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김진성인데, 무슨 테스트가 필요해” 36세 투수가 눈물을 쏟았다

조회수 2023. 10. 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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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성공은 2년전 그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5-0으로 여유 있는 스코어다. 홈팀의 7회 말이 시작된다. 선발 임찬규가 갑자기 휘청거린다. 연속 안타에 야수 선택이 겹쳤다. 만루 위기에 중심 타선과 만나게 됐다. 3번 정훈이 유인구를 참아낸다. 볼넷으로 주자가 밀려들어 간다. (5일 사직, 롯데-LG전)

5-1에 계속된 1사 만루다. 트윈스 벤치가 타임을 부른다. 투수 교체다. 두 번째는 김진성이다. 벌써 78게임째. 10개 구단 투수 중 최다 등판이다. 2위 김범수(한화)보다 6번이나 많다. 38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지경이다.

첫 상대는 4번 전준우다. 여기서 밀리면 피곤해진다. 초구부터 여지없다. 전가의 보도, 필살기를 꺼내 든다. 예리한 포크볼이다. 123㎞를 먼 쪽에 떨어트린다. 아니나 다를까. 타자의 배트가 맥없이 돌아간다.

다음 공은 기습이다. 141㎞짜리 직구가 허를 찌른다. 존을 꽉 채운 스트라이크다. 이제 카운트는 0-2로 결정적이다. 코너에 몰린 타자를 KO시키는 일만 남았다. 연달아 포크볼 공략이다. 전준우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파울 3개를 걷어내며 버틴다.

하지만 거기가 한계다. 7구째를 다시 떨어트린다. 헛스윙, 삼진 아웃. 다음 유강남은 훨씬 간단하다. 공 2개로 끝낸다. 유격수 땅볼로 이닝 종료다. 스코어 5-1은 변함없다. 임찬규가 덕아웃 앞까지 마중 나간다. 힘찬 박수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김진성의 통산 100번째 홀드가 완성됐다. 역대 17번째 기록이다. 이제는 좀 쉴 수 있게 됐다.

세 번째 방출…그리고 두 통의 전화

2년 전 늦가을이다. 구단(다이노스)의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방출 통보를 받았다. 설마 했던 일이다. ‘그래도 1년은 더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로 불면의 밤이 계속됐다. 새벽 2, 3시만 되면 저절로 잠이 깬다. 아내와 두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곧 37세가 되는 투수다. 누가 거들떠나 보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쳐보자.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9개 구단 관계자들 연락처를 모았다. 단장, 감독, 코치, 스카우트 등등.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일일이 문자와 메시지를 남겼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다.

일부는 답이 왔다. ‘안타깝지만 팀 사정상 어렵다’는 회신이다. 그나마 낫다. 결과라도 알려주니 답답하지는 않다. 그런데 상당수는 읽씹이다. 아예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존심 상하고, 울화가 치민다. ‘이제 그만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이다.

정현욱 코치(삼성)와 통화가 됐다. “미안하지만 우리 팀에서는 안 될 것 같다.”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과 비슷했다. 하지만 다음 얘기가 뇌리에 남는다. “진성아, 그만두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데, 한 번 그만두면 영영 끝이야. 절대 포기하지 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린 팀(다이노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 장소가 마땅치 않네요. 2군 훈련장을 좀 쓰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 오케이를 얻었다. 그래도 눈치가 보인다.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선수들 없는 시간을 택했다. 꼭두새벽에 시작해 출근 전에 운동을 끝내야 했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보다. 얼마 후 트윈스와 연락이 닿았다. 차명석 단장과 통화가 됐다. “안녕하십니까. 저 김진성입니다. 올해 성적이 안 좋았지만, 기회를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테스트라도 보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부터 며칠 간이다.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모르는 번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드디어 전화가 왔다. “여기 LG 트윈스입니다.” 신체검사→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책정된 연봉(1억 원)은 감지덕지다.

주변의 누군가 얘기한다. ‘인센티브라도 좀 걸지 그랬어.’ 그때 그의 대답이 이랬다. “다시 던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LG라는 게 인센티브야.”

78경기에 등판, 10개 팀 투수 중 최다

트윈스의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됐다. 29년 만에 이룬 염원이다.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덕이다. 감독이 바뀌고, 코칭스태프가 달라졌다. FA로 나간 선수가 있는 반면, 보강된 부분도 있다. 현장과 프런트 오피스 간의 유기적인 소통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선수단 깊이(뎁스)다. 그들도 다른 팀처럼 전력 손실이 컸다. 주전 유격수가 빠지고, 마운드도 흔들렸다. 특히 불펜의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마무리와 7~8회 필승조가 한꺼번에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체 자원이 나타났다. 김민성이 오지환의 공백을 메워주고, 신민재가 주전 2루수로 성장했다. 고우석, 이정용, 정우영의 자리는 함덕주, 유영찬, 박명근, 백승현이 메워줬다.

특히 김진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6회, 7회, 8회. 인터폰이 울리면 어김없이 달려 나간다. 최근에는 마무리까지 해낸다. 불펜 중 가장 많은 이닝(68.1)을 막았다. 5승 1패 3세이브 21홀드. 평균자책점 2.24로 안정적이다.

염경엽 감독도 서슴없이 그를 1등 공신으로 꼽는다. 고비였던 9월 MVP도 그의 몫이다. 16경기 12⅓이닝 동안 실점은 1개뿐이다. 1승 3세이브 7홀드 ERA 0.73을 기록했다. 오늘(6일) 홈 경기에 앞서 시상식이 열린다.

“다시 던질 수 있다는 것, 그게 LG라는 것이 인센티브다”

세 번의 좌절을 겪었다. 2006년 SK(현 SSG), 2011년 넥센, 그리고 2021년 NC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남들은 보통 한 번이면 끝난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특히 세 번째는 서른여섯 살 때였다. 그래도 좌절은 없었다. 그렇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다시 2년 전 얘기다. 한창 일자리 찾고 있을 때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여보세요. 김진성 선수 전화 맞습니까?”

“예, 제가 김진성입니다.”

“저는 LG 트윈스 차명석입니다.”

“아, 단장님이십니까.”

“네, 김진성 선수 얘기 들었습니다. 팀을 구하고 있다고….”

“맞습니다. 올해 성적이 안 좋았지만, 기회를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테스트라도 보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상대방이 펄쩍 뛴다. 이내 야구 선배의 어조가 된다. 정색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무슨 소리야. 니가 김진성인데, 테스트는 무슨 테스트가 필요해.”

그렇게 통화가 끝난다. 마지막 한 마디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진다.

우승까지 했던 팀에서 잘렸다. 절박한 마음에 구직 활동이란 걸 해봤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모두가 외면하고, 돌아선다. 메시지에 응답조차 받지 못했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런 36살 가장의, 36살 투수의 마음을 다독인 말이었다. “니가 김진성인데….” 어쩌면 올해 트윈스의 성공은 그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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