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 모두 희소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오스틴은 38주차에 태어났을 때만 해도 꽤 상태가 좋았습니다. 단지 간 효소 수치가 약간 높았죠.”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에 사는 르네 스타스카(31)의 막내 아이로 태어난 오스틴은 눈 마주침, 웃기, 걸음마 시도 등 유아기 주요 성장 지표를 모두 거쳤다.
그러나 오스틴의 간 효소 수치가 의학적 치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의료진은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전화로 유전자 검사 결과 ‘C1형 니만-피크 질환’을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불치병이라고 하더군요.”
‘C1형 니만-피크 질환(NPC)’는 유전에 의한 희소 질병으로 신경 퇴행적 증상을 동반한다.
그렇게 르네는 소아 치매(퇴행성 뇌 질환) 세계로 내던져졌다.
“의사는 제게 ‘컴퓨터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도 말고, 그저 집에 가서 아들에게 사랑만 줘라. 치료법이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그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죠."
우선 르네는 당시 4살이던 아들 허드슨과 2살 난 딸 홀리의 유전자도 검사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결과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세 아이 모두 불치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말 충격이었죠. 그리고 (치료가 목적이 아닌) 완화 치료만을 권유받았습니다.”
'C1형 니만-피크 질환'이란?
난치성 유전 질환인 C1형 니만-피크 질환(NPC)의 발병률은 15만 명 중 1명 수준으로, 환자는 주로 유아기에 증상을 보인다. 환자의 평균 기대 수명은 고작 9살이다.
NPC는 비정상 유전자를 지닌 부모로부터 유전자 사본 2개를 모두 물려받은 아이에게서 나타나며, 발현 확률은 4분의 1꼴이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에 따르면 NPC와 같은 소아 치매는 기억력 퇴행, 균형 감각 퇴행, 폐와 간 기능 부전, 운동 발달 지연, 발작 등의 증세를 동반한다고 한다.
아동 치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관련 연구를 장려하고자 설립된 호주의 비정부기구 ‘아동 치매 이니셔티브(CDI)’는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퇴행성 뇌 질환에 걸린 아동이 약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와 유전자 검사 시스템을 보편적으로 갖추지 못한 탓에 저중소득 국가의 관련 데이터는 대부분 제한된 편이다.
진단받은 지 5년이 지난 지금, 르네의 큰 아들과 딸 또한 이 병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큰 아들 허드슨은 학교에서 매우 뒤처진 상태입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죠. 길을 건널 때도 충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눈의 움직임도 줄었고 자주 피곤해합니다.”
“딸 홀리 또한 시력에 영향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뒤처진 상태로 사회성도 떨어집니다.”
르네의 세 자녀들은 가능한 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중 치료, 작업치료, 물리 치료 등 다양한 치료 세션에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한편 르네는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처지의 메간 맥과 맥이 설립한 CDI를 우연히 알게 됐다.
'산필리포 증후군'이란?
10년 전, 맥은 직장을 다니며 5살도 안 된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느라 “아름다운 혼돈”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4살 난 딸 이슬라가 소아 치매의 일종이자 또 다른 희소 유전병인 ‘산필리포 증후군’ 진단을 받게 됐다.
“진단 당시만 해도 이슬라는 대부분 언어와 의사소통 발달이 늦는 등 가벼운 증상을 보였습니다.”
“이슬라는 단어를 말하긴 했지만, 단어를 연결해서 말하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 속도가 느렸어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 봤습니다.”
이슬라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는 맥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지금 이 상황이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맥은 “엄마의 직관이었고 본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데려가 (선천성 유전적 요인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유전자 패널 검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산필리포 증후군을 진단받았습니다. 만약 당시 검사하지 않았더라면 진단받기까지 몇 년이나 더 걸렸을 것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산필리포 증후군은 현재 치료법이 없으며, 환우 대부분이 20세가 되기 전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맥에겐 매 순간이 소중하다.
곧이어 맥의 2살 난 아들 주드도 같은 병을 진단받았다.
“아이들의 아빠와 나 모두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는 맥은 “불행히도 내가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그 유전자를 물려주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슬라는 원래 글도 읽을 줄 알았습니다. 뛰고, 점프도 하고, 수영도 할 줄 알던 소녀였죠. 예쁜 옷 입기를 좋아하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던 활발한 어린 소녀였습니다.”
NHS에 따르면 산필리포 증후군 환자는 뮤코다당류를 제대로 분해하는 단백질이 부족하다. 이러한 다당류가 계속 세포 안에 남아 뇌를 포함한 모든 장기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하게 되는데, 광범위한 염증을 유발하며 중요한 뇌 조직이 사라지게 된다.
이로 인해 발달 지연, 청각 장애, 과격한 행동, 행동 문제,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된다.
맥은 “현재 이슬라는 14살, 주드는 12살”이라면서 “아이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슬라는 제가 누군지 거의 모릅니다. 집을 나가 방황하곤 하는데 치매를 앓는 노인이 보통 겪는 증세죠.”
맥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사망하면 겪을 사별, 예상되는 슬픔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면서 “그러나 (희소병 부모들은) 현재 우리가 겪는 것, 조금씩 사랑하는 이를 잃어가는 슬픔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했다.
더 많은 연구의 필요성
CDI의 연구 책임자인 크리스티나 엘비지 박사는 소아 치매 연구 분야의 임상 시험 부족을 지적했다.
“소아 치매 관련 임상 시험은 소아암에 비해 12배나 적다”는 것이다.
“매년 호주에서 (소아 치매로 사망하는 환자 수가) 소아암 환자 수와 비슷한데도 말입니다.”
한편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세포 및 유전자 치료를 가르치는 브라이언 비거 교수는 주로 어린이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 퇴행성 대사 질환에 집중하고 있다.
비거 교수는 “임상 시험을 통해 가장 가능성 있게 손꼽힌 치료법은 유전자 치료”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치료란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이용해 비정상 유전자를 수리 혹은 대체하는 치료법이다.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혈액, 척수, 심지어는 뇌로 특정 유전 물질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2번째 방법은 환자의 골수에서 채취한 환자의 혈액 줄기세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줄기세포는 그 어떠한 혈액 세포 유형이든 될 수 있다. 바이러스 전달체로 이 줄기세포가 환자의 몸으로 되돌아가고, 이때 환자는 반드시 화학요법을 받아 줄기세포가 건강한 세포로 발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이 치료법은 뇌로 향하는 경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비용이 무척 비싸다.
비거 교수 또한 “이러한 질병과 치료법이 지닌 문제점 중 하나는 시장에 내놓기엔 그 값이 너무나도 비싸고, 치료법 개발에도 수백만 달러가 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상 시험에서 환자 5명에게 투여했는데, 당시 2살이었던 환자 2명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은 스쿠터 타기 등 복잡한 일을 할 수 있었으며, 남동생과 대화도 가능했습니다. 보통 산필리포 증후군을 앓는 환자라면 하기 힘든 기능이죠. 또 다른 아이 또한 치료에 잘 부응해 혼자 안경을 쓸 수 있었습니다.”
산필리포 증후군 자녀를 키우는 건 때론 힘이 들어 이러한 내용이 작은 성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론 엄청난 의미라는 게 비거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진은 해당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 대부분이 일반적으로 증세가 가장 심각하게 발현되는 연령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달라고 강조했다.
한편 호주의 CDI와 긴밀히 협력하는 영국의 자선단체 ‘니만-피크 UK(NPUK)’는 ‘소아 치매’라는 포괄적인 용어 사용이 대중의 인식을 높일 것으로 본다.
현재 정부의 더 많은 지원을 촉구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는 NPUK의 토니 A 매디슨 대표는 “희소병에 대한 지원과 서비스, 치매에 대한 지원과 서비스 간 단절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정부가 소아 치매를 치매 관련 정책에 포함시켜주길 바랍니다. 소아 치매의 심각성과 시급성, 관련 희소 질병 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죠.”
한편 맥의 아들 주드는 비록 어휘는 한정됐으나 여전히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 딸 이슬라는 이제 언어 능력을 거의 잃었지만 한 가지 특별한 단어는 여전히 말할 수 있다.
“이슬라는 행복할 때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행복해(happy)’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제 마음이 녹아요.”
“보통 부모라면 자녀가 내뱉을 첫 단어를 손꼽아 기다리죠. 하지만 (저처럼) 자녀의 마지막 단어가 무엇일지 걱정하며 지내진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