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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와 J-컬처가 국경을 넘어 교차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집중 조명합니다. K-브랜드의 일본 진출과 J-브랜드의 한국 재진출 사례를 통해 양국 소비 시장의 연결고리를 분석합니다.

올해로 운영 2년차를 맞은 현대백화점의 수출 플랫폼 더현대글로벌이 일본에 뿌리를 뻗고 있다. 특유의 소싱(조달) 역량이 일본 Z세대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며 현지 유통가에선 '모시기' 경쟁이 나타날 정도다. 현대백화점은 국내 백화점 최초로 정규 리테일숍을 여는 데 이어 일본에서 제일 주목도 높은 B2C 패션쇼까지 진출했다. 아시아 최대 패션 소비국임에도, 디지털 전환과 이커머스 측면에서 여전히 성장 여력이 많은 기회의 땅이라는 판단 아래 전략적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5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일본 사이타마 소재 슈퍼 아레나에서 오는 6일 열리는 도쿄걸즈컬렉션(TGC)에 ‘더현대 글로벌 스테이지’가 마련된다. 한국 토종 브랜드들로 꾸민 K패션 전용 무대로, TGC 20년 역사 중 처음 선보이는 테마다. 현대백화점은 주최사인 더블유 도쿄(W TOKYO) 측의 제안으로 런웨이에 오르게 됐다.
이는 더현대글로벌이 ‘K브랜드 맛집’으로 입지를 다진 데 따른 성과다. 한국에서 성공한 브랜드는 일본에서도 통한다는 공식을 현대백화점만의 브랜드 발굴력과 결합해 선보인 것이 효과를 거두자 패션쇼 러브콜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더현대글로벌은 통관, 물류, 운영 등을 직접 수행하기에 부담이 큰 중소·중견 국내 업체의 판로 확장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더현대글로벌을 통해 현지에 소개한 브랜드만 총 43개에 달한다.

결과는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도쿄 쇼핑몰 파르코 시부야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전개한 K브랜드 23개 중 12곳이 매출 1억원을 달성했고 상위 5곳은 평균 매출 3억원을 넘겼다. 일반 정규 매장이 한 달 동안 올리는 매출을 일주일 만에 실현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5월부터 2개월여 동안 진행한 행사의 경우 역대 파르코에서 열린 팝업스토어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지 수요는 정규 매장에 대한 자신감의 근거가 됐다. 이달 중순 현대백화점은 파르코 시부야점에 오프라인 스토어 출점을 앞두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도쿄 패션 트렌드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오모테산도 쇼핑 거리에 약 660㎡(200평) 규모 플래그십 매장까지 열기로 했다. 해당 점포는 더현대 서울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이 검증되고, 자사 큐레이션 철학에 부합하는 10여개 브랜드로 채울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현지 사업 파트너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패션 플랫폼 ‘누구(NUGU)’를 운영 중인 메디쿼터스가 그 주인공이다. 인플루언서와 협업 마케팅에 강점을 보이는 누구는 일본에서 1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해 높은 충성도를 자랑한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5월 메디쿼터스의 상환전환우선주 8만6857주를 300억원에 취득하며 지분 8.33%를 확보했다.

현대백화점이 일본 공략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 여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구매력을 가진 패션 소비국이지만 온라인 커머스 침투율은 비교적 낮아 누구와 시너지를 도모하기에도 좋다. 현대백화점이 브랜드 소싱과 수출입에 관한 제반 사항을 총괄하고, 누구는 온오프라인 연계 전략을 맡는 식이다. 연내 누구 온라인몰에 더현대글로벌 전문관도 신설해 소비자 접점을 늘릴 방침이다.
K패션 업체 입장에서 일본은 놓치기 아까운 시장이다. 신체 조건이나 기후가 한국과 비슷해 효율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겨울철 상품 수요까지 확보할 수 있어 객단가도 높다. 현대백화점 역시 일본을 발판 삼아 글로벌 도약을 노리고 있다. 업계에선 향후 패션 기업과 리테일 플랫폼의 종합 과제로, K마크에 기대지 않고도 경쟁할 수 있는 품질 확보를 꼽는다. 한 글로벌 패션업체 관계자는 “결국 한류에 올라탄 반짝 흥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디자인부터 유통망 전반의 선진화를 이루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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