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이병철 위에 나는 정주영’ 만든 전설의 사건
박정희 소양강댐 건설 계획
이병철 댐 공사 집중 투자
현대건설 강남 노른자 땅 매입
‘세기의 라이벌’로 불리던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와 현대그룹의 정주영 창업주는 한국 경제사의 발전을 이끈 주요 인물로 꼽힌다. 당초 뚝심과 저력으로 현대를 키워나갔던 정주영 회장과 그의 영원한 맞수로 꼽히던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사업 부문에서도 자주 다퉜다. 이는 같은 시기 경제계에 홀연히 등장한 두 사람이 상반된 경영 이념과 스타일로 한국 기업 성장사(史)의 쌍두마차를 이룬 것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정주영이 한사코 ‘이기는 기업가’였다면 이병철은 ‘절대 지지 않는 기업가’였다는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혈투를 보였던 두 사람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라이벌 의식을 가지며 서로를 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두 사람을 두고 ‘뛰는 이병철 위에 나는 정주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이는 1960년대 서울의 인구가 급속하게 팽창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주요 건설사 대표를 불러 강남 개발에 필수적인 한강의 치수(治水)를 위한 소양강댐 건설 계획을 밝힌 것을 두고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비만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강남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당대 최고의 라이벌인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을 불러 소양강 댐 건설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소양강 댐 건설 사업은 단순한 경쟁이 아닌 두 기업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발전한다. 즉, 당대 정권의 신뢰와 자금을 누가 가져가게 되냐의 문제로 귀결된 것이다. 이에 삼성 이병철 회장은 지시를 받은 뒤 국내 전문가는 물론이고, 해외 전문가까지 초빙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대 정주영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는 정주영 회장이 이병철 회장과 같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 아닌 직원들에게 융통이 가능한 현금을 최대한 모으게 하고 강남 일대 부동산을 줄줄이 사들인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삼성 측의 손을 들어주며 소양강댐 건설 사업을 이들에게 맡겼다. 삼성이 소양강댐 건설 사업에서 승리하자 정주영 회장은 아쉬운 기색 없이 이병철 회장을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의 지원에 힘입어 삼성이 침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중하고 있는 사이, 정주영 회장은 강남 일대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재계에 따르면 당시 정주영 회장은 “삼성이 현대보다 침수 문제에 대한 답을 더욱 잘 찾을 것이다. 삼성이 찾은 답과 정부의 의지로 강남이 개발된다면 필연적으로 땅값이 오를 것이다”라 계산을 이미 마친 상태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 시기 정주영 회장이 사둔 땅은 현재 삼성동 한전 부지 일부가 되었으며, 강남권 내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코엑스 현대백화점과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부지로 사용됐다. 즉, 정주영 회장의 결단이 부동산 시장에서 말하는 일명 ‘강남 불패 신화’의 시초가 된 것이다.
강남을 둘러싼 당시의 인식은 ‘나룻배를 통해 다녀야 하는 소외된 외곽 지역’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삼성이 댐 건설을 통해 침수 문제를 해결할 경우 개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침수가 해결되면 다리도 놓고, 집과 학교도 지으면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부동산 가격 역시 상승할 것으로 추측했다. 이룰 두고 업계에서는 “압구정동, 삼성동, 코엑스, 현대 백화점, 무역센터 등 주요 강남 지역은 모두 정주영 회장의 선견지명을 통해 탄생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정주영 회장의 한 수 앞을 내다본 결단은 향후 현대의 주요 사업이 된 건설 사업을 지지하는 뼈대가 됐다. 또한, 이런 일화는 ‘뛰는 이병철 위에 나는 정주영’이라는 일화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정주영 회장이 이끌었던 현대건설은 1961년 ‘아파트단지’라는 개념을 우리 주거 문화에 최초로 제시한 마포아파트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주거용 건물 최초로 중앙난방 시스템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던 외국인 전용 최고급 아파트인 한남동 힐탑외인아파트, 국내 최초의 대규모 고층 아파트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이어 현대건설의 이름을 단 첫 번째 아파트인 서빙고 현대아파트(現 이촌현대아파트)를 건설하며 국내 아파트 건축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한편, 강남의 침수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병철 회장의 모습과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임계점을 넘는 발상을 했던 정주영 회장의 모습은 현재까지도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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