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송이와 깍두기 [달곰한 우리말]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름철 별미로 '오이송송이' 담는 법이 인터넷상에 여기저기 소개되어 있다. 대개는 오이를 3~4㎝ 길이로 토막 내고 이를 다시 4등분, 자그마한 윷가락처럼 잘라 소금에 절인 후 양념에 버무려 만든다. 그러니 잘라낸 오이 토막의 한쪽 단면에 십(十) 자로 칼집을 내고 그 틈 사이로 부추 소를 넉넉히 박아 넣은 오이소박이와는 다른 음식이다. 다만 송송이가 깍두기의 사투리여서 간혹 '오이깍두기'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감이 좀 달라 그리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다.
국어사전에서 송송이는 '궁중에서, 깍두기를 이르던 말'로 풀이된다. 예전에 대궐 안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반 사회와 다른 단어들을 쓰기도 했는데 송송이가 그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1889~1972)의 회고에 따르면 궐내에서 무를 아주 반듯하게 썰어 "송송이"를 만든다 했으니 이는 특정 사회집단에서 사용하던 사회방언이 분명하다. 그것이 궁중에서만 쓰이는 특수 계층의 말이었기에 표준어로 선택받지는 못했다.
지역적으로는 대체로 전국에서 깍두기(깍뒤기, 깍데기)를 쓴다. 단지 전북의 똑똑이(똑떼기, 똑딱지)나 전라 및 경남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쪼가리지(쪼각지) 정도가 예외다. 이 중에 쪼가리지는 쪼가리(=작은 조각)에 지(=김치)가 붙은 형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표준어를 정한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에도 이 단어가 나온다. 이 책 속의 '깍두기'는 크고 진한 글씨로 쓰였고 바로 옆에, 작고 흐린 글씨의 '송송이, 똑똑이'가 나란히 놓였다. 그래서 글자 모양만으로도 송송이와 똑똑이가 사투리라는 사실이 쉽게 드러난다. 이들은 각각 의성의태어 '깍둑(=조금 단단한 물체를 그냥 막 써는 모양), 송송(=연한 물체를 조금 가볍게 빨리 써는 모양), 똑똑(=단단한 물체가 잇따라 끊어지는 소리나 모양)'과 관련된 어형이다.
음식으로 한정하면 깍둑과 똑똑은 단단한 재료, 송송은 '파'처럼 단단하지 않은 재료를 자를 때 쓴다. 한석봉 어머니가 깜깜한 방에서 꾸덕꾸덕한 떡을 똑똑 썰었을 때는 '같은 간격으로 가지런히' 썰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깍둑과 똑똑은 정연함이 없고 있고의 차이다. 이처럼 어감이 다 다르니 깍두기 하나만 사용하는 건 언어생활의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더 적절한 표현을 찾아, 결국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위해 언중들 사이에 송송이란 말이 유통·확산되고 있는 것일 테다.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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