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행사 앞세운 무리한 요구에 여론 싸늘…충당금, 금리 등 대·내외 경영환경 가시밭길

동양·ABL생명 인수에 성공한 우리금융그룹이 시작부터 ‘강성노조’라는 암초를 만났다. 동양·ABL생명 노조 측은 100% 고용승계와 거액의 위로금 등을 제시하며 우리금융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론 안팎에선 이러한 노조의 행태를 두고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 우세한 상황이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크고 이제 막 인수 과정을 마친 상황에서 마치 청구서를 내밀듯이 근로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그룹의 혼란만 키우는 행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노조가 제시한 조건 자체가 현실과 동 떨어져 있다는 점은 ‘강성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위로금 1200% 달라” 새 주인 맞자마자 돈부터 달라 생떼 쓰는 동양·ABL생명 노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동양·ABL생명보험지부 노조원들은 2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자신들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목적이다. 이날 노조 측은 “인수에 성공한 우리금융지주는 현재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보상방안에 대해 공식적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양·ABL생명 노조는 지난 19일부터 100% 고용승계와 기본급의 1200%에 달하는 위로금을 지급하라며 우리금융 본사 앞 피케팅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노조원 A씨는 “고용승계와 위로금 지급은 선택이 아닌 의무로, 회사의 정상경영을 원한다면 직원의 생존권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며 “노조의 공식적인 대화 요청에 우리금융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직원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여론 안팎에선 이번 동양·ABL생명 노조의 행보를 두고 ‘도가 지나치다’라는 평가가 우세한 상황이다. 양사 노조가 요구하는 기본급 1200% 수준의 위로금은 국내 보험사 인수 역사상 전례가 없는 무리한 요구라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인수합병과 관련해 인수기업이 피인수기업에게 의무적으로 지원금을 지불해야할 법적 책임도 없다.
그동안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인수기업이 피인수기업에게 일부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져 있었지만 1200%는 전례가 없다. 지난 2021년 오렌지라이프가 신한금융 자회사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오렌지라이프 직원들이 받은 위로금도 기본급의 400% 수준이었다. 지난 2021년 세계 1위 글로벌 손해보험사 처브그룹이 라이나생명을 인수하면서 기본급 800%, 근속보너스 400% 등 1200%에 근접한 수준을 지급하긴 했지만 인수·피인수 기업 모두 외국계라는 점에서 비교 자체에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우리금융의 상황도 거액의 위로금을 지급할 정도로 여유 있진 않다. 올해 1분기 우리은행의 연체울은 0.37%로 4대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조차 받지 못하는 ‘깡통대출’도 크게 늘었다. 1분기 우리은행의 무수익여신 잔액은 79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가량 증가했다. 1분기 5대 금융지주(KB금융·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실적이 뒷걸음질 친 곳도 우리금융이 유일하다. 1분기 우리금융의 당기순이익은 615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3%(2084억원) 급감했다.

동양·ABL생명 노조의 성과를 인정할 만한 부분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말 기준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은 각각 155.7%, 153.68% 등이었다. 전년 대비 각각 37.7%p, 32.28%p 감소한 수치로 양사 모두 금융당국의 권고치(150%)를 가까스로 지키는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성장률 둔화, 내수진작을 위한 금리인하 조치 등 올해 보험사의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양·ABL생명이 쌓아야 할 충당금은 우리금융그룹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역시 대내·외 여건 등을 감안했을 때 고용보장과 매각 위로금 지급을 주장하는 노조의 행태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세창 홍익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기업인수에 따른 노조협상 과정에서 노조원들은 협상전략으로 자신들이 납득할만한 기준보다 더 과도한 기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주문사항이 터무니없이 과도하면 기업의 이미지나 앞으로의 사업 활동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피인수기업보다 인수기업의 자산 규모가 압도적으로 클 때 피인수기업의 직원들이 인수기업의 후광효과를 누리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위로금은 그동안의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매도자가 지급하는 것으로 두 보험사의 매도자는 우리금융그룹이 아닌 다자보험이다”며 “금융지주가 새 식구로 해당 기업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매수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라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선 답할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보험사의 주주총회가 열린 것도 아니고 아직 잔금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르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