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보다도 못한 처지였죠”…중국 신혼여행서 ‘그들’ 만난 20대 여성, 그 길로
외국인 노동자 돕던 사범대생
중국서 탈북민 구조·지원하다
직접 돕고 가르치려 학교 세워
“한국인으로 살아갈 아이들
우리 문화 배우게 도와줘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매일경제와 만난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54)은 학생들의 사연과 처지를 꼭 널리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여명학교는 서울 유일의 교육청 인가를 받은 탈북민 대안학교다. 중·고등학생 100여 명이 재학 중이며, 지난 2004년 설립 후 수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일반 학교 교사를 꿈꾸는 사범대 학생이었던 조 교장의 인생을 바꾼 건 잘못 걸려 온 전화 한 통이었다.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가 잘못 건 전화를 우연히 받았어요. 공장에서 일하던 중 기계가 폭발해 파편이 몸을 관통했다더군요. 치료를 돕다 보니 어느새 사회운동가까지 됐죠.”
외국인 노동자를 돕던 조 교장은 1997년부터는 탈북자 구조·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탈북자들을 만나게 됐어요. 막말로 산짐승보다도 못한 처지였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중국에서 탈북민을 구조해 한국으로 데려오던 그는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탈북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자신의 성장 환경과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 환경이 너무나도 달라요. 어떻게 가르치고 키워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을 위해 여명학교를 세웠죠.”
“탈북 여성 중에는 중국에서 강제 결혼이나 인신매매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아요. 남편의 폭력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를 중국에 둔 채 혼자 한국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죠. 문제는 이렇게 중국에 남겨진 아이들이 사춘기쯤 되면, 아버지가 ‘더는 감당 못 하겠다’며 방치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있는 한국행을 결심하죠.” 100명 정원인 여명학교 학생의 약 80%가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왔다.
이렇게 한국에 온 아이들은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다. “중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해 온 아이들이에요. 성인이 되면 병역의 의무도 수행하죠. 하지만 처음 한국에 오면 한국어 한마디도 못 하는 이방인 신세예요. 탈북민에게 제공되는 각종 지원도 못 받을뿐더러, 중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되지도 못하는 거죠.”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여명학교 학생 중엔 추석 연휴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아이들이 많다. “추석에 집에 가도 불편한지 하루 만에 돌아오곤 해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명절을 보내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거예요.” 그럼에도 여명학교는 매년 추석이면 아이들에게 각종 명절 풍습과 민속놀이를 가르친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갈 아이들이잖아요. 어른이 되기 전에 우리 추석 문화를 익히게 도와줘야죠.”
조 교장은 내년 추석엔 아이들의 마음이 더 무거울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관악구에서 개교한 여명학교는 지난 2019년 은평구에 부지를 매입했으나 ‘혐오 시설’이라는 주민 반대로 무산됐고, 결국 지난해 강서구의 한 폐교 부지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이곳마저 2026년 2월에 계약이 만료되면 떠나야 하는 처지다. “해가 뜨기 전 여명이 가장 어두운 법이잖아요. 지금은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내년 이맘때쯤엔 아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명절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시민들의 후원과 관심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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