진 △승부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 논란 등으로 연일 표류 중이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있었다. 세 번의 프로축구 구단주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거쳐 2013년부터 한국 축구계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의 발자취를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에서 훑었다.
축구와의 첫 인연... '구단주 정몽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 회장의 부친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스포츠에 큰 투자를 하는 현대그룹 특성상 정 회장 역시 자연스럽게 축구계와 연을 맺었다. 그는 현대자동차 부사장에 재임 중이던 1994년 울산 호랑이(현 울산 HD) 구단주로 축구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현대중공업이 울산 호랑이를, 현대차가 전북 현대를 운영하게 되면서 1997년부터 전북 구단주를 맡았다.
그러나 당시 그의 일상에서 ‘축구단 구단주’라는 직함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서전 ‘축구의 시대’에 현대차를 떠나던 1999년 3월을 돌아보며 “평생 직장이라 여겼던 현대자동차와의 이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변화여서 구단주를 그만둔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었다”고 적었다.
이처럼 축구단 운영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정 회장이지만, 그는 현대산업개발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00년 2월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를 인수하면서 축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명예직에 가까웠던 울산·전북 구단주 시절과 달리 이번에는 주도적으로 인수 협상과 창단 준비에 참여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축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회사 규모로 보면 꽤 큰 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구단주로서 그는 부산 팬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는 않다. 초라한 성적표(2015시즌 후 2부 리그 강등. 2019시즌 뒤 1부 리그 복귀 후 재강등)는 둘째 치고, 두 번이나 팀의 사령탑을 내주며 비판을 받았다. 2007년엔 부임한 지 보름 남짓밖에 안 된 박성화 전 감독을 올림픽 대표팀으로 떠나보냈고, 2012년엔 성남 일화(현 성남FC)의 존속을 위한다는 취지로 안익수 전 감독을 성남에 내줬다. ‘한국 축구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명분에서였다. 최근 홍명보 전 울산 감독을 리그 진행 중에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것과 겹치는 대목이다. 구단주로서든 축구 행정가로서든, 그가 '감독 빼가기'에 문제의식을 크게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총재 정몽규'의 K리그 개혁 드라이브
정 회장이 축구 행정가의 길로 들어선 건 2011년 1월이다.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타이틀 스폰서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그는 총재에 취임하자마자 현대오일뱅크와 후원 계약을 체결하며 순조로운 데뷔식을 치렀다.
급한 불은 껐지만,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K리그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건과 맞닥뜨렸다. 같은 해 5월 승부조작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언제부터 승부조작에 가담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일각에서는 리그 중단 목소리까지 나왔다.
사상 최악의 스캔들에 직면한 정 회장은 같은 달 30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다음 날 강원 평창 휘닉스파크에서 선수단, 프런트, 행정가 등 1,000여 명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개최했다.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후 축구계 모든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진신고·고발·포상제도 등 수습책을 발표한 뒤 “대다수의 선량한 선수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리그는 계속돼야 한다”며 리그 강행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신임 총재의 발 빠른 대처와 강단 있는 모습에 축구팬들은 대체로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그는 이 미증유의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수완도 발휘했다. 정 회장은 승부조작 사태가 한창이던 7월 연맹 이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승강제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정 회장은 당시 간담회에서 “K리그 구성원 전체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팬에게 보여줘야만 지금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며 “경기와 리그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승강제 실시가 불가피하다”고 피력했다. 현장에서는 ‘2부리그 강등 시 모기업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 ‘선수층이 얇은 시도민구단은 기업구단에 밀려 강등될 가능성이 크다’ 등의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팬들의 염원이었던 승강제를 2013시즌부터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정 회장은 흥행 성적을 부풀리기 위한 ‘공짜 표 뿌리기’ 관행을 깨고 2012년부터 실관중 집계 제도를 실시했다. 적어도 이 시기만큼은 축구계에 굵직한 족적을 여럿 남긴 셈이다. 이때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2013년 1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 제52대 협회장에 당선됐다.
한국 축구 수장의 연이은 실정
한국 축구계의 수장이 된 정 회장은 연맹 총재 시절 쌓아 올린 개혁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부조작 가담자들에 대한 사면 시도다. 협회는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이 열린 2023년 3월 28일 선발선수 명단 공지 직전에 기습적으로 징계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이 안에는 승부조작으로 축구계에서 제명됐던 48명도 포함됐다.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출발을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팬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대한체육회와 연맹도 협회의 결정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결국 협회가 사흘 만에 사면을 철회하는 촌극 끝에 사태가 일단락됐다.
기습 사면 약 한 달 전에는 클린스만 전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두고도 설왕설래가 오갔다. 클린스만은 독일 대표팀 감독 시절에 이미 재택근무 논란에 휩싸였고,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지휘봉을 잡았던 2020년에는 ‘페이스북 사퇴’라는 기행을 펼쳤던 인물이다. 전술 면에서도 소속 선수가 직설적으로 비판할 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팬들은 국제 축구계에서 ‘자격미달’로 평가가 끝난 감독을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것에 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클린스만 전 감독이 재택근무와 ‘무전술 축구’를 되풀이하며 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결과적으로 클린스만 전 감독은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한 뒤 경질됐다. 그러나 후폭풍은 더욱 거셌다. 위약금 논란이 불거진 상태에서 클린스만 전 감독이 정 회장과의 사적 친분에 의해 선임됐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설상가상 직후 열린 U-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인도네시아와의 8강전에 패하며 파리 올림픽행이 좌절됐다. 2021년 전술 면에서 혹평을 받고 있던 황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정 회장은 “‘40년 만의 본선진출 실패’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일로 축구 관련 게시판에 ‘정몽규 나가’라는 글이 도배되기에 이르렀다.
결정타는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선임이었다. 클린스만 전 감독 후임자 물색에 5개월을 쏟아부은 협회는 지난 7월 갑작스레 홍 감독 내정을 발표했다. 그간 언급됐던 수많은 외국인 감독과 원만한 협상을 진행하지 못한 무능과 불성실, 리그 중 K리그 구단 감독 빼가기, ‘눈 가리고 아웅’ 식 선임 원칙 등에 비판이 쏟아졌다. 여기에 더해 국가대표 출신인 박주호 전 협회 전력강화위원이 ‘절차상의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홍 감독 선임을 둘러싼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홍 감독과 이임생 협회 기술발전위원장이 일선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정작 최종 결정권자인 정 회장은 두문불출했다. 이후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는 클린스만·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대신 “오해” “왜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표팀 감독 선임 관련 감사' 중간 발표를 통해 협회가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전력강화위원회를 배제한 채 절차를 추진했고, 최종 면접을 정 회장이 직접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홍 감독 선임과 관련해서도 △권한 없는 자가 후보를 추천하고 △면접 과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했으며 △이사회 서면 결의는 형식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협회장의 국회 출석... 기로에 선 한국 축구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은 문체위 현안 질의 당시 정 회장에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정 회장 자서전 곳곳에는 현안의 원인을 엉뚱하게 짚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예를 들어 그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유임된 요아힘 뢰브 전 독일 대표팀 감독의 사례를 언급한 뒤 “비이성적 비난이 폭주하는 우리네 풍토에서는 감독직을 유지하는 것, 또는 협회장인 내가 감독직을 유임시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고 적었다.
황당한 해석과 결론이다. 감독들의 거취는 ‘비이성적 비난’ 때문이 아닌 그들의 능력으로 엇갈린다. 뢰브 감독은 부임 초기 세계축구의 전술 트렌드를 성공적으로 독일 대표팀에 이식했고, 이를 토대로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역량을 인정받아 러시아 대회 조별리그 탈락 이후에도 유임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도 러시아 대회를 기점으로 전술상의 문제점이 부각되자 2020 유로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만약 정 회장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일련의 사안들도 이 같은 엉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이달 24일 국회 문체위 종합감사(정 회장 증인 출석 예정)와 이달 말 문체부의 협회 감사 최종결과 발표도 '쇠귀에 경 읽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참고로 그는 종합감사와 별개로 출석 요청을 받은 22일 국정감사에는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방문을 이유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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