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까지 덮어주는 것은 아니다!

[정규수의 스포츠 심도있게 바라보기]
'공정함이 시대정신'이 된 지금
정부마저 축구협회 중징계 결정내려
미국 NFL서 다양성 제도화한 '루니의 룰'
유색인종 감독들 대거 탄생...행정직까지도
세상은 공정함으로 열려가는데, 우리는 왜?

홍명보 감독 선임의 불공정성

필자가 이번 국정감사에서 홍명보 감독과 관련한 논란을 들었을 때 마음이 뒤숭숭했었다. 배신감일까 아니면 섭섭함일까. 잠깐 헷갈렸지만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라는 그 유명한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렸다. 우리 독자들께서 무슨 헛소리야라고 생각하셔도 필자는 그랬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스페인과의 8강전 승리 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양 주먹을 쭉 뻗으며  달려가던 그 모습. 늘 과묵해 보이던 그 얼굴에서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나왔을 때 우리 모두의 마음은 빼앗겼다. 그 이후로 런던 올림픽, 브라질 올림픽, 광저우 아시안 게임 등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화려한 경력뿐만 아니라, 17년 만에 울산 현대를 2022년 K1리그에서 우승시키고 2023년에도 우승을 거머쥔 건 축구 지도자로서의 화룡점정. 강력한 카리스마와 무엇보다 원팀을 중요시하는 축구 지도자 및 행정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러한 홍명보가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되는 과정이 불공정했다. 아니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자에게 그게 무슨 말인가라고 하신다면 감히 말씀드린다.  '시대정신에 어긋나셨다'고. 우리는 대한축구협회가 가져온 클린스만 참사로 상처받았었다. 그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국감에서 드러난 홍명보 감독의 '둔감성'으로 더욱 쓰라리기만 하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우리 국민은 스포츠에 우리의  시대정신을  투영한다.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앉은 이중 왼쪽이 유인촌 문체부 장관, 오른쪽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시대정신이 된 공정성

우리는 공정성에 민감하다. 대한민국은 공정 사회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1%라도 좀 더 공정해지길 원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시대정신이다. 최근 대한민국은 공정성 문제로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는데, 공정성은 집단 지성으로 뒷받침되는데, 많은 국민이 2026년 월드컵에서의 희망을 꿈꾸고 있는데, 그 자리는 공정함의 끝판왕이었어야 함을 정말 몰랐을까? 정말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더라면 그냥 뭉개고 갈려고 했던 것이다.

국감에서 드러난 감독 선임과정에서의 대한축구협회의 미숙함과 정몽규 회장의 협회장 4선을 위한 빌드업을 종합해볼 때, 홍명보 감독에 대한 여론의 뭇매는 본인에게는 억울할 법도 하다. 더욱이 엘리트 축구인으로서 쌓아온 업적뿐만 아니라 연예인 못지 않은 대중적 이미지로 그야말로 꽃길만 걸어온 그에게는 모든 것이 야속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주어진 책무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급변하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모르는 것도 대한민국의 국민들과 축구팬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벤투 감독은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추어 대한민국 대표팀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정반대로 클린스만 감독은 실패한 감독 선임이 가져온 참사를 곱씹을 수 있는 반성의 기회를 줬다. 세계축구의 흐름에 맞추어 대한민국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국민 눈높이다.

미국프로풋볼(NFL)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혔던 댄 루니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 회장. '루니의 룰'을 만들어 리그 전체로 확대시키고, 스스로 흑인감독을 선발하는 등 제도화에 앞장섰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 탄생한 '루니의 룰'

이제부터 미국 사례를 전해드리고자 한다. 스포츠 최강국은 바로 미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미국이 스포츠를 단순한 운동 경기 이상의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바라보며 그 산업의 건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프로미식축구리그(NFL)의 “루니의 룰”(Rooney’s Rule)이다. 많은 독자들께서 루니의 룰이라는 용어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이 규정은 NFL 각 클럽의 감독 채용에 있어서 적어도 한명 내지는 다수의 유색 인종 후보자를 포함시켜야만 하는 것을 강제하고 있다.

NFL의 직장 다양성(Workplace Diversity) 위원회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당시 위원장이었던 단 루니(Dan Rooney)의 이름으로 명해졌다. 루니는 이후 NFL의 전통적 명문 클럽인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구단주가 되었다. 참고로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배출한 슈퍼스타 중 한 명이 바로 한국계 흑인 선수인 하인즈 워드인데 2006 슈퍼볼 MVP 수상 등 그의 최고 전성기 시절 당시 구단주가 바로 루니였다.

당시 중서부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중 몰락해가는 백인 노동자들의 도시인 피츠버그에서 펼쳐졌던 하인즈 워드의 맹활약도 루니가 NFL 전반에 걸쳐 조성한 소수 인종을 위한 노력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루니의 룰'은 NFL 클럽들의 감독 자리에 늘 백인 남성들만 후보자였던 것을 개선하기 위해, 인종의 다양성을 통해 실력과 자질로써 감독을 선발하는 것을 규정화시킨 것이다. 즉, 정책적으로 감독 후보자들의 인종 다양성을 추구하여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감독을 선발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루니의 룰'이 더욱 강력한 이유는 이 정책이 NFL 모든 클럽에 걸쳐 감독뿐만 아니라 행정가 및 관리자의 선발 과정에도 포괄적으로 확대 적용되기 때문이다. NFL 직장 다양성 위원회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위원회로 그 명칭을 바꿔 소수 인종뿐만 아니라 여성을 위한 채용 정책도 전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이 위원회는 2022년에 소수 인종 지원자의 범위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을 명문화시켰다.

'루니의 룰'의 효과성에 대해서 설명드리겠다. 루니의 룰이 처음으로 적용되었던 2003년에는 NFL총 32개 클럽에서 비(非)백인 감독은 오직 2명이었다. 이는 2024년에 9명으로 증가했다. 약 20년에 걸쳐 비백인 감독의 비중이 6%에서 28%로 증가한 것이다. 일부 독자는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함이란 게 그렇다. 정책 수립 및 실행을 통한 단기적이며 가시적인 효과도 분명 중요하지만 문화 확산과 사회 인식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홍명보 감독 선임 문제로 돌아오자. 10월 28일 방한한 국제축구협회(FIFA)의 인판티노 회장은 정몽규 회장과의 만남 후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밝히며 대한축구협회 및 정몽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틀 후 대한축구협회 노동조합은 정몽규 회장의 협회장 4선 도전을 막기위한 방법은 대의원 총회를 통한 회장 탄핵뿐이라며 정몽규 회장의 불출마를 촉구했다.

그리고 11월 5일 문체부는 7월부터 이어져왔던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몽규 회장에게는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했으며 홍명보 감독 선임에 관해서는 재선임을 하더라도 훼손된 절차적 정당성을 복원하라고 요구했다. 즉,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감독을 다시 뽑든지, 아니면 계약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라는 것이다. 문체부는 감독 재선임 과정은 축구협회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다면서도 국민 눈높이에 부응할 것을 주문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우리 사회에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능력주의의 폐해가 걱정이다. 단일 민족 공동체를 오랫동안 유지한 대한민국은 아직 다양성을 통한 공정함에 익숙하지 않은게 현실이다. 우리는 공정하지 못할 때 분노하지만 여전히 결과 위주의 능력주의에 많이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는 모두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평등한 조건이 공정함의 지표로 간주된다. 평등함과 공정함은 다름에도 말이다. 특히 매 경기마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고 기록이 명확하게 나오는 결과 위주의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전의 승리 때문인지 능력주의로 기우는 우리를 본다.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최현준 감사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결과 최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축구에서도 '공정함의 룰'을 만들어보자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더 다양하고 더 투명할 때 더 힘이 생기지만 우리는 아직 이를 몸소 체감한 적이 거의 없는 탓이다. 반면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취득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많다. 만약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통한 공정함을 챙겼더라면 '그 나물의 그 밥'이라는 평가를 들은 홍명보 감독의 선임이 이루어졌을까? 만약 축구협회가 조금이라도 행정에 있어서 다양성을 통한 투명성을 고려했다면 '밀실 행정'이라 비판받은 홍명보 감독의 선임이 이루어졌을까? 만약 정몽규 회장이 한국식 '루니의 룰' 같은 정책을 실행할 의지가 있었더라면 협회장 4선에 도전할 마음을 가졌을까?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자 고민거리이다.

혹시 독자 중에 필자가 대한축구협회만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은 없으실지 모르겠다. 아니면 축구협회에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너무 간섭한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축구협회뿐만 아니라 현재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간의 갈등도 들어보셨다면 체육 행정 단체에 대한 정부의 관여 정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시길 권한다.

글을 쓰면서 2002년 월드컵 때 홍명보 주장은 '4강 신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당시 홍명보 주장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마침 한 방송국 프로에서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가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을 들었다. 홍명보 주장이 대답하기를, “히딩크 감독은 이전 감독들과 다르게 선수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었고 그것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였다. 선수 개개인에 대한 인격적 대우는 선수 한명 한명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했던 것임을 확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 정규수 교수는 현재 미국 케네써 주립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후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어스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 이민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주로 연구하며 미국 및 한국에서 일어나는 스포츠 현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경영관리적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안계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학술 활동 이외에도 미주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한 한인 스포츠 단체들의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