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진주 출신, 초등교사로 근무 중 남로당 활동 등 사상 문제로 일본 밀항 항구 창고지기로 일하며 그림에만 몰두 1952년 등단… 차별에도 日 미술계 견인 재일조선인 삶 바탕 ‘비판적 리얼리즘’ 구현 1960년 가족과 월북 후 활동 소식 끊겨
조양규(曺良奎, 1928~미상)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42년 관립 진주사범학교(현재 국립진주교육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재학 시절 집 한편에 화실을 마련해 그림을 그렸고, 4학년 학적부에는 ‘미술에 열심’이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그림에 몰두했다고 한다. 1946년 졸업 후, 진주중앙국민학교(현재 진주중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이곳에서도 강당 뒤에 화실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남로당원으로 몰려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고, 여수 사호도 친척집에 숨어지냈다. 1947년에는 부산 토성국민학교(현재 토성초등학교)에서 다시 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교정에 인공기가 게양되는 사건에 연루되면서 결국 1948년 10월 일본으로 밀항하게 됐다.
조양규는 도쿄의 에다가와(枝川) 재일조선인 마을에 정착한 뒤, 어떠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정착과 창작에만 몰두했다. 당시 에다가와 재일조선인들은 대다수가 실업 상태로 쓰레기를 주워 생활하거나, 항구의 창고지기 노동자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처참한 삶을 살았다. 조양규 역시 창고지기 등 노동을 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갔다. 1949년에는 무사시노대학에 입학해 미술 수업을 받았으나, 결혼 후 생계 문제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퇴했다. 본격적인 등단은 1952년 ‘앙데팡당전’에 ‘조선에 평화를!’과 에다가와 재일조선인 마을 풍경 스케치 2점을 출품하면서였다. 이후 일본 화단에 주목받게 되면서 미술비평가 다키구치 슈조(瀧口修造)의 기획으로 1953년 다케미야(竹宮)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고, ‘신구상전’, ‘닛뽄전’, ‘43인전’, ‘46인전’ 등에 출품한다. 1955년에는 자유미술가협회의 회원으로 추대됐고, 1958년에는 ‘제2회 야스이 상(安井賞)’ 후보, 1959년 ‘제3회 야스이 상’ 후보 신인전에 출품했다. 1959년에는 무라마쓰(村松) 화랑에서 두 번째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요미우리(讀賣) 베스트 3’에 선출됐으며, 1960년에는 ‘미즈에 상(みづゑ賞)’ 선발전에 출품하는 등 급속 성장을 이루며 당시 전후 일본 미술계를 견인한다.
재일조선인으로서 차별과 핍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일본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조양규의 예술세계는 과연 어떠했을까. 그 작업의 핵심은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비판의식, 현실 인식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등 복합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비판적 리얼리즘’을 표현하고자 한 것에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사회와 현실의 문제, 특히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문제와 상황들을 다루었다. 표현에 있어서는 인물이나 사물 같은 대상을 상징적이며 함축적으로 다루기 위해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구도를 선택하고, 밀도를 높이며 마티에르를 살렸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비판적 리얼리즘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실존적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조양규의 예술세계는 크게 ‘창고’ 시리즈와 ‘맨홀’ 시리즈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재일조선인이자 최하층민으로서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노동의 본질과 노동자의 소외를 작업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1955년에 제작된 ‘31번 창고’는 ‘자유미술전’에 출품된 ‘창고’ 시리즈의 초기작이다. 반쯤 열린 파란 창고문과 대비된 ‘31’이라 쓰인 붉은색 숫자가 강렬하다. 그 앞에 한 손에 봉지를 든 채 팬티만 입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가 있다. 머리는 몸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작게 표현돼 있고, 상대적으로 큰 몸체와 앙상한 팔다리를 가졌다. 몸은 경직돼 있고, 얼굴 표정은 지쳐있음을 넘어 넋이 나간 상태를 보여준다. 거친 붓놀림과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 표현한 몸은 상처와 땀으로 얼룩져 있다. 한편, 같은 해 제작된 ‘목이 잘린 닭’은 털이 뽑히고 목이 잘린, 손질된 생닭을 화면 가득 그린 작품이다. 연두색 큰 바구니를 제외하고 닭과 바닥을 표현한 거칠고 날카로운 붓질들과 닭의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물감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적당히 먹여지고 키워지다 필요에 의해 한순간 생을 달리한 이 생명체의 모습은 당시 재일조선인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밀폐된 창고’는 1957년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그림 전체는 창고의 파란벽으로 가득 차 있고, 붉은색으로 ‘S15’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화면 하단에 있는 두 명의 인물은 목 위 얼굴만이 보인다. 짧은 머리에 검회색과 검붉은색으로 표현된 얼굴은 단단하고 강하게 표현되었지만, 표정은 어쩐지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하다. 훗날 북행을 선택하고 남긴 조양규의 글에서 그 의도를 명확히 엿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 정경일 것. 자본주의적 사회기구의 상징으로서의 창고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 생산 현장이 아니라 생산물 수적 과정에서의 노동력 흡수. 여기에 보이는 기구와 인간의 부조리한 분리 등이 나의 주된 과제로서 시도되었다. 〈31번 창고〉(1955), 〈L창고L〉(1957)부터 〈밀폐된 창고〉(1957)로 나아가는 속에서 차츰 그 대립 갈등을 명확화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조양규, ‘일본의 벗이여 안녕’ 중 ‘미술수첩’, 1960년 10월호)
1959년 도쿄에서의 조양규.
1959년 도쿄에서의 조양규.
‘맨홀 B’는 1958년 ‘자유미술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뚜껑 열린 맨홀과 파이프, 호스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회갈색을 사용해 밀도를 높이고 거친 마티에르를 통해 바닥과 자재의 단단하고 무거운 질감을 살렸다. 특별한 것은 작품의 구성인데, 앞서 ‘창고’ 시리즈에서와 같은 직선 구조에서 벗어나 곡선 구조의 사물을 역동적으로 배치하며 인물은 배제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맨홀(공사 현장) 그 자체를 당시 일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상징적 매개로 삼았다. 1958년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삶에 밀착된 고찰과 이를 관통하는 해탈적 시선이 결합된 과감한 표현이다.
조양규, 인물 소묘, 1953년, 종이에 펜, 37.5×2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양규, 인물 소묘, 1953년, 종이에 펜, 37.5×2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59년 북한과 조총련은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보내는 북송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당시 조양규는 남한에서의 남로당 활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황과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 그리고 모국의 현실과 민중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열망 등 복합적 이유로 북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양규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1960년 10월 스스로 북송선을 탔다. 당시 신문 기사와 잡지에 ‘맨홀 화가 북조선으로 돌아가는 기록’, ‘북으로 귀국하는 조양규’ 등 그의 귀국 기사가 실렸을 정도로 조양규는 일본 화단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음에도 이 선택을 단행했다.
모국의 풍경과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던 조양규는 북한으로 귀국 후 여러 곳을 탐방하며 화폭에 풍경을 담았고, 체코로 유학하러 갔을 정도로 북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 리얼리즘에서 북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전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북한에서 조양규의 이름과 그의 흔적은 1960년 후반 이후 찾을 수 없게 된다.
해방 후 사상 문제로 일본으로 도피해 재일조선인으로서 받은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일본 미술계를 주도했던 조양규, 그러나 그는 다시 조선인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런 그의 삶이 단지 안타까움만 남는 것은 아니다. 진주에서 태어나 20여년만을 살았지만 조국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가장 낮은 곳의 삶을 진실되게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신념과 예술론들은 시대를 초월한 작품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경남이 낳은 예술가 조양규의 작품은 경남미술사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위대한 유산으로 기록되고 연구될 것이다.
경남도립미술관 최옥경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홍지석, ‘1960년 재일조선인 미술가들의 북한 귀국 양상과 의미-조양규의 사례를 중심으로’, 〈통일인문학 제58집〉, 2014.
-홍윤리, ‘조양규의 모국 표현 작품에 대한 연구’, 〈인문과학연구논총 제37권 1호〉, 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6.
-광주시립미술관, 조양규 탄생 90주년 기념전 ‘조양규, 시대의 응시-단절과 긴장’ 전시 도록, 광주시립미술관,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