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이제하, 불타지 않는 저 견고한 뒤틀림 들여다보다

14일 창원 성산아트홀 전시실 전관에서 개막한 <2024 문자문명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인기가 많은 곳은 이제하(87) 작가의 특별전이 열리는 제3전시실이었다.

서예가들이 중심인 행사에 그림 전시라니 뜬금없다 싶지만, 서(書)라는 것이 단순히 글자를 잘 쓰는 게 아니라 결국 미(美)의 근원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화(畵)를 받아 안지 못할 이유는 없다. 실제 지금까지 문자문명전을 보면 서예만큼이나 회화 작품도 중요하게 전시하고 있다. 더구나 이제하는 화가 이전에 시인이자 소설가다.

여기에 창원 다호리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붓 유물에서 영감을 받아 2009년 문자문명전을 태동시킨 다천 김종원(69·전 경남도립미술관 관장) 서예가의 의지도 더해졌다. 그는 마산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학교 선배인 이제하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경남에서 이제하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도립미술관 관장 시절에 이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여의찮았다. 전시를 성사시킨 데는 최충경 경남스틸 회장의 후원이 큰 힘이 됐다. 최 회장은 김 서예가와 함께 직접 이제하를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김 서예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본격적이진 않아도 이를 통해 앞으로 경남에서 이제하를 연구하고 조명할 마중물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거나 '드디어' 이제하는 그의 고향 경남에서 처음 전시를 연 셈이다.

14일부터 25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 제3전시실에서 열리는 내부 모습. /이서후 기자 
14일부터 25일까지 창원 성산아트홀 제3전시실에서 열리는 에 전시 중인 작가의 글씨./이서후 기자 

영원한 자유인 = 이제하는 시, 소설, 그림, 음악, 영화 등 예술 전반에 재주가 많은 전방위 예술가다. 문학과 지성사 시집을 상징하는 표지 캐리커처를 그린 이, 조영남과 나훈아가 불러 인기를 끈 노래 '모란 동백'의 원작자,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중편으로 1985년 제9회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이 소설로 만든 영화도 있다는 정도로는 그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보헤미안, 아나키스트, 아웃사이더 등 수식어가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데 한마디로 대책 없는 자유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밀양시 부북면 서포리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46년 마산으로 삶터를 옮긴 후 회원초등학교, 마산동중학교, 마산고등학교를 다녔다. 1950년대 한국전쟁을 전후한 마산은 멋쟁이 시인들의 도시였다. 일찍이 마산은 해방 직후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교사이던 시인 조향(1917~1984)이 주도해 김수돈, 박목월, 김춘수, 유치환, 이호우, 서정주 등과 시 동인지 <로만파>를 만든 곳이다. 한국전쟁 때도 직접 피해를 보지 않았기에 문학 청년이 모여들어 '처녀지', '청포도', '흑상아' 같은 문학 모임이 활발했다. 한껏 '로맨티스트'를 품은 마산은 문학 열기로 부풀어 있었고 혹자는 이 시기를 '마산 르네상스'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1957년 마산 지역 남녀 고등학교 문학 대표 선수들이 모여 만든 문학 모임이 백치(白痴)다. 절반은 시인이 됐고, 나머지도 수필이나 소설을 썼다. 이제하를 포함해 전 KBS PD이자 시인인 박현령, '국화꽃 저버린 가을 뜨락에'로 시작하는 가곡 '고향의 노래'를 작사한 시인 김재호, 1982년 미주한국문인협회를 창립한 소설가 송상옥 같은 이들이다. 유명한 '선박 세일즈맨'으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황성혁 황화상사 대표도 있다. 마산에 남은 이들 중에는 지역 원로 시인 이광석이 대표적이다.

마산고등학교를 대표해 참여한 이제하는 당시 전국적인 유명인이었다. 1954년 그의 시 '청솔 그늘에 앉아'가 인기 잡지 <학원>이 공모한 '제1회 학원문학상' 응모 작품 전체 5000여 편 중 시 부문 우수작으로 뽑히며 전국적인 스타가 된다. 이전에도 그는 잡지에 시를 꾸준히 투고하며 하루에도 10여 통씩 팬레터를 받고 있던 터였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한다. 서울로 간 후에는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문예지 <현대문학>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리고 <신태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가가 된다. 1973년 문단 권력에 대한 반발로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거부한 일은 숨은 일화 중 하나다. 이후 2013년에도 <현대문학>에 그의 연재 소설이 '박정희'와 '유신'이 거론된 탓에 거절됐다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문단에 큰 파문이 있었다. 반골 기질이 다분한 그였지만, 늘 그의 작업실이나 그가 평창동 차고 작업실에 이어 대학로에서 운영하던 카페 '마리안느'는 문화예술인들로 북적였다. 그래도 이제하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규정하며, 외로움을 기본 정서로 삼았다.

고향에서 첫 전시 = 2018년 3월 30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동예술촌 남쪽 남성동 한국투자증권 건너편 좁은 골목에 '홍화집'이란 오랜 음식점에서 그를 처음 봤다. 1998년에 문을 닫은 서성동 '고모령'에 이어 마산 지역 예술인, 특히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 사랑방처럼 애용하는 곳이다. 이날은 동인지 <백치> 2집 출판기념회를 겸한 창립 62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여든 줄에 들어선 옛 문학 청년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이미 세상을 뜬 이들도 많다. 조용히 앉아 있던 이제하 역시 몸이 성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기타를 들고 그가 만든 노래 '모란 동백'을 불렀다.

당시 그는 서울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상태였다. 제주 성산읍 오조리 오조포구 옆 마을 공동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Z를 최근까지 운영했다. 지금은 시흥리로 공간을 옮겼는데, 서울에서처럼 카페 마리안느라고 이름 붙였다.

올해 1월 제주도 성산읍 시흥리 카페 마리안느에서 만난 이제하(왼쪽) 작가와 김종원 서예가. /김종원 서예가
올해 1월 제주도 성산읍 시흥리 카페 마리안느에서 만난 이제하(왼쪽) 작가와 김종원 서예가. /김종원 서예가

드물지만, 이제하는 개인전을 더러 열었다. 하지만, 경남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종원 서예가가 몇 번이나 제주도로 건너가 설득한 결과다. 몇 달 전까지도 전시를 못 하겠다고 했다던 그다. 전시를 망설인 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게 부족해서인 듯하다. 14일 통화에서 이제하는 중요한 작품들은 팔리거나 다른 곳에 있고, 전시에 보낸 건 끄트머리에 조금 남아 있던 작품이라고 했다. 대표작이 없다고 하나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다. 이제하는 미대에 다니며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것이 소설에서는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그만의 문체로 실현됐다.

시와 소설, 그림, 음악 등 그의 예술이 서로 다르지 않기에 그림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그의 그림에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야 할 말이 그림에서는 방안에 들어와 있다. 이 상황 자체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말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들어왔을까, 들여놓은 것일까? 그린 것일까, 그려진 것일까? 그것은 말(馬)일까 말(言)일까? " (강선학 미술평론가). 작가는 말이 없다. 어쩌면 질문만으로도 작품 의도를 충분히 실현했는지도 모른다.

14일 창원 성산아트홀 제3전시실 〈이제하 특별전〉을 방문한 백치 동인 이광석 원로 시인(모자 쓴 이)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이제하는 원래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몸이 아프면서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백치 동인이 또 한 번 모일 계획이었던 것 같다. 이제하는 오지 못했지만, 동인 중 이광석 시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시장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그는 당분간 제주도에서 지낼 것 같다고 했다. 넌지시 경남 쪽으로 옮길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없지만, 고향인 밀양을 한 번 둘러볼 생각은 있다고 했다. 다만, 그의 예술적 고향인 마산으로 올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옛 모습들이 너무 많이 사라졌고, 사람들도 보수화됐기에 정이 안 간다고 한다. 오래됐지만, 여전한 것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이기에 더욱 실망이 컸을 수도 있다.

<이제하 특별전>은 <2024 문자문명전>과 함께 25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055-714-1973.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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