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도 들리는 건 텔레비전 소리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뿐이다. 밥 먹었느냐는 물음에 응 한마디가 돌아오면 그날 대화는 그걸로 끝이다. 식사를 마치면 한 사람은 소파에, 한 사람은 안방에 들어가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이불을 덮는데 하루 종일 눈을 마주친 기억이 없다. 신혼 때는 밤새 이야기해도 할 말이 남았던 사이였다.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나면 둘이서 오붓하게 지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둘만 남으니 집 안은 오히려 더 조용해진다. 남편이 퇴직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면 침묵은 더 길어진다. 미운 것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닌데 서로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낸다. 평생을 함께한 부부가 왜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게 되는 걸까?

3위. 다 안다고 생각해서 묻지 않기 때문
아내가 어깨를 주무르며 요즘 좀 피곤하다고 말한다. 남편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당신은 늘 그렇잖아 하고 넘긴다. 몇십 년을 봐왔으니 무슨 뜻인지 다 안다고 여긴다. 남편이 오늘따라 말이 없어도 아내는 원래 저런 사람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믿는 순간부터 질문이 사라진다. 어디가 아픈지, 왜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묻는 대신 짐작으로 넘겨버린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변한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이 요즘은 서운하고, 예전에는 즐겁던 일이 요즘은 시들하다. 묻지 않으면 그 변화를 알 길이 없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마지막으로 물어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면 답이 나온다. 다 안다는 믿음이 오히려 상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2위. 필요한 말만 주고받아서
하루 동안 부부가 나누는 말을 가만히 세어보면 대부분 용건이다. 약은 먹었는지, 관리비는 냈는지, 손주들은 언제 오는지 같은 이야기다. 장 볼 목록을 정하고 병원 예약 날짜를 맞추고 나면 더 할 말이 없다. 서로 챙기는 말이니 나쁜 대화는 아니다. 그런 말이라도 오가는 집이 있고, 그마저 끊긴 집도 있다. 문제는 그 사이로 다른 이야기가 하나둘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오늘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 요즘 무엇이 걱정되는지, 다음 달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같은 이야기는 어느새 사라진다. 젊을 때는 라면 한 냄비를 사이에 두고도 서로가 궁금해서 밤새 떠들었다. 지금은 궁금한 게 없어서가 아니라 묻는 습관을 잃어버린 것이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함부터 앞선다. 용건만 오가는 집에서 부부는 한 팀이 아니라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 된다.

1위. 대답이 늘 "응" 한마디로 끝나기 때문
아내가 베란다에서 화분에 꽃이 폈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응 하고 만다. 오늘 시장에 사람이 엄청 많았다는 말에도, 옆집이 이사 간다는 말에도 대답은 똑같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개를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듣고는 있었다고 하지만 말한 사람은 벽에 대고 이야기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말을 거는 쪽이 먼저 지친다. 말해봤자 뭐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점점 말을 아끼게 된다. 꽃이 폈다는 말은 사실 같이 보자는 신호였고, 시장 이야기는 내 하루를 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신호를 몇 번 놓치고 나면 상대는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크게 싸우는 부부보다 이렇게 조용히 멀어지는 부부가 더 위험하다. 어디 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같은 한마디만 보태도 대화는 다시 이어진다.

말수가 줄었다고 사랑이 식은 건 아니다. 다만 고개를 돌리는 몇 초가 사라졌을 뿐이다. 오늘 저녁 배우자가 건네는 말 하나에 텔레비전을 끄고 돌아봐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