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베팬알백]㊶2015년 마야-2016년 보우덴, 2년 연속 외국인투수 노히트노런의 추억
『두산 외국인투수 마이클 보우덴이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보우덴은 6월 30일 잠실 NC전에 선발등판해 9이닝 9탈삼진 3볼넷 무실점을 기록, 시즌 10승을 따내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NC 타자들에게 안타를 단 1개도 허용하지 않으며 역대 13번째 노히트노런 주인공이 됐다. 보우덴은 이날 총 139개의 공을 던졌으며, 두산 선수로는 장호연(1988년), 유네스키 마야(2015년)에 이어 역대 3번째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2017 KBO 야구연감 125쪽>
두산 베어스는 김태형 감독을 영입하자마자 첫해인 2015년과 2016년 왕조를 건설해 나갔다. 완벽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해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압도적 승수를 쌓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KBO리그 갖가지 진기록과 대기록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단일팀에서 2년 연속 노히트노런이라는 사상 최초의 기록을 작성하면서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41번째 주제는 2015년 유네스키 마야와 2016년 마이클 보우덴의 노히트노런 이야기다. 1988년 장호연이 구단 역사상 최초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을 시작으로 베어스 구단은 KBO 최다인 3명의 노히터 투수를 배출했다. 역사의 현장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2015년 유네스키 마야 노히트노런>
◆ 쿠바 투수 마야, 2015년 4월 9일 잠실 넥센전 선발
“솔직히 저 스스로도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리드를 해나갔어요. 노히트노런 행진 중이었지만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투구수도 많아졌고….”
벌써 9년 전 일이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2015년 봄날 밤의 꿈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웃었다. 4월 9일 목요일 야간경기.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넥센 히어로즈-두산 베어스의 시즌 첫 3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다.
두산 선발투수는 쿠바 출신의 유네스키 마야. 2014년 시즌 중반 퇴출된 크리스 볼스테드 대체 외국인투수로 영입된 인물이었다. 마야는 첫해 11경기에 등판해 2승4패 평균자책점(ERA) 4.86의 평범한 기록을 남겼다. 재계약이 고민되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두산은 시즌 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마야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2016년을 기대하며 재계약을 했다.
스타트는 좋았다. 2015년 개막전(3월 28일 잠실 NC전) 선발투수로 내정된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갑작스러운 골반 통증으로 던질 수 없자 대신 선발로 나서 6이닝 4실점으로 팀의 9-4 승리를 이끌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김태형 감독의 사령탑 데뷔 첫 승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야는 다음 등판인 4월 3일 사직 롯데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됐다. 그리고는 이날이 시즌 3번째 선발등판이었다.
상대 투수는 넥센 에이스 앤디 밴헤켄. 2014년 20승을 거두며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쥔 KBO 최고 투수였다.
◆ 컨디션 좋지 않다던 마야, 경기 돌입 후 기막힌 호투
“오늘은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커브를 많이 던지겠다. 커브 사인을 적극적으로 내달라.”
경기 전 마야는 게임플랜을 함께 짜던 양의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의지는 일단 “알았다”고 했다. 투수에게 맞춰줘야 하는 게 포수의 숙명. 마야의 평소 주무기는 우타자 바깥쪽으로 짧고 날카롭게 꺾이는 커터(컷패스트볼)와 몸쪽에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백도어 슬라이더였다. 그런데 커브를 많이 던지겠다니 양의지는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었다.
이날 시구자는 프로배구(V리그) 남자부 OK저축은행의 우승을 이끈 쿠바 특급 로버트랜디 시몬. 1987년생으로 마야(1981년생)보다 6살 아래지만 쿠바 대표팀에서 생활하다 친분을 쌓은 사이였다.
“너는 공격적인 투수다. 쿠바에서 던질 때처럼 자신 있게 공을 뿌린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시구를 마친 뒤 시몬이 마야와 포옹을 하면서 건넨 조인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야는 시몬의 말처럼 경기 시작부터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갔다. 1회초 넥센 선두타자는 서건창. 2014년 201안타를 생산해내면서 KBO 역사상 최초 200안타를 달성한 까다로운 타자였다. 4구째 직구(시속 138㎞)를 받아쳤다. 타구는 잘 맞았지만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중견수 정수빈이 우중간으로 전력질주하면서 멋지게 캐치했다.
1회초 삼자범퇴로 넘긴 마야는 2회초 1사 후 윤석민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이후 7회초 2사까지 16타자 연속 범타 행진을 펼쳤다. 이어 박병호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윤석민을 좌익수 뜬공으로 잡고 이닝을 마쳤다.
상대 투수 밴헤켄도 호투를 펼쳤다. 두산은 3회말 1사 1·2루에서 민병헌의 우전 적시타로 뽑은 1점을 지키며 1-0으로 살얼음판 리드를 이어가고 있었다.
◆ 8회초 2사 김태형 감독 마운드행…간절한 눈빛에 교체 포기
“볼 개수가 많은데….”
김태형 감독은 8회초 2사 후 8번 김하성의 타석 때 심판에게 타임 요청을 한 뒤 통역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가 이처럼 말했다. 김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간 것은 사령탑 데뷔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야의 투구수는 114개. 앞서 8회초 선두타자 박헌도와 7구까지 가는 씨름 끝에 좌익수 정면 뜬공으로 잡았지만, 하마터면 안타를 맞을 뻔한 강한 타구였다. 이어 문우람을 2루수 앞 땅볼로 처리했지만 아무래도 투구수가 마음에 걸렸다.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기회입니다. 무조건 계속 던지겠습니다.”
감독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마야는 강렬한 눈빛으로 투구를 이어가겠다는 집념을 보였다. 눈에서 거의 레이저를 쏘는 수준이었다. 결국 김 감독은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마야의 목덜미를 안마해주더니 마운드를 내려왔다.
“솔직히 교체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노히트노런이 달려있었지만 위험 부담도 큰 상황이었잖아요. 점수차가 고작 1점밖에 나지 않아 2시간59분 이기다 1분 때문에 질 수 있으니까. 그러면 팀에 오는 데미지가 상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마야가 눈빛으로 말하더라고요. 도저히 내릴 수 없었어요. 이기든 지든 마야를 계속 던지게 해야 했죠. 그 눈빛이….”
경기 후 김태형 감독의 설명이었다.
◆유한준 삼진 잡고…장호연 이후 27년 만에 노히트노런
9회초 선두타자는 대타 임병욱. 6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갔다. 이어 서건창 타구는 1루수 앞 땅볼. 1루수 고영민이 2루로 먼저 던져 더블플레이를 노렸지만 서건창이 1루에서 살았다.
이택근의 빗맞은 유격수 땅볼로 2사 2루. 넥센은 26개의 아웃카운트가 소진됐다. 남아 있는 아웃카운트는 하나. 유한준이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커브(113㎞) 파울, 2구는 커터(133㎞) 파울.
볼카운트 0B-2S로 두산 배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넥센 덕아웃의 염경엽 감독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포수 양의지가 바깥쪽 높은 유인구를 요구했다. 시속 140㎞ 직구.
“바깥쪽 헛스윙! 삼진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대단합니다! 유네스키 마야! 노히트노런! 외국인선수로서는 두 번쨉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SPOTV 최두영 캐스터가 목이 터져라 샤우팅을 하며 대기록 달성을 알렸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마야 선수가 마지막에 투혼을 불살랐거든요. 마야 선수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인데….”
이날 최두영 캐스터와 호흡을 맞춘 진필중 해설위원은 마치 자신이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처럼 스스로 감정 이입이 됐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마야는 두 팔을 번쩍 들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고, 동료들이 마운드로 몰려가 마야를 둘러싸고 축하 세리머니를 펼쳤다. 곧이어 마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덕아웃의 김태형 감독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자신도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덕아웃에 들어온 김승호 운영팀장을 비롯해 코치들과 악수를 나누며 기쁨을 함께했다. 김태형 감독으로서도 1990년 OB 베어스에 입단한 뒤 선수, 코치, 감독 생활을 통틀어서 개인적으로 처음 경험하는 소속팀 선수의 노히트노런이었다.
9이닝 동안 투구수 136개. 볼넷 3개만 내줬을 뿐 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무안타 무실점. KBO 역대 12호이자 외국인 선수로는 2014년 NC 다이노스 찰리 쉬렉(6월 24일 잠실 LG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쓴 대기록이었다.
이날 마야가 경기 전 양의지에게 말한 대로 컨디션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 140㎞ 중반대까지 나오는 빠른공 구속도 140㎞ 초반대에 형성됐다. 직구 46개, 슬라이더 55개, 커브 28개, 투심 패스트볼 2개. 마야의 요구대로 커브 구사 비율을 평소보다 높였는데 매우 날카로웠다. 제구도 기막혔다. 양의지가 미트를 갖다 댄 곳에 변화구까지 정확히 꽂혔다.
구단 역사적으로는 1988년 OB 베어스 장호연(4월 2일 사직 롯데전)에 이어 역대 2호였다. 당시 장호연은 4사구 3개만 허용하면서 사상 최초 개막전 노히트 노런을 완성했다.
(브런치 스토리 <베팬알백 시즌1> [30] ‘개막전 무탈삼진 노히트노런…장호연의 진기록’ 참조→ https://brunch.co.kr/@8267e16f6a6747d/32)
마야는 장호연 이후 무려 9868일(27년6일) 만에 베어스 선수로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됐다. 1-0 승리 노히트노런은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의 이동석이 1988년 4월17일 광주 해태전에서 기록한 이후 역대 두 번째였다.
“마야가 힘을 빼고 던진 덕분인지 제구가 상당히 좋았어요. 완급 조절로 넥센 타자들 타이밍을 빼앗았죠. 7회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내가 다 떨리더라고요. 마야에게 안 들키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했습니다.
양의지는 그날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이 같은 소감을 남겼다.
“솔직히 8회부터 노히트라는 사실을 잊으려고 전광판도 안 쳐다봤어요. 9회초 선두타자 임병욱이 볼넷으로 걸어 나갔잖아요. 그때 문득 ‘아차, 이러다 질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때부터 노히트노런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마지막 타자 유한준 선배께는 몸쪽 백도어 슬라이더나 직구를 결정구로 할 생각이었습니다. 일단 볼카운트가 2스트라이크로 유리해서 유인구로 하나(바깥쪽 직구) 뺏는데, 거기서 헛스윙이 나왔습니다. 이런 경기는 포스트시즌보다 떨립니다.”
<2016년 마이클 보우덴 노히트노런>
◆ 새 외국인투수 보우덴, 2016년 6월 30일 잠실 NC전 선발
“마야와 보우덴 노히트노런은 좀 다른 분위기였죠. 마야에 대해서는 경기 후반까지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했다면, 보우덴은 ‘어~어~’ 하다가 대기록을 달성한 케이스였어요.”
안방에 앉아 2년 연속 노히터 제조업자가 된 양의지는 둘의 노히트노런 달성 과정을 위와 같이 기억했다.
마야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뒤 불과 1년 뒤 두산은 다시 한번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쏟아냈다. 이번에도 외국인투수. 2016년 새롭게 영입한 마이클 보우덴이었다.
2016년 6월의 마지막 밤, 목요일 잠실경기였다. 보우덴은 이날 전까지 시즌 14경기에 선발등판해 9승3패, 평균자책점 3.69를 기록하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시즌 10승2패)와 최강의 원투펀치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상대는 1~2위를 다투고 있던 신흥강호 NC 다이노스였다. 전년도 가을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놓고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혈투를 벌였던 만만찮은 팀이었다.
두산은 전날인 6월 29일까지 시즌 68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48승1무19패(승률 0.716)로 단독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지휘한 NC는 63경기에서 41승2무20패(승률 0.672)로 2위에 포진해 KBO리그 판을 뒤흔들고 있었다. 특히 6월 1일 마산 두산전부터 19일 수원 kt전까지 무려 15연승을 달리며 두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두 팀은 간격은 4게임차. 주중 3연전 중 앞선 2경기에서 1승과 1패를 주고받았고, 시즌 상대전적도 4승4패로 호각세였다.
◆ 역대 노히터 최다 투구수 139구 역투…KBO 13호 노히터 완성!
보우덴은 1회초 등판하자마자 테이블세터 이종욱과 김준완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힘찬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3번타자 박민우에게는 볼넷. 이때만 해도 평범한 과정처럼 보였다. 그 뒤에 대기록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보우덴은 나성범을 1루수 땅볼로 잡고 첫 이닝을 마쳤다.
보우덴은 이후 역투를 펼쳐나갔다. 4회 2사 후 나성범에 몸에 맞는 공을 내줬지만 5회까지 4사구 2개만 허용한 채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그 사이 두산 타선은 이날 데뷔전을 치른 NC 선발투수 임서준을 상대로 2회말 2점을 선취했고, NC 구원투수진을 상대로 5회에도 2점을 뽑아내 4-0 리드를 만들었다.
보우덴은 6회초 이날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다. 1사 후 이종욱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2사 후 박민우에게 볼넷을 허용해 1·2루를 만든 것. 이날 유일한 득점권 위기였다. 하지만 여기서 나성범을 초구에 우익수 플라이로 잡고 무탈하게 6회를 마쳤다.
7회초 삼자범퇴, 8회초 삼자범퇴. 아웃카운트 24개를 잡는 동안 단 하나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있었다.
“보우덴은 원래 구위가 좋았지만 그날따라 공이 더 좋았어요. 마야가 노히트노런을 할 때는 나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긴장했는데 이번이 두 번째다 보니 조금 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스코어도 4-0이니까 무조건 방망이 중심에 안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9회초 들어갈 때 볼넷을 주더라도 스트라이크존에서 볼이 되는 유인구로 승부하자고 마음먹었죠.”
양의지의 기억이다.
문제는 투구수였다. 8회까지 125구를 던졌다. 그 전에도 꾸준히 100구 이상을 소화하는 스태미너를 보여온 보우덴이지만 이날 이미 KBO리그 데뷔 후 개인 한 경기 최다 투구수(종전 118구)를 훌쩍 넘어섰다.
양의지는 “마야는 마지막에 혼신의 힘을 다 짜내 던진다는 느낌이었는데 보우덴은 그날 투구수가 많아져도 구위가 그대로였다”면서 “그날따라 포크볼이 굉장히 좋았다”고 회상했다.
9회초 마지막 수비. 보우덴이 1루 덕아웃 옆 불펜 철문을 열고 마운드로 향하자 팬들은 기립박수와 함성을 보내며 힘을 북돋웠다.
보우덴은 9회 들어서도 거침이 없었다. 선두타자 김준완을 4구 만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이어 박민우를 상대로 볼카운트 2B-1S에서 3구 연속 포크볼로 승부해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덕아웃의 김태형 감독과 한용덕 수석코치, 강인권 배터리코치의 표정에서 더 긴장감이 묻어났다.
최후의 타자는 NC 간판타자 나성범.
초구는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2구째 바깥쪽 낮은 포크볼로 유인해 헛스윙. 3구째는 타자에게 보여주는 공으로 높은 직구였고, 4구째는 포크볼을 던졌지만 바깥쪽 멀리 달아나는 원바원드 공이었다. 방망이가 따라 나오지 않았다. 볼카운트는 2B-2S. 양의지는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포크볼 사인을 냈다.
“5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노히트노런 주인공 보우덴! KBO 통산 13번째 대기록! 두산 보우덴의 차지입니다.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냅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스카이스포츠의 임용수 캐스터는 특유의 굵고 경쾌한 톤의 목소리로 대역사의 순간을 힘차게 소개했다.
“그렇습니다. 정말 이 현장에 와서 중계를 하는 저희 입장에서도 그렇고요. 정말 멋진 장면을 봤습니다. 그리고 1~2위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가지고 가는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대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김진욱 해설위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축하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마야의 노히트노런 현장에서는 진필중, 보우덴의 노히트노런 현장에서는 김진욱 전 감독이 해설을 했다. 두 베어스 출신 레전드들이 역사의 순간을 함께했다.
상대팀 덕아웃에는 1988년 장호연이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당시 안방에 앉았던 포수 김경문이 적장이 되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보우덴은 대기록을 완성한 순간 두 팔을 번쩍 들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마운드 앞으로 걸어 나왔고, 양의지는 노히트노런을 완성한 공을 미트에 넣고 마운드 쪽으로 다가가 보우덴을 안았다.
곧이어 덕아웃을 박차고 나온 두산 선수들이 보우덴을 둘러싸고 껑충껑충 뛰며 축하를 보냈다. 건장한 남자들의 뜨거운 포옹. 현장에서 대기록을 함께한 선수들은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 보우덴 노히트노런이 가져온 기록들
이날 노히트노런은 갖가지 신기록과 새 역사를 토해냈다.
두산은 2년 연속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면서 ‘노히터 제조기’ 팀이 됐다. KBO 역사상 2년 연속 같은 팀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건 최초였다. 2명의 외국인투수를 배출한 것도 두산이 최초였다.
1988년 OB 베어스 시절의 장호연 노히트노런까지 합치면 베어스 구단은 KBO 구단 중 가장 많은 3차례나 노히트노런을 만들어낸 팀이 됐다. KBO 역사상 3차례 노히트노런 보유 팀은 한화 이글스(빙그레 시절 포함)와 두산 베어스뿐이다. 이글스는 1988년 이동석, 1997년 정민철, 2000년 송진우를 노히터 투수로 내놓은 바 있다.
이날 보우덴의 139구는 역대 노히트노런 중 최다 투구수 신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인 1년 전 마야의 136구를 넘어섰다. 직구 75개, 포크볼 35개, 커브 17개, 슬라이더 12개로 NC 강타선을 잠재웠다.
보우덴은 또한 23일 잠실 kt전 3∼7회까지 포함하면 14연속이닝 무피안타로, 1987년 OB 베어스 사이드암 투수 김진욱이 작성한 역대 최다연속이닝(13) 노히트 기록까지 갈아 치웠다.
양의지는 유승안, 강인권에 이어 2차례 노히트노런을 지휘한 포수로 이름을 올렸다. 유승안은 1984년 해태 타이거즈 시절 방수원, 1988년 빙그레 이글스 시절 이동석의 노히트노런을 이끌었다. 강인권은 한화 이글스 시절 1997년 정민철과 2000년 송진우의 노히트노런을 리드한 바 있다. 그러나 2년 연속 노히트노런을 만든 포수는 양의지가 KBO 역사상 최초다.
(한편, 강인권 코치는 역대 9호부터 13호까지 5연속 노히트노런에 관여된 인물이다. 한화 포수로서 정민철과 송진우의 노히트노런을 이끈 것은 물론 2014년 찰리 쉬렉이 외국인 최초 노히트노런을 달성할 당시 NC 배터리 코치였다. 두산 배터리코치로 이적한 뒤 2015년 마야, 2016년 보우덴의 노히트노런을 지켜봤다.)
“노히트노런은 투수의 대기록이지만, 투수 혼자 달성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결국 투수와 타자의 1대1 싸움이 아니라 9명의 수비수와 타자 1명이 싸우는 거예요.”
양의지는 “노히트노런은 투수 혹은 포수의 힘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야수들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보우덴의 노히트노런에도 호수비가 뒷받침됐다. 8회초 선두타자로 대타 김종호가 나섰는데, 강한 타구가 투수 옆을 통과해 중전안타가 되는 듯했다. 그 순간 2루 쪽으로 약간 이동해 수비하던 오재원이 공을 걷어 내 몸을 던지며 1루로 송구해 노히트 행진을 이어줬다.
보우덴도 대기록을 도와준 동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턱을 쐈다. 보통 국내 선수들은 치킨이나 피자를 돌리는데 보우덴은 스케일이 달랐다. 7월 8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출장 뷔페를 불러 거하게 대접했다. 메뉴는 정통 미국식 바비큐. 무려 100인분을 시켰다. 두산 구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업체를 알아보고 주문을 해 선수들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 “난 마야가 아냐” 눈물 흘린 마야, 웃음 지은 보우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팬들의 성원과 야수들이 기록을 만들어줬어요. 개인적으로 노히터는 고등학교 때 2번 정도 있었어요. 고등학교 이후에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었고요. 투구수가 많은 것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노히터 찬스가 흔치 않잖아요. 팬들의 에너지가 대단했어요.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전혀 지치지 않았습니다.”
보우덴은 경기 후 잠실구장 기자실에 들러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마야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순간 통곡을 하며 가슴 저미는 눈물을 흘렸지만, 보우덴은 기쁨의 웃음으로 황홀한 순간을 만끽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과도한 투구수에 따른 후유증. 실제로 마야는 1년 전 노히트노런이 KBO리그 마지막 승리였다. 대기록 이후 11일 만에 선발등판했지만 3이닝 11실점으로 무너지는 등 6월초까지 10차례 선발등판했지만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하고 4패만 추가한 채 시즌 도중 퇴출됐다. 마야는 해질녘 황혼처럼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것이었다.
그러나 보우덴은 “마야 선수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그건 그의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다. 지금 건강하고 준비가 돼 있다. 앞으로 일에 더 집중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마야는 노히트노런 달성 당시 34세였지만, 보우덴은 1986년생으로 29세였다. 체력적으로도 마야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런 호언장담과는 달리 보우덴도 노히트노런 이후 3경기 연속 난조를 보이며 3연패를 당해 걱정을 샀다.
그러나 7월 26일 고척 넥센전 7이닝 무실점 승리를 기점으로 12경기에 등판해 8승1패를 추가하는 놀라운 투구를 선보였다. 시즌 18승(7패)을 올리면서 다승왕 니퍼트(22승)와 함께 역대급 원투펀치로 팀 마운드를 책임졌다. 보우덴은 마야가 아니었다.
두산은 보우덴의 반등 속에 8월 이후 질주를 거듭하며 2016년 역사적인 레이스를 펼쳐나간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