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pecial Interview] LG 트윈스 오스틴 딘
새로 쓰일 역사
작년까지 LG 트윈스의 우승 도전기는 실로 험난했다. 2019년 이후로 매년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첫 관문인 한국시리즈 진출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무관만큼이나 LG 역사에서 비극적으로 적힌 항목이 있었으니, 바로 외국인 타자였다. 다른 팀들이 외국인 타자 덕을 누리는 동안, 유독 LG의 외국인 타자 농사는 매년 흉작이었다. 하지만 2023년, 유난히도 푸른 눈의 한 타자가 등장하면서 저주도 마침내 깨졌다. 그렇게 그 사슬이 끊어짐과 동시에, 길고 길었던 무관의 한 역시 깔끔하게 풀릴 수 있었다. LG의 역사를 바꾼 이 주인공은 여전히 든든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가 있기에 오랜 비극의 역사는 밝은 희망의 역사로 새롭게 쓰일 준비를 마쳤다.
사진 나인비 에디터 김민규 장소 잠실야구장
#내가 있는 곳(Where I Am)
날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요즘 컨디션은 어떤 편인가. (5월 8일 인터뷰)
정말 좋다. 곧 더운 날씨가 찾아올 텐데,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날씨 역시 야구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고, 나 역시 여러 날씨를 경험한 만큼 그다지 나쁠 게 없다. 일단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하늘이 나오고 있어서 기대하는 중이다.
고향인 텍사스와 날씨와 비슷해지지 않았나.
텍사스도 진짜 뜨거운 도시긴 한데, 솔직히 한국의 습도는 그 이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젠 한국이 텍사스보다 더 덥게 느껴진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다. 작년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을까.
가장 다른 점은 견제가 심해졌다는 거다. 나에 대한 분석 자료가 더 많이 쌓였고, 투수들도 내 스타일에 적응해서 그런지 작년과는 다른 공들이 날아오곤 한다. 그래도 결국엔 똑같은 하나의 경기지 않겠나. 상대 투수들이 내게 익숙해진 만큼 나도 그들의 공에 적응할 필요가 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는 썩 나쁘지 않게 대처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 작년보다 타석에서의 압박감이 덜해서 그런지 오로지 내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말한 대로 상대 팀들의 많은 분석이 이뤄졌을 텐데, 타석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하려 하나.
야구는 결국 적응의 게임이다. 모든 팀은 상대 선수들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고, 그 자료엔 상대의 약점부터 사소한 습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력 분석에 도움을 주는 내 통역사인 (지)승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작년부터 그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경기를 치르고 있다.
승재 통역이 어떻게 도움을 주는 편인가.
아마 중계 화면에도 나온 적이 있을 텐데, 우리에겐 ‘비장의 빨간색 파일(The Magic Red Binder)’이 있다. 사실 이미 우리 팀에서 한 차례 분석한 자료긴 한데, 그 파일 속에 있는 것들은 조금 더 내게 맞춰서 정리된 것들이다. 그리고 승재가 하는 일은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내 모든 스윙과 상대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로케이션, 매 타석에서의 결과를 기록하는 거다. 그렇게 기록을 업데이트하고 나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 이상으로도 승재는 정말 많은 역할을 한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내가 그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거다. 승재가 옆에 있어서 행운이다.
#우리가 만든 것(What We Made)
작년이 한국에서의 첫 시즌이었는데, 워낙 팀에 빠르게 융화돼서 그런지 이미 10년 이상은 뛴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폭소) 팀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부분이었다. 처음으로 이 팀에 왔을 때 김현수, 오지환, 박해민, 홍창기를 포함해 많은 선수가 날 환영해준 터라, 내가 LG의 일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 하나로 인해서 팀의 분위기가 망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 난 그렇게 대단한 선수도 아니고, 그저 이 팀에 있는 동료들과 똑같은 한 명의 야구선수일 뿐이다. 외국인 선수로 왔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모든 선수는 각자의 방식으로 팀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날 반겨준 LG 선수들에게 고맙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 팀의 일원으로서 남고 싶다.
팀에 녹아드는 것만큼이나, 2년 연속으로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일 기준으로 장타율도 0.550을 넘고 있고, 홈런도 작년의 23개를 넘길 기세다.
꾸준함을 유지하려고 했고, 팀이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을 충실히 한 덕분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올해는 날 상대하는 팀과 투수들의 전략이 변화한 만큼, 달라진 부분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에도 익숙해져야 하지 않나. 많은 타자가 ABS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 중일 텐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위해선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게 필수적이다.
방금 말한 대로, 올해는 ABS 도입 첫해라 본인 또한 그 적응 단계를 거치고 있다. 타석에서 ABS는 어떤 느낌인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ABS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동의하고, 지금은 과도기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경기장마다 약간씩 달라지는 것 같아서 각 구장의 존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KBO리그가 MLB에서 시작된 변화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고, 우리 역시 그 흐름에 발을 맞춰야 한다. 낯설더라도 의연해지고, 상황에 맞춰 플레이를 이어나가는 게 내 몫이다.
간혹 타석에서 답답해하는 모습을 봤다.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다. 때로는 로봇이랑 싸우고 싶기도 했고. (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건 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에 최대한 감정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나도 내가 최근에 감정을 숨기지 못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는 더 자제하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겼는지(How We Won)
작년 얘기를 해보고 싶다. LG가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본인도 주역으로 활약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 아닐까 한다. 29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던 LG의 역사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케이시) 켈리와 함께 우승을 만든 첫 외국인 선수였다는 점도 뜻깊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에서 KT 위즈와 치열한 승부를 펼치면서 오지환, 박동원, 김현수 등의 타자들이 결정적인 안타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요즘도 가끔 우리와 팬들이 얼마나 멋졌고, 그 현장이 얼마나 큰 소리로 가득했는지 돌려보곤 하는데, 그날의 함성은 내가 여태 들은 소리 중 가장 컸다.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고, 우리가 어떤 팀인지를 보여준 시즌이었다.
외국인 타자는 팀의 오랜 기간 아킬레스건이었고, 본인도 영입 당시 그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첫 시즌을 치를 때 심적인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한국에 올 때부터 LG의 ‘외국인 타자 잔혹사’에 관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의 도전과제로 받아들이면서 내 기량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그걸 해냈다는 게 기뻤고, 이젠 최대한 긴 시간을 LG 선수로 남고 싶다는 목표뿐이다. 사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켈리를 보면서 부럽기도 하다. 켈리처럼 되기 위해서 노력할 거고, 언제나 좋은 기억을 가진 채 한국에 남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야구를 그만두는 순간까지 팬들도 나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안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 스프링 캠프에서 외야수로 시즌을 준비했지만, 정작 시즌은 1루수로 치렀다. 급작스럽게 포지션을 변경했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
외야수가 편했던 터라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1루수로 뛰었지만, 마이애미 말린스에 지명되고 외야수로 전향한 이후 프로에서 뛴 10년 동안은 쭉 외야 수비만을 소화했다. 그래서 다시 1루 수비에 투입될 땐 마치 오랫동안 쓰지 않은 기계에 슨 녹을 닦아내고 먼지를 털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느 포지션이라도 소화하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고, 감독님께 어디라도 가능하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1루 수비를 할 때 종종 공이 빠진 것처럼 연기를 하더라. 예전부터 해오던 습관인가.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주자의 허를 찌르려고 시도해보는 건데, 많은 팬분이 이런 동작에 익숙해하지 않으시더라. 어떤 분은 속임수가 아니냐고도 했지만, 난 이것도 야구의 일부라고 본다. 수비할 때는 상대의 움직임에 주시하고, 주자가 집중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KBO리그의 특성상 5점 정도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지 않나. 우린 최대한 상대의 진루와 득점을 억제해야만 한다. 앞으로도 주자들을 잡아두기 위해 노력할 거고, 누군가 방심한다면 곧바로 아웃시킬 준비가 돼 있다.
그 동작은 그다지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10월에 KIA 타이거즈의 김도영을 아웃시키면서 드디어 첫 희생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평소처럼 습관적으로 시도한 건데, 우연히 주자의 허를 찔렀다. 물론 잡아내는 그 순간은 짜릿하긴 했는데, 같은 방식으로 주자를 다시 잡아낼 확률은 희박하다고 본다. 하지만 혹시 아나? 언젠가 또 희생자가 나올지.
#내가 누구인지(Who I Am)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다. 대체 그 열정은 어디서 오는 건가.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게 그냥 나다. 열정을 담아서 경기에 임하는 건 그저 지기 싫고,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서다. 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주입했고, 오랫동안 이 스타일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난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이기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다. 예전에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잠시 목표 의식을 잃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마치 목적지가 어디인지 까먹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뒤로, 야구를 하는 이유는 결국 승리하는 데 내 모든 걸 쏟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다 열정적인 팬들이 가득한 곳에서 야구를 하고 있으면, 괜스레 무언가가 느껴지곤 한다. 그곳에서는 내가 해야 할 역할이 크기 때문에, 내 열정과 에너지를 보여줘야 한다. 결국 팬분들이 내게 의욕을 불어 넣어주시는 게 아닐까 한다.
팀의 웃음 담당이기도 하다. 장난도 자주 치던데, 본인의 예능감은 선천적인 부분인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주변 분위기를 가볍고 재밌게 만들어서 최대한 경기를 즐기고자 하는 게 내 방식이다. 그리고 이건 주장인 현수도 마찬가지다. 평소 현수가 존경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는 가능한 한 더그아웃에 있는 모두와 즐기는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경기를 즐기지 않는다면, 야구를 하는 이유가 없지 않을까?
본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LG에서 가장 예능인은 누구인가? 단, 본인은 제외하고!
내가 1등인데 날 뽑으면 안 되는 건가. (웃음) 굳이 날 빼자면… 현수랑 오지환이 재밌는 편이다. (의외다. 오지환은 다소 진지한 이미지 아닌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오지환이 정말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팬들이 잘 모르더라.
2년째 함께하는 외국인 동료인 켈리는 어떤가.
그 친구도 만만치 않게 개그 캐릭터다. 나랑 켈리를 옆에 둔다면, 계속 장난을 치고 쉼 없이 수다를 떨 거라 후회할지도 모른다. 켈리와는 한국에 와서 좋은 관계를 형성했고, 최고의 절친이 됐다. 그가 옆에 있었기에 내가 한국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켈리는 야구장 밖에서도 야구를 제외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지만, 경기에서만큼은 진지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나. 본인의 성격엔 진지함과 유쾌함 중에서 어느 게 더 많다고 느끼나.
진지함이 더 많다. 난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우리가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몫을 해내지 못할 때마다 언짢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내 감정은 내 모든 기량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렇게 에너지를 끌어내는 건 나 역시 오랫동안 노력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야구에 인생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에, 매 경기에 진심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그아웃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더라. 야구선수로서 추구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침착함을 유지하는 거다. 올해는 간혹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해내지 못하면서 다소 쉽지 않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좋은 야구를 하고 있지만, 날 포함해 모든 팀원은 LG가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동시에 거대한 도전을 마주하고 있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리더로서 필요한 건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의욕을 고취하는 일이다. 분위기가 처지려고 할 때면 긍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 시즌부터 양손으로 따봉을 만드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나. 본인의 작품이라고 하던데.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세리머니를 보고서 웃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시즌 전에 지환한테 “올해는 어떤 세리머니를 할 거야?”라고 물어보니까 대뜸 나보고 만들라고 하더라. 처음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던 중 켈리랑 수다를 떨다가 슬쩍 세리머니 얘기를 꺼냈고, 별생각 없이 떠올린 게 지금의 세리머니다. 왠지는 몰라도 켈리가 자기는 빼달라고 했는데, 켈리의 지분도 적지 않다는 걸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힌다. (웃음) 내 목표는 우리가 안타를 치고 누상에 나갔을 때 모든 팬이 이 세리머니를 따라 하는 거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상대 선수들한테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본인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스멜링 솔트(Smelling Salt)는 어떤 냄새인지 궁금하다.
2018년부터 사용한 거로 기억한다. 그 냄새를 맡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콧구멍이 순간적으로 타들어 가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도 드는데, 결과적으로 뇌를 깨우고 앞에 놓인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하도 오래 쓰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시도해보고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이 냄새에 익숙해진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내가 계속하는 이유(Why I Keep Going)
처음 야구를 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내가 어릴 때 공이랑 배트를 들고 잤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쉼 없이 야구를 하고,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하셨다. 나 역시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야구라는 스포츠에 끌렸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또래보다 야구를 잘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풋볼 선수였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를 지향하도록 끊임없이 의욕을 불어넣어 주셨다. 아버지는 늘 내 코치님이었고, 내가 엇나가지 않도록 바로잡아주시곤 했다.
어린이날 시리즈 경기 자막을 보니 피자 배달원(Pizza Driver)이 꿈이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피자가 좋았나.
정확히는 ‘Pizza Man’이었다. 피자집 사장님(Pizza Owner)이든 피자 배달원(Pizza Driver)이든 상관없이 그냥 피자와 함께하는 직업이라면 뭐든 좋았다. (혹시 제일 좋아하는 피자는 뭔가.) 페퍼로니 피자는 실패하기가 힘들다. 가끔 베이컨이나 치즈만 올라간 걸 먹기도 하는데, 피자를 먹을 때만큼은 순정을 추구하는 편이다. 솔직히 피자를 최고의 음식 중 하나로 뽑고 싶다.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야구 대신 피자를 선택할 수도 있겠나.
그래도 내 선택은 변함없이 야구일 거다. 야구는 이미 내 역사 속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고, 삶의 일부이자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SNS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주 표현하더라. 혹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짧게’ 들려줄 수 있을까.
(아쉽) 꼭 짧아야 하나. (사랑꾼이라 사연이 길 듯해서 그랬다.) 아내와 처음 만난 건 2013년 SNS를 통해서였다. 인스타그램에 DM 기능이 생기기도 전이었는데, 우린 서로의 반려견에 대해 댓글을 남기면서 의견을 주고받곤 했다. 당시 난 저먼 셰퍼드를, 아내는 믹스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같은 반려인이라 그런지 서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같이 성장하고, 개를 키우고,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면서 11년이 지난 후에 마침내 함께하게 됐다.
본인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
아내는 늘 든든한 지지를 보내주고, 내 야구 경력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다. 야구를 하다 보면 서로 떨어져서 지내는 기간이 길지 않나. 난 시즌을 소화하는 동안 집을 떠나는 기간도 길고, 아내도 일을 해야 해서 1년 중에 2~3개월 정도만 같이 있는 해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아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내는 그 힘든 시간을 버텨줬고, 이제는 내 ‘1호 팬’이 됐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졌다고 했는데, 솔직히 메시지는 누가 먼저 보냈나.
아내가 먼저 보낸 거로… 기억하는데, 잘 모르겠다. 아마 내 기억이 조작된 걸 수도 있다. (눈치) 아내가 나한테 먼저 강아지가 귀엽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나도 냉큼 “너 강아지도 귀여워!”라고 답장을 보냈다.
혹시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본인을 설명할 수 있는 해시태그를 정해본다면.
‘#화났지만_화나지_않은(#angry_but_not_angry)’으로 하겠다.
오랫동안 LG에서 뛰기를 원하는 팬이 많다. LG의 전설적인 외국인 타자로 남는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다. LG는 내게 야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준 팀이다. 그리고 이 팀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놀라울 정도로 멋진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와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줬고, 그 부분에 항상 감사하다. 서울, 그중 잠실 속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서, 내 선수 생활을 여기서 마무리하고 싶다. 물론 그러려면 많은 걸 해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야 할 거다. 그래도 분명한 건, LG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외국인 타자로서 이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오랫동안 뛰고 싶고, 언젠가 영구결번까지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본인에게 LG 트윈스란 어떤 의미인가.
말 그대로 전부고, 새로운 가족이라는 느낌도 든다. 작년에 우승도 하고, 우리가 노력한 모든 것과 그 과정에서 느낀 모든 감정까지 잊기가 힘든 것들이다. 심지어 언어의 장벽이 있었음에도, 이 팀에 속한 모두가 나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 그들이 날 환영해주고, 내가 LG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게 해줬다는 사실이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덧 인터뷰의 막바지다. 팬들에게 끝인사 한마디 부탁한다.
LG 트윈스 팬 여러분, 그리고 KBO리그 팬 여러분. 인터뷰 봐주셔서 감사드리고, 함께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메시지를 남겨본다면.
사랑하는 사라와 댈러스에게. 너희는 내 전부고, 너희가 없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너희는 내가 야구를 할 수 있는 이유이자 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이기도 해. 항상 고맙고,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해♥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58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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