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군과 여수시 사이의 바다는 오랫동안 가깝고도 먼 장벽이었습니다. 지도상으로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거리였지만 깎아지른 해안선과 수많은 섬들에 가로막혀 육로를 이용하려면 광양과 순천을 거쳐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면 금방일 것 같지만 날씨의 영향이 크고 물동량을 실어 나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 남해안의 지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2004년부터 거대한 국가적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고흥과 여수를 잇는 5개의 대형 다리와 연결 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 공사에는 무려 16년이라는 긴 시간과 5000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수천억 원의 세금을 투입해 인구 밀도가 낮은 섬 지역을 잇는 것이 과연 경제성이 있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의 끈질긴 사투였습니다.
물살이 세고 깊은 바다 위에 거대한 교각을 세우고 섬과 섬 사이를 강철 케이블로 연결하는 작업은 현대 토목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약돌 모양을 형상화한 다리부터 산의 능선을 닮은 다리까지 각각의 교량은 저마다의 독특한 공법과 디자인으로 건설되었습니다.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폭풍우와 거센 파도를 견디며 한 땀 한 땀 길을 이어 나간 결과 2020년 마침내 고흥 점암면에서 여수 화양면까지 이어지는 77번 국도 구간이 완전 개통되었습니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일어난 변화는 기적에 가깝습니다. 과거 고흥에서 여수까지 차로 이동하려면 약 84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했기에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이 소요되었습니다.

하지만 5개의 다리가 바닷길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면서 이동 거리는 30킬로미터로 대폭 줄어들었고 이동 시간은 5분에서 10분 내외로 단축되었습니다. 1시간이 넘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단 5분만의 상쾌한 드라이브로 변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 단축을 넘어 물류 비용의 획기적인 절감과 인근 주민들의 생활권 통합이라는 엄청난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고흥과 여수는 이제 이웃 마을처럼 가까워졌으며 응급 상황 발생 시 의료 시설 이용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이 도로는 여행자들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해안의 다도해 풍경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장관을 선사합니다. 팔영대교를 시작으로 적금대교와 낭도대교 그리고 둔병대교와 화양대교로 이어지는 구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차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합니다. 다리가 연결된 덕분에 이전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낭도나 적금도 같은 보석 같은 섬들을 이제는 아무 때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낭도의 좁은 골목길을 걷거나 섬마을 특유의 소박한 음식을 맛보며 고요한 바다를 감상하는 경험은 정체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깊은 치유를 줍니다. 16년의 기다림과 5000억 원의 투자가 만들어낸 이 길은 남해안의 새로운 활력이자 우리 세대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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