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봉순 할매 이야기 [경남 해녀열전 번외편]
요즘 임봉순(73) 할매는 무릎이 아프다. 창녕군 이방면에 살고 있는 그가 사탕 한 봉지를 챙겨 읍내 정형외과로 향했다. 도착 후 관절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는다. 주사를 맞고 있는 다른 할매 입에 사탕 하나를 까서 넣어준다. 물리치료사, 간호사들 손에도 사탕 하나씩 쥐여준다. 병원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는 곳인데, 그동안 혼자서는 못 먹었던 생선구이 정식을 시켰다. 임 할매는 그곳에서도 사탕을 꺼내 들었다. 뒤에 앉아서 밥 먹던 손님에게 사탕 하나, 계산하는 식당 주인에게도 하나를 건넨다.
정도, 말도, 웃음도 많은 이 할매에겐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바로 '육지 해녀'다. 봉순 할매는 29살 때부터 우포늪에 사는 생물들을 맨손으로 잡았다. 당시 그는 백일을 채 넘기지 못한 딸을 혼자 키워야 했다. 농사지을 땅이 없던 할매에게 우포늪은 유일한 일터였다. 무릎이 아픈 이유는 평생 두 다리로 질펀한 늪을 누볐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는 아침이면 헌 옷을 여러 겹 껴입은 후 빨간 고무 대야 2개를 챙겼다. 딸아이를 업고 오전 9시께 버스를 타고 당시엔 소벌이라 불렀던 우포에서 내렸다. 늪에 들어가 대야 두 개를 허리 앞뒤로 묶은 뒤 뒤쪽 대야에 아이를 앉혔다. 150cm쯤 되는 할매 키보다 긴 줄풀엔 논우렁이(논고동, 고디)가 가득 붙어 있었다. 줄줄이 붙어 있던 우렁이를 손으로 쓸어 담았다. 오후 7시 20분께 마지막 버스가 올 때까지 하면 포대로 2자루는 족히 채웠다. 수생식물인 마름 열매도 땄다. 생김새가 밤과 닮아 말밤이라고 불렀지만, 할매 입엔 말밤이 밤보다 더 맛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논우렁이를 삶고 이불 기울 때 쓰는 큰 바늘로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껍데기를 깠다. 그리고 아침 일찍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 가서 무게를 달아 팔았다. 시장 상인은 이렇게 사들인 논우렁이와 말밤을 모두 일본에 수출했다. 당시 일본에서 논우렁이는 먹거리로, 말밤은 화장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였다. 봉순 할매에게 우포늪은 그야말로 생업 터전 그 자체였다.
1997년 습지보호지역이 되기 전까지는 우포늪에서 맨손으로 생물을 채취하는 일이 흔했다. 봉순 할매처럼 완전히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로 아낙네들의 소일거리였다. 채취한 생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봉순 할매처럼 논우렁이를 줍고 마름 열매를 땄고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된 민물조개 귀이빨대칭이도 주워다 삶아 먹었다. 마름 잎인 도바리를 나물처럼 무쳐 먹고, 부추처럼 생긴 잘피를 오이와 함께 썰어 냉국에 넣어 먹었다. 올미(올비)와 방동사니(꼬꾸람)를 캐서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민물 새우인 보리새우(새비), 붕어, 잉어, 쏘가리, 미꾸라지 등을 잡았다.
움직임이 많은 쏘가리, 잉어, 붕어는 겨울철에 잡았다. 겨울이 되면 휴면 상태에 드는 생물들이다. 봉순 할매는 펄을 훑으며 손의 감각으로 물고기를 찾는다. 훌라후프처럼 둥근 대에 그물을 감은 도구를 사용하는데, 물고기가 움직일 때, 앉은 자세에서 두 다리로 그물망을 눌러 도망치지 못하게 가둔다. 할매는 2관(7.5kg)에 달하는 잉어를 맨손으로 잡아 봤다고 한다.
이제 우포늪에서 맨손으로 생물을 줍는 사람은 없다. 함부로 채취할 수도 없을뿐더러 예전만큼 잡히지도 않는다. 논우렁이는 하루 종일 잡아도 한두개 볼까 말까고, 말밤은 알이 차오르려다 만다. 최근까지 오직 봉순 할매만이 평생 그래왔듯 우포늪으로 향했었다. 그렇지만 그마저 아픈 무릎 탓에 올해 1월을 마지막으로 늪에 가지 못하고 있다.
바다에 해녀가 있다면 우포늪엔 '늪녀'인 봉순 할매가 있다. 이인식 우포생태학교 교장은 할매가 맨손으로 생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봉순 아지매가 맨손으로 우포 생물을 채취하는 것은 자연을 해치는 게 아니다. 밭을 갈듯, 늪을 솎아주는 일이다. 아지매가 늪을 누비며 안에 있는 생물들을 긴장하게 만들어 꿈틀거리게 한다."
할매는 우포늪을 이렇게 말한다.
"우포는 우리 금고고, 쌩금장(황금밭)이라."
어쩌면 반대로 할매가 우포늪을 황금밭으로 일군 사람인지도 모른다.
/백솔빈 기자
※ 참고문헌
람사르 습지 도시 창녕우포늪 마을 사람들의 구술담 <우포늪 마을 사람들의 삶과 노래> 1, 2, 3편. (사)창녕우포늪생태관광협회. 2019, 20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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