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사부작 만든 캐릭터 '다행이' 이젠 은행서 나보다 더 '인싸'

BNK경남은행 인스타그램(bnk_kyongnambank) 게시물은 1165건, 팔로워 수는 1만 5000명에 달한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평사원들의 일상을 다룬 '행툰'이 눈에 띈다. 또 수시로 진행하는 이벤트에는 좋아요와 댓글이 수북이 달린다. 주 4일제를 한다면 어느 요일에 쉬고 싶으냐는 게시물에는 좋아요 628개, 댓글 630개가 달렸다. 이 계정을 운영하는 인스타지기가 궁금했다.

경남은행 사회공헌부 SNS팀 소속 안예슬 대리. /김구연 기자

경남은행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이는 1994년생 안예슬 대리다. 그는 창원에서 태어나 삼정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로 이사해 중학교부터 진주에서 다녔다. 진명여중,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경상국립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2년 휴학하고 영국에도 다녀왔다. 2015년 하반기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였다. 옥스퍼드에서 어학원에 다녔고, 런던에 있는 옷가게에서 직원으로도 일했다. 그 덕분에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전성기에는 토익 965점을 찍었던 그다. 영국에서 돌아와 복학했다. 요즘은 다들 영어를 잘하니 영어영문학만으로는 취업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4학년 2학기 때 BNK경남은행 입사에 성공했다.

수습교육을 받고 2019년 1월 1일 동진주지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창구에서 고객 예금 입출금 업무부터 시작했다. 신입 행원의 하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결산으로 업무를 마감하는데 100원이라도 입출금이 맞지 않으면 골머리를 싸매야 한다.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데 깜박하고 받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고 직접 찾아가서 받아오는 날도 있었고, 지폐를 한 뭉치 더 준 것을 나중에 알고 부랴부랴 쫓아가서 받아오기도 했다. 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진상 고객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다. 어떤 고객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말에 5000원 짜리 지폐를 집어던지고 쌍욕을 하기도 했다. 당시 동진주지점에는 10명이 근무했는데, 선후배 간 배려와 존중이 있는 분위기였다. 그 덕에 긴장과 진상 고객한테서 받는 스트레스를 이겨냈다고.

경남은행 캐릭터 '다행이'를 직접 제작한 안예슬 대리. /김구연 기자

어느 날 은행 내 게시판에 공모 공지가 떴다. SNS전담팀을 꾸리는데 자원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고민 끝에 지원을 했다. 입출금 업무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자기소개서와 인스타그램 운영 방향 등을 써냈다. 당시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친구가 700명 정도였고, 구독자가 많지는 않지만 개인 유튜브 채널도 갖고 있었다.

2021년 1월 2일 사회공헌홍보부 SNS팀으로 발령났다. 경남은행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운영을 맡았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에서 봐온 애니메이션에 착안해 '행툰'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은행 안팎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공유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이야기도 짜야 하고, 등장인물 캐릭터도 만들어야 하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작가도 섭외해야 했다. 일이 많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또 작가는 애니메이션은 잘 그리지만 은행 내 분위기 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어렵지만 혼자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

자신이 겪은 은행원들의 일상을 직접 그려보기로 했다. 동물을 등장인물로 설정하고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만들었다. 고심 끝에 선택한 건 다람쥐 '다행이'다. 먹을 것을 보면 입속에 모으고, 또 그것을 특정 장소로 가져가서 차곡차곡 모으는 다람쥐의 습성 그리고 은행의 역할 등을 중의적으로 담은 이름이 '다행이'다.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 동료에게 공개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미술이나 디자인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마도 한국화를 그리셨던 엄마의 피가 제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2개월간 준비를 거쳐 3월부터 경남은행 인스타그램에 '행툰'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만큼 반응도 좋았다. 시민들이 잘 모르는 은행원들의 업무와 일상 이야기가 구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행툰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행이'의 역할도 늘었다. 은행 내 여러 부서에서 홍보물이나 문서에 '다행이'를 넣을 수 있도록 다양하게 그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또 고객들에게 주는 사은품에도 활용하기로 했다. 작은 공기청정기, 칫솔살균기, 쿠션, 마우스패드 등 다행이를 넣어 개발한 상품이 20여 가지에 이른다.

자신이 손수 만든 캐릭터 '다행이'와 함께 포즈를 취한 안예슬 대리. /김구연 기자

다행이는 창원시 가로수길에 있는 청년문화예술복합공간 스펀지파크 임시상점에서도 인기였다. 청년들이 마음에 드는 '다행이 굿즈'를 무료로 가져가는 대신 그만큼 기부를 하도록 했는데 많은 청년이 기부에 참여했다.

큰 상도 받았다. 안 대리가 속한 SNS팀은 (사)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KIPFA)가 주최하는 '소셜아이어워드 2024'에서 상을 두 개나 받았다. 금융서비스부문 통합 대상과 은행 분야 인스타그램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셜아이어워드는 국내 최대 규모 SNS 시상 행사다.

경남은행 인스타그램이 '핫'하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의 경상남도교육청 인스타그램 담당자가 비결을 배워가기도 했다고.

안 대리는 부서 내에서 '금손'으로 통한다. 무엇이든 맡기면 척척 해내는 금손임을 이미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나가는' 안 대리에게도 남모르는 고민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고, 성과도 있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좋은 분들이어서 참 좋아요. 그렇지만, 저는 홍보실에 취업한 게 아니라 은행에 입사한 거거든요. 은행 본연의 업무도 잘 알아야 하고 언젠가는 영업부서로 발령이 날 텐데 거기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죠. 퇴직할 때까지 '다행이 엄마'만 계속할 순 없으니까요."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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