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좋은 몸상태로 천천히 개막에 맞춰 시즌을 준비했다.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계획대로 준비한 대로 KIA 타이거즈 ‘캡틴’ 나성범은 2025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4월 26일, 시즌 26번째 경기날 나성범은 2회초 수비에서 이우성과 교체됐다.
그렇게 나성범은 다시 또 그리운 얼굴이 되고 말았다.
오른쪽 종아리 근육 손상 진단을 받고 나성범은 “왜 또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을 하면서 괴로워했다.
매년 건강한 시즌을 우선 목표로 겨울을 보냈던 나성범이지만 올해는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살도 뺐고, 관리도 많이 했다고 했는데 부상이 오니까 많이 힘들었다. 막막했다.”
이번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면서 마음고생을 한 나성범은 무엇보다 노력과 인내로 지켜왔던 ‘철강’ 이미지가 희미해지는 게 가장 힘들다.
“젊었을 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부상도 거의 안 당하고 풀 시즌도 5~6번 정도 뛰었다. 경기를 많이 뛰다 보니까 ‘철강’ 이렇게 강한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KIA에 왔는데 부상을 많이 당하다 보니까 팬분들한테도 그렇고 팀 선수들한테도 나에 대한 이미지가 약한 모습으로 인식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부상으로 이어지다 보니까 약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게 싫다.”
NC 시절이던 2015년 처음 144경기를 뛰었던 나성범은 2016년에도 전 경기를 소화했다.
수비 도중 손목 부상을 당하면서 2017년 125경기 출전에 만족해야 했던 나성범은 2018년 다시 144경기를 완주했다.
2019년 아찔한 무릎 부상을 당해 힘든 시즌을 보냈던 나성범은 그다음해 130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2021년에는 다시 144경기를 책임졌다.
고향팀 유니폼을 입은 2022년에도 나성범은 144경기에 나와 ‘강철 선수’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2023년에는 WBC 대표팀에서 당한 왼쪽 종아리 근막 부상으로 시즌을 열지도 못하고 재활조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해 9월에는 우측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2023 시즌은 부상으로 시작해 부상으로 끝났다.
‘우승 주장’으로 등극한 2024년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시범 경기에서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을 입으면서 이번에도 나성범 없는 개막전이 진행됐다.

그라운드를 굳게 지키던 강철의 모습이 사라지는 게 싫은 나성범. 무엇보다 FA 선수로서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FA로 여기 왔을 때 솔직히 큰 계약으로 왔다. 이런 모습으로 계약을 하려고 한 게 아니다. 나의 모습을 더 보여주기 위해서 한 건데 그러지 못한 거에 대해서 내 자신한테 화가 많이 난다. 그래서 죄송하기도 하다.”
2021시즌 스토브리그 주인공은 나성범이었다.
그의 이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뉴스였다.
계약 기간 6년 계약금 60억원, 연봉 60억원, 옵션 30억원 등 총 150억원이라는 대형 계약을 통해 나성범은 KIA 유니폼을 입었다.
FA 이적을 선택했던 나성범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성범은 ‘도전’을 이야기했다. 당연하고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었던 도전.
하지만 2022시즌을 뜨겁게 달궜던 나성범은 이후 이어진 부상에 팬들의 애를 태우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더 좋은 성적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준비도 잘해왔다.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또 부상이 나왔다. 선수들한테도 그렇고 팬분들한테도 이렇게 내 모습이 보여지는 것에 내 자신한테 화가 난다. 그래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쉬면서 나름 또 잘 준비하기 때문에 이제는 부상 안 당하고 쭉 가고 싶다. 내가 와서 팀이 이기고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FA 선수로서의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주장이라는 책임도 있기 때문에 재활하는 동안 나성범의 마음이 더 무거웠다.
나성범은 “주장이 아니라도 다치면 팀에 마이너스다. 더군다나 주장이 빠져버리면 더 크다. 팀을 이끌고 있는 주장이 빠졌다는 것은 팀 선수들에게도 영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는 더 책임감을 가지고 앞으로 부상을 안 당하도록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나성범은 ‘위기감’도 느꼈다.
나성범이 빠져있던 그라운드는 ‘감동의 무대’가 됐었다.
지난해 우승 주역들이 동시에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기회들이 만들어졌고, 준비됐던 자들의 놀라운 무대가 펼쳐졌다.
물음표를 지운 오선우는 확실한 자리를 만들었고, 타격하는 중견수 김호령의 자리도 견고해졌다. ‘통산 3할 타자’ 고종욱의 간절함도 팬들을 웃고 울게 했다.
천하의 나성범에게도 ‘위기감’을 준 놀라운 전반기였다.
“가지고 있는 게 많은 선수들이라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2군에도 좋은 선수가 많다. 조금만 하면 1군에서 같이 뛸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선수도 많았다. 나도 위기감을 가지고 정신 다시 차리게 된 시간이었다.”
FA와 주장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성범은 다시 팬들을 마주하게 된다. 팬들의 환호를 생각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성범도 긴장된다.
“야구한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재활할 때는 힘들고 지겨웠는데 안 아프고 이렇게 뛸 수 있고 땀 흘리면서 선수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나성범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된 후반기, 오선우는 “이제 해방이다”라며 웃었다.
KIA의 부상 위기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오선우다.
누구나 인정하는 타격 실력을 가지고도, 꾸준하게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오선우는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예상치 못한 기회를 얻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설령 올해 기회가 안 오더라도 잘리지 않는 한 버텨보자는 생각이었다.”
버티고 있던 오선우는 어쩔 수 없던 팀의 부상 상황 속 많은 기회를 얻었고 결과를 만들어냈다.
“올해는 그냥 다 되는 해같다”고 말할 정도로 운도 많이 따랐던 전반기였다.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본,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지만 오선우에게도 부담감은 있었다.
중심 타선에서의 역할이라는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게 된 오선우는 후반기에는 ‘팀’을 위한 야구를 할 생각이다.
“이제는 성범이 형이랑 선빈이 형 오면서 타순 부담에서 드디어 해방됐다”며 웃은 오선우는 “부담이 엄청 컸다. 클린업트리오로 나서면서 타격이 떨어졌었다. 전반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본 것 같다. 그게 다행히 팀에 도움이 됐는데 후반기에는 조금 더 상황에 맞춰서 야구하려고 한다. 이제는 1승 1승이 중요하다”고 각오를 다졌다.
부상과 부상이 겹치면서 KIA는 예상하지 못했던 경쟁 구도 속 전력의 새판을 짰다.
줄부상이 낳은 나비 효과로 많은 게 달라진 시즌이다. 돌아온 나성범에게는 또 다른 무게감이 주어졌다.
간절함과 감사함으로 ‘진짜 싸움’에 나서게 된 나성범. 아직 끝나지 않은 순위 싸움을 위해 나성범은 더 묵직해서 왕관의 무게를 견디면서 달려야 한다.
<광주일보 김여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