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악마화’ 능사 아냐…대통령 배우자 법 제정을 [쓴소리 곧은 소리]
한동훈, 이재명 만날 때 미국처럼 영부인의 공적 활동 근거법 합의했으면
(시사저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언행이 10월21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점차 전쟁을 앞둔 전투사령관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한 대표는 "어쩌다가 이번 회동의 의제가 '김건희 리스크 관리'가 되었을까?" 하면서 대통령과 자신이 불통이 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대표는 향후에 닥칠 두 가지 난제에 맞서지 못할 경우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직감하면서 태도 변화를 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난제 중 첫째는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사항(대통령실 인적 쇄신·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및 의혹 규명을 위한 절차 협조 등)이 무시된 것에 대한 대처다. 둘째는 윤-한 갈등을 파고들면서 '김건희 특검법'을 관철해 보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간계에 대한 대처다. 이 대표는 10월22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회담을 '맹탕 대담'이라 혹평하면서도 한 대표와의 2차 회담을 제안해 약속을 잡았다.
한동훈 대표는 10월23일 확대 당직자 회의에서 국면 전환의 포문을 열었다. 한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가 11월15일부터 나온다"며 "그때 우리는 김 여사와 관련한 국민의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 대표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면 "민주당은 더 폭주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민심에 반하는 모습을 할 것"이라며 "그때도 지금처럼 김 여사 관련 이슈가 모든 국민이 모이면 얘기하는 불만의 1순위라면, 민주당을 떠난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권발 정계개편설까지 나와
한 대표가 이런 발언을 꺼낸 것은 왜일까? 한 대표는 위급하고 절박한 심정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민주당이 11월2일부터 김 여사 이슈로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한 장외투쟁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토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 탄핵과 집권여당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김 여사 문제를 시급히 털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과연 한 대표는 성공할 수 있을까? 녹록지 않다. 당장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하자 친윤인 추경호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사안"이라며 반발했다. 일각에선 분당, 정계개편론 얘기가 나올 정도다. '김건희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한 대표의 절제와 지혜가 요구된다. 한 대표가 친윤계 처지를 일정 공감해 주면서도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에서 담판 거래가 필요하다.
최근 친윤계는 한 대표가 김 여사를 겨냥해 3대 요구사항 등을 제시한 것에 대해 반발했다.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은 10월11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께서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 악마화 프레임에 계속 희생물이 되는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정치공작에 희생이 됐다"고 반발했다.
이어서 그는 "야당은 제2, 제3의 악마화 프레임을 가지고 영부인을 제물 삼아서 할 것"이라며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겠나,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탄핵의 목적은 사법 리스크가 11월로 다가와 현실화되고 있는 이재명을 방탄해서, 대통령선거를 빨리 해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왜 여당이 부화뇌동해야 되는 건가"라고 한 대표를 비판했다.
한동훈 대표는 김 여사에 대해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의식하되, 강 의원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할 필요가 있다. 김 여사를 과도하게 악마화해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덮고 김건희 특검법과 윤 대통령 탄핵으로 연결시키려는 야당의 '김건희 악마화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지나친 '김건희 악마화 프레임'은 문제 해결 방안이 아니란 점에서다.
김건희, 법의 통제 밖에 두면 안 돼
한 대표는 '김건희 악마화 프레임'이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대통령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영부인 제도의 법적 미비에서 나왔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입법 문제를 정비하지 않는 것은 정치권의 직무유기이며 소모적이고 과격한 정쟁 유발, 후진국으로의 정치 퇴행을 낳는 원인이다. 곧 있을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에서 '김건희 특검법' 이전에 '대통령 배우자 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면 한다.
김 여사 문제는 최고위 공직자의 부인으로서 공사 구별이 없는 처신이 문제였다. 이런 처신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만 재발 방지를 위한 차원에서 일정 변명이 필요하다. 첫째는 법치주의의 핵심인 '법의 지배(rule of law)' 관점에서 볼 때 영부인의 법적 지위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만들어놓고 탈법을 예방하고 이것을 넘어선 것을 비판하는 게 맞다. 법제도의 완비 없이 진영논리로 공격하는 것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의 폭력성만 보여줄 뿐이다.
둘째는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먼저 비판돼야 한다. 민주화 이후 36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대통령제'를 칭송했음에도 대통령제를 위기에 빠뜨렸던 영부인과 가족의 일탈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여야는 초당적으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배경이 된 '제2부속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법'과 같은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통령 배우자가 사실상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법의 통제 밖에 두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법치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좌파든 우파든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배우자는 관행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그에 걸맞은 역할과 행동을 요구받게 된다. 물론 이전처럼 영부인이 유교적 논리에 따라 내조하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조만 하라는 것은 신장된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시대착오적 처사다.
영부인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비공식적인 제1참모라고 할 때 대통령 배우자로서 수행해야 할 공적 권한과 책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법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권한과 지원을 뒷받침하는 것이 변화된 인권 시대의 상식에 부합한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영부인의 공직 부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다. 미 연방법(USC) 제3편 제105조에는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는 데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 대통령이 배우자가 없을 경우 이러한 보조 및 서비스는 대통령이 지정하는 가족에게 제공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악마화'와 '제2부속실 설치'라는 양극단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에서 전술적으로 '대통령 배우자 법' 제정을 초당적으로 처리하자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배우자 법'에 영부인의 법적 지위와 권한, 보좌인력, 사업예산 지원규정 등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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