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다니다 벤처 투자가로 변신…회사 100개 판 이 사람의 조언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9. 2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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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 인터뷰
사이릭스·도큐사인 등 상장
매각 성공 기업도 100여개
“한국 벤처 기술잠재력 풍부
정부지원금 의존 하지말고
정통VC 투자 목표삼아야
글로벌무대서 활약 가능해”
이인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40여 년 전, 출장으로 미국을 찾았던 LG상사 직원은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1980년 미국 회사에 취업했고, 수년 뒤엔 직접 현지에 무역회사를 세웠다. 1990년대 들어선 ‘혁신의 성지’ 실리콘밸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벤처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인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는 반도체 업체 사이릭스, 전자서명 업체 도큐사인 등 수많은 기업의 기업공개(IPO)와 매각을 성사시켰다. 그가 지금껏 나스닥에 상장시킨 기업만 8개, 매각에 성공한 기업은 100여 개에 달한다. 최근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지난 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LG 스타트업 발굴 육성 행사 ‘LG 슈퍼스타트 데이 2024’에 참가해 강연을 펼쳤다. 이어 10일엔 서울대 공대 창업동아리 학생들과도 만나 창업 노하우를 전했다.

강연을 마치고 매일경제와 만난 이 교수는 “40년 만에 돌아와 만난 LG·벤처 업계 후배들의 에너지는 놀라웠다”며 “‘아이디어 천국’인 한국 벤처의 미래를 상상하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한국의 통신 인프라는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아요. 한국인은 변화에 민감하며 최고가 되고자 하는 경쟁심도 강하죠. 빨리빨리 문화도 벤처 창업엔 도움이 되는 덕목입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한국에서 탄생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벤처회사는 국내 벤처인들의 역량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인 싱가포르국릅대 교수가 ‘LG 슈퍼스타트 데이 2024’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 벤처 업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조언들을 쏟아냈다. 먼저 그는 벤처 관련 모임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라는 조언을 내놨다. “물론 중요한 모임을 통해 값비싼 정보를 얻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실리콘밸리 등에서 만난 성공하는 창업자들은 모임보다는 항상 사업에 초집중하는 부류였습니다.” 네트워킹 등을 위한 단합대회나 세미나, 술자리 등의 모임에 국내 벤처 업계가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실패를 미화하는 문화도 짚었다. 그는 “벤처 관련 강연에 가보면 아직도 ‘뜨거운 가슴과 열정으로 부딪혀보라’고 한다”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책임 못 질 무책임한 소리”라고 꼬집었다. 한 번 창업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에 성공하긴 더 어려우며, 실패한 트랙 레코드를 쌓은 창업가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경고다.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냉철한 이성이에요. 열정은 그다음이죠. 꼼꼼한 분석 후에 창업해야 실패했을 때도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창업 전 철저한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내수 시장을 공략할 건지, 글로벌 무대로 나갈 건지를 명확하게 디자인해야 해요. 한국에서 해보고 잘되면 글로벌 시장도 공략해 보겠다는 안일한 전략으로는 절대 글로벌 벤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어 그는 “범위가 작더라도 일단 한 가지 사업 분야를 파고들어 성공을 거둬야 확장도 가능하다”며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벌여서는 절대 성공 못 한다”고 조언했다.

이인 싱가포르국릅대 교수가 ‘LG 슈퍼스타트 데이 2024’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지원자금에만 의지하는 일부 창업 회사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통 VC들을 상대로 투자를 유치해보는 것은 기업의 장기 존속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미국에 비해 국내엔 정부지원만 바라보는 벤처 기업이 많아 보여요.” 이어 그는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차고에 사무실을 차리고 스스로 성장의 길을 찾아 나갔다”며 “맨땅에서 시작해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겪으며 생존력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토종 스타트업의 탄생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나는 업계 사람들에겐 항상 ‘벤처의 보석을 찾으려면 한국에 가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는 돋보여요. 더 많은 한국 토종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자리매김할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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