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국내 판권을 확보한 담도암 치료제가 유효성 입증에 성공했다. 임상 2·3상 톱라인에서 기존 치료 표준요법 대비 3배 이상의 객관적반응률(ORR)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향후 국내외에서 신약 승인을 받을 경우 한독은 담도암 치료제 바이오신약을 처음으로 확보하게 된다.
이는 20년간 진행해 온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성과라는 평가다. 신약개발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바이오텍과의 긴밀한 협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기존 치료요법 대비 3배 ORR 확인…신약 승인 가능성 높였다
미국 바이오텍인 컴퍼스테라퓨틱스에 따르면 담도암 치료제로 개발중인 이중항체 신약 CTX-009은 기존 치료 표준요법 대비 3배 이상의 객관적반응률(ORR)을 확인했다.
'토베시미그'(ALB001)의 담도암 2차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2·3상 연구(COMPANION-002) 톱라인(주요지표) 결과다. 이번 임상에선 토베시미그·파클릭탁셀 병용요법(111명)과 파클릭탁셀 단일요법(57명)을 효과를 비교했다.
연구 결과 병용요법은 1건의 완전관해(CR)를 포함해 1차 평가지표인 ORR은 17.1%를 기록했다. 이는 파클리탁셀 단일요법(5.3%)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기존 담도암 2차 치료 표준요법인 '폴폭스'(FOLFOX) 3상에서 관찰된 ORR(4.9%)를 크게 넘어섰다.
암이 진행된 상태를 의미하는 질병 진행률(Progressive Disease, PD)에서도 병용요법은 16.2%(18/111)로 낮게 나타났다. 반면 파클리탁셀 단독요법은 42.1%(24/57)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완전관해와 부분관해(Partial Response, PR), 안정병변(Stable Disease, SD)을 포함한 임상적 이점 비율(Clinical Benefit Rate, CBR)은 61.3%(68/111)로 높게 나타났다.
담도암은 1차 치료제 대비 2차 치료제의 옵션이 제한적인 암종이다. 1차 치료제로는 PD-L1 약물과 화학항암제의 병용요법이 쓰이고 있다.
담도암은 췌장암 다음으로 치료가 까다로운 암종이다. 5년 내 생존율이 29.8%에 불과하다. 조기 진단이 어렵고 수술 후 재발했을 때 쓸 수 있는 치료제가 많지 않아서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세계 담도암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기준 35억8000만달러 규모다.
이 같은 결과는 국내 권리를 확보한 한독의 임상 결과에서도 유사하다. 한독은 앞서 'ASCO GI 2023'에서 CTX-009(HD-B001A)의 국내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임상은 절제 불가능한 진행성, 전이성 또는 재발성 담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토베시미그와 파클리탁셀의 병용요법으로 진행됐다. 2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오픈라벨 단일군 임상 유효성 평가 결과 병용투여한 환자의 ORR은 37.5%, 부분관해(PR)는 9건 관찰됐다. 2차 치료로 투여받은 환자 11명 중 7명의 부분관해(PR)가 관찰됐고 63.6%의 높은 ORR을 보였다.
컴퍼스테라퓨틱스는 올해 4분기 무진행생존기간(PFS), 전체 생존기간(OS) 등을 포함한 COMPANION-002의 전체 임상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최종 결과에서 유효성 입증을 다시 한번 확인할 경우 컴퍼스테라퓨틱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독 역시 국내 승인 절차를 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독은 2026년엔 관련 신약을 국내에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20년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과
한독이 담도암 바이오 신약 출시 문턱에 설 수 있던 데에는 2007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결과라는 분석이다.
1954년 설립된 한독은 1964년 독일 훽스트와 합작회사가 된 후 48년간 합작기업 형태를 유지해왔다. 2000년 합작사인 훽스트가 롱프랑-로라와의 합병을 통해 아벤티스가 됐으며 2005년 사노피가 아벤티스를 인수해 사노피아벤티스로 합작사가 변경됐다.
문제는 사노피와 결별한 2006년 이후였다. 50년간 수입 의약품 판매 등에 집중해온 사업 전략에 전면 수정이 불가피했다. 홀로서기를 위해선 신약 개발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신약개발 후발주자로 내부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때 고안한 것인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다. 국내 바이오텍에 투자해 R&D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였다.
첫 타깃은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였던 제넥신이었다. 한독은 2007년 제낵신 투자를 통해 혈우병 치료제를 공동 개발했다. 이후 한독은 2012년 약 330억원을 투입해 제넥신 최대주주가 됐다. 2015년에는 제넥신과 공동 개발한 지속형 성장호르몬을 중국 타스젠(현 아이맵)에 283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CMG제약과 개발한 표적항암제를 싱가포르 AUM바이오사이언스에 1934억원에 기술이전하는 성과도 냈다. 엔비포스텍과 웰트 등 의료기기 업체와도 협력을 지속하며 신약 개발뿐 아니라 의료 기기와 디지털 치료 기기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에 따라 타법인 출자액은 빠르게 늘었다. 2024년 12월 기준 한독의 타법인출자액은 1937억원에 달한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기 전인 2006년 1억원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2000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실제 같은 기간 자산은 2481억원에서 7885억원으로 3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업계 한 관계자는 "CTX-009의 ORR이 예상보다 낮은 점은 여전히 불안요소이지만 유효성 입증에는 성공한 만큼 담도암 치료제 출시 기대감은 크다"며 "이는 한독이 신약개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20년간 꾸준히 추진해온 오픈이노베이션이 큰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