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머니피치’에서는 각 팀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팀의 결정적 순간은 대부분 우승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다양한 이야기를 얽히고설키게 한다고 해도 식상한 소재의 나열에 그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단순히 팀의 결정적 순간만이 아닌 선수나 지도자, 그리고 관계자의 모멘텀이 된 순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고영표(KT), 김민우(한화), 뷰캐넌(삼성), 안우진, 애플러(이상 키움), 폰트(SSG).
이들 6명의 공통점은 지난해 1차례씩 완투를 기록한 데 있다. 즉, 지난해 KBO리그에서 선발 투수가 1경기를 끝까지 책임진 게임은 단 6경기에 그쳤다. 그리고 롯데, 두산, KIA, LG, NC에서는 단 한 명의 선발 투수가 한 경기도 완투하지 못했다. 완투가 잘 나오지 않는 데는 마운드 운영이 전문화·분업화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현대 야구에서 한 경기를 책임지는 게 더는 선발 투수의 미덕이 되지 않게 됐다.
그런 완투를 통산 100차례나 기록한 대투수가 있다. 바로 역대 최고의 완투형 투수로 평가받는 윤학길 전 롯데 2군 감독이다. 1986년에 데뷔해 1997년까지 12시즌을 롯데에서만 오롯이 뛰며, 등판한 308경기 가운데 선발로는 231경기에 나섰다. 즉, 완투율은 43.3%. 선발로 나선 거의 절반의 경기는 완투로 장식한 것이다.
“대부분 선발 투수가 그렇지만 첫 번째 이닝, 즉 1회가 항상 어려웠다. 그 1회만 무사히 넘기거나 투구 수가 많지 않으면 그냥 9회까지 쭉 던졌다. 거기에 투구 수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삼진보다는 타자를 맞혀 잡는 데 주력했다.”
“사실 제 자신이 완투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끝까지 던지겠다고 한 경기는 몇 게임 안 된다. 대부분 벤치, 즉 감독님들이 판단한 거다. 이닝을 보면 바꿀 때가 된 것 같은데 투구 수가 적으니까 밀어붙였던 것 같다. 장기 레이스에서 불펜 투수를 아끼는 것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도 있으니까.”
완투한 100경기에서 승률은 0.740로 꽤 높은 편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1990년 7월 4일 빙그레(현 한화)와의 더블헤더 1차전을 손꼽았다.
“그날 1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안타는 2회에 이중화에게 맞아 일찌감치 노히터 등은 날아갔지만, 그 안타 하나만 없었어도 대기록을 세웠을 텐데…. 그런 아쉬움은 남는다. 또 7회에는 공 3개로 끝냈다. 한 타자당 공 1개씩 던져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거다. 사실 1안타 완봉승은 대학 때도 기록한 적이 있다. 1981년 연고전에서 1안타만 내주고 3-0 완봉승을 올렸다. 안타는 김근석(삼성-청보-태평양)에게 유일하게 맞았다.”
“또 다른 한 경기는 1988년(6월 4일) 사직에서 열린 OB(현 두산)전이다.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뒀다. 볼넷도 몸 맞는 공도 하나도 내주지 않은 건 그만큼 제구가 잘 됐다는 뜻이다. 거꾸로 아쉬운 경기도 여럿 있다. 1995년(6월 21일) OB전이 그렇다. OB 선발 투수는 김상진. 저랑 (김)상진이랑 끝까지 던졌는데 0-1로 졌다. 김상진은 완봉승을 거뒀고, 저는 완투패를 기록한 거다. 7회에 기억하는데 이도형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게 패인이었다.”
1995년 OB전을 유독 더 아쉬워한 데는 팽팽한 승부도 있었지만 투구 수에 있었다. 윤학길 전 2군 감독은 공 75구를 던지며 완투했다. 이것은 역대 최소 투구 완투패 기록이었다(역대 최소 투수 완투승은 1987년 청보 임호균이 기록한 73구). 그가 완투한 100경기 가운데 1-0 승부가 펼쳐진 적은 9차례 있었다. 그중 3경기는 이기고 6경기는 졌다. 특히, 1989년 9월 12일 태평양전에서는 2안타만 내줬지만 타선의 지원을 못 받고 고배를 마셨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그의 완투 승률은 0.740으로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무수한 완투패를 기록한 비운의 투수로 기억하는 팬이 적지 않다. 이것은 타선과 수비의 도움을 잘 받지 못해 아쉽게 패한 경기가 많아 그런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100완투를 한 날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날(1996년 9월 13일 잠실 LG전) 선발로 나가는데 동료들이 ‘형님, 오늘은 끝까지 던져야 합니데’라고 하더라고. 왜 그런가 했더니, 제가 은퇴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100완투까지 1경기만 남겨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거다. 개다가, 잠실에서는 꽤 강한 편(991년 5월 5일 OB전부터 1992년 7월 19일 LG전까지 잠실구장에서 10연승을 기록한 적도 있다)이라, 동료들이 더 신경 썼던 것 같다. 경기 후반에 힘이 들었지만 100완투가 걸려 있어 더 힘을 내서 던졌다.”
그날은 타선의 지원도 확실했다. 1-3으로 뒤진 5회 초 김응국의 2타점 3루타 등으로 5득점한 것. 결국, 9-4로 역전승. 9이닝 동안 7안타 4실점하며 100완투를 기록했다. 단, 4실점 가운데 자책점은 1점이었다.
어쨌든 그의 100완투는 KBO리그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으로 손꼽힌다. 그런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강한 목표의식을 손꼽았다. “저는 선발로 나서면 공을 좀 많이 던지겠다는 스스로의 목표가 있었다.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무너지는 투수도 많은데, 그것은 그 경기에서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것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긴 이닝을 던지겠다는 목표가 있으면 그에 따른 플랜, 이른바 마운드 운영이 필요하다. 경기 상황에 따른 힘의 분배라든지. 야구에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런 요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둘째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언급한다. “제가 현역으로 뛸 때는 지금처럼 웨이트 트레이닝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런 시대였지만 저는 트레이닝에 꽤 힘을 쏟았다. 침대 맡에 아령을 두고 잠결에도 들곤 했다. 그러다가 집사람 머리를 깰 뻔한 적도 있고. 또 몸 관리를 잘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등판 전보다 등판 후에 몸을 잘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때는 던지고 나서 이겨서 기분 좋다고 한 잔, 져서 기분 나쁘다고 한 잔. 저도 술을 좀 마시는 편이지만 등판 직후에는 팔 쪽의 모세혈관에 손상이 생기는데, 음주는 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셋째는 맞혀 잡는 투구를 통한 적은 투구 수. “제 투구 패턴은 몸 쪽 속구와 바깥쪽으로 휘어 나가는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철저하게 공략하는 데 있었다. 그러면서 삼진은 의식하지 않고 이른 카운트에서 타자 배트가 나오게끔, 그리고 정타를 맞지 않는데 집중했다. 제가 남들처럼 150km/h의 빠른 공을 펑펑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제 덩치가 크니까 어느 정도 구속만 나와도 타자가 위압감을 느낀다고 생각했고, 그런 점을 잘 활용해 투구했다. 그런 점에서 슬라이더가 있었으니까, 100완투도 해냈다고 생각한다.”
양상문 SPOTV 해설위원은 “선동열 전 감독의 슬라이더가 앞으로 쭉 끌고 나와서 던져 속도감과 휘는 각이 컸다면, 윤학길 전 2군 감독은 속구처럼 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윤학길 2군 감독에게 그 슬라이더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세대 시절까지는 슬라이더를 거의 안 던졌다. 변화구는 주로 커브랑 싱커로 타자와 승부하는 편이었다. 물론, 대학 때도 슬라이더를 장착하려고 시도는 했고, 실제로 경기에서 몇 개 던지며 재미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변화구를 많이 던지면 어깨에 무리가 가니까, 변화구는 가급적 프로에 가서 던지려고 했다.
슬라이더를 습득하려고 했을 때 지도자 분들의 도움도 받았고, 다른 선수들이 던지는 슬라이더도 많이 참조한 편이다. 특히, 이상군 (북일고) 감독의 슬라이더가 정말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 던지는지, 궤적 등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슬라이더는 ‘속구처럼’이 생명선
제 슬라이더 그립의 가장 큰 특성은 속구처럼 잡는 데 있다. 속구 그립에서 조금 틀어잡다 보니까, 다들 속구를 던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그립을 보여준 적도 있다. 제 그립을 보고 ‘속구를 잡았다’라고 생각했는데, 슬라이더가 들어가 깜짝 놀란 선수도 있었다.
속구 그립처럼 잡고 던지는 데다가, 속구처럼 오다가 싹 휘는 슬라이더. 그게 제 슬라이더다. 그리고 공을 릴리스할 때도 뺀다든지 하지 않고 속구처럼 던졌다. 슬라이더는 휘어져야 하니까 억지로 틀려고 하는데 그러면 속구와 구분돼 타자를 속이기 어렵다. 속구처럼 던져야 스피드도 나오고 타자 몸 가까이서 휘게 된다.
슬라이더를 던져서 헛스윙을 유도하면 가장 좋지만, 속구 궤적으로 배트가 나와 맞아도 정타는 나오기 어렵다. 빗맞기만 해도 아웃될 확률은 높아지니까, 크게 휘어져 나가 헛스윙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도 슬라이더를 던지는 한 가지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야구계 속설 가운데 커브가 좋은 투수는 슬라이더를 못 던지고, 슬라이더가 좋은 투수는 커브를 잘 던지기 어렵다는 게 있다. 이것은 대학 때까지 슬라이더보다 커브를 주로 던진 제 감각으로 이야기하면, 커브는 틀어서 던지다 보니까 슬라이더도 틀어서 던지려고 하니까 좋은 슬라이더를 던지기 어렵다고 본다. 요컨대 변화구는 무조건 틀어서 던져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타깃은, 결정구 때는 오른손 타자 기준으로 홈 플레이트 안쪽을 보고 던지고, 카운트를 잡을 때는 속도를 줄여서 가운데를 보고 던졌다. 카운트를 잡는 공. 특히 초구에 변화구를 기다리는 타자는 99% 없으니까 적극 활용할 줄 알면 볼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그립은 변화가 없지만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의 간격을 조절했다. 실밥을 활용하는 투수도 있는데, 저는 결정구 때는 손가락을 좀 더 벌리고, 카운트 잡는 공일 때는 손가락을 붙였다. 그러면 구속에서 차이가 났다. 또 두 손가락을 붙이면 제구도 훨씬 쉬우니까.
그러고 보면 선동열 감독의 슬라이더는 워낙 빠르니까 결정구나 카운트 잡는 공이나 차이를 둘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그 짧은 손가락으로 그렇게 빠른 슬라이더를 던진 게 정말 신기하다고. (선동열 전 감독도 결정구 때와 카운트 잡을 때는 약간의 힘 조절을 했다고 밝혔다. 선 전 감독의 슬라이더는 다음 기회에.)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방법은 자기 것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제 그립은 저에게 맞는 것이고, 다른 선수에게는 맞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슬라이더를 습득하려고 하는 단계에 있는 선수라면 캐치볼할 때 던지면서 감각을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어쨌든 저에게 슬라이더는 100완투라는 KBO리그 기록을 만들어준 공이다.
윤학길 전 2군 감독은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아 100완투(완봉승은 20차례로 역대 2위)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웠다. 통산 성적은 308경기에 나와 117승 94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33. 1988년에는 18승을 올리며 다승왕에 올랐고, 200이닝 이상도 6차례나 기록했다.
다만 그가 전성기일 때 팀이 암흑기라서 승수 등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 상무가 아닌 곧바로 프로행을 선택했다면 통산 승수도 꽤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 대해 그는 크게 불만은 없다고 했다. 개인적인 승수보다 팀 성적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완투패를 기록해도, 다른 투수들을 아낄 수 있어 마운드 운영이 원활해졌다면 그걸로 만족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소 아쉬운 점도 생긴다. 20승에 도전할 기회도 있었지만 “(팀과 상의해) 무리하지 않았는데, 유니폼을 벗은 후에는 기록이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한다. 그에 대해 한 시즌 20승과 같은 임팩트가 부족하는 시각도 있어서다. 그래도 100완투에 깃든 그의 헌신을 잊지 않는 이가 여전히 많을 것이다.
고독한 황태자. 롯데가 암흑기에 허덕일 때 버팀목이 된 그에게 팬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그것에 대해 그는 “열정적으로 응원해 준 팬들이 있어 마운드 위에서 전혀 고독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 이 칼럼은 프로야구 OB모임인 사단법인 일구회의 협조를 받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