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가을은 또 비극으로 끝날 위기… 이제 실수는 끝이다, 승부사 기질 꿈틀댈까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KBO리그 역사상 최고 타자로 뽑히며 ‘국민타자’라는 영광스러운 호칭까지 허락된 이승엽 두산 감독은 2023년 시즌을 앞두고 화려하게 지도자 데뷔를 했다. 2017년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보다는 방송 등 다른 영역에서 야구와 끈을 이어오고 있었던 이 감독은 두산의 전격적인 감독 제의를 받아들였다.
전설적인 스타의 감독 데뷔에 ‘달라도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지만, 코치 생활을 안 해보고 곧바로 감독으로 직행한 케이스라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두산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리그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에 거액을 투자해 전격적으로 유턴시키며 이승엽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이승엽 감독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한편으로는 성적에 대한 압박도 생겼다. 지금 이 멤버가 유지될 때,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달려야 한다는 구단 안팎의 기대감과 희망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2022년 9위까지 떨어졌던 팀을 2023년 5위로 끌어올렸으니 표면적으로는 성적이 더 나아졌다. 두산은 지난해 74승68패2무(.521)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복귀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승엽 감독의 경기 운영에 대한 두산 팬들의 비판은 꽤 있었고, 이를 만회할 수 있었던 포스트시즌에서의 성과도 좋지 않았다. 두산은 정규시즌 4위 NC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난타전 끝에 9-14로 패하면서 가을야구를 조기에 마감했다. 한 판으로 모든 게 끝났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자체가 사실 5위 팀에게는 불리한 여건이다. 원정에서 두 판을 내리 이겨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당시 1회와 3회까지 모두 한 점씩을 뽑아내며 3-0으로 앞서 있는 상황에서 4회 흔들리던 곽빈을 그대로 놔두다 역전을 당했고, 동점에 성공한 이후에도 투수 교체 실패로 추가 실점하며 결국 경기를 그르친 것에 대한 비판이 심했다. 야구는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이 감독도 할 말은 없었다.
올해 두산은 3강 전력으로 뽑혔다. 내부 프리에이전트(FA)들을 단속하며 야수 전력을 그대로 유지했고, 라울 알칸타라-브랜든 와델-곽빈으로 이어지는 ‘스리펀치’를 리그 최고로 뽑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확실한 ‘스리펀치’에 마운드 선수층도 어느 정도 쌓여 있었고, 주전 라인업 또한 이름값이 화려했다. 실제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내며 올 시즌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이승엽 감독도 2년차인 만큼 조금 더 팀을 파악한 채 경기에 나설 수 있었고, 비판도 조금은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두 명의 외국인 투수가 모두 부상으로 고전한 가운데, 부상 대체 외국인 선수로 데려온 시라카와 케이쇼까지 부진 및 부상이 겹치며 시즌 중·후반 고전했다. 그 상황에서도 74승68패2무, 지난해와 동일한 성적을 기록하며 팀을 4위로 이끌었다. 팀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여기까지는 그렇게 나무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포스트시즌에서의 성과가 중요했는데 첫 판이 어그러졌다. 이제 위기에 몰린 건 두산, 그리고 이승엽 감독이다.
두산은 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포스트시즌’ kt와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0-4로 완패했다. 상대 마운드를 전혀 공략하지 못한 채 오히려 1회부터 4점을 내주면서 경기를 그르쳤다.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선발로 나섰으나 3⅔이닝 동안 4피안타(2피홈런) 5실점으로 부진했던 곽빈이 이날도 쓴맛을 봤다. 선발로 나선 곽빈은 1회 kt 타자들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4실점하고 경기 분위기를 내줬다. 이날 곽빈은 1이닝 동안 36개의 공을 던지면서 5피안타 2볼넷 1탈삼진 4실점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두산 코칭스태프로서는 어떻게 뭘 해볼 수가 없는 1회였다. 1회부터 투수 교체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곽빈의 이날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156㎞, 평균은 151.8㎞가 나오는 등 구속 자체는 괜찮았다. 컨디션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이 가운데 몰리는 경우들이 있었고, kt 타자들은 욕심을 내지 않고 툭툭 받아쳐 연속 안타를 만들었다. 시속 160㎞ 이상의 강한 타구는 거의 없었으나 안타가 되기는 충분한 타구들이 내야를 빠져 나갔다.
1회 선두타자 김민혁에게 볼넷을 내준 곽빈은 로하스에게 좌전 안타, 장성우에게 좌전 적시타, 강백호에게 우전 적시타, 오재일에게 우전 적시타를 연속으로 맞으며 실점이 이어졌다. 그리고 2사 후 배정대에게 중전 적시타를 또 맞고 1회에만 4점을 내줬다. 정수빈이 정확한 송구로 2루 주자 오재일을 홈에서 잡아내지 못했다면 경기가 완전히 넘어갈 뻔했다. 곽빈은 2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으나 선두 심우준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다시 흔들렸다.
이승엽 감독은 1회부터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던 또 하나의 선발 자원인 조던 발라조빅을 마운드에 올리는 총력전으로 승부를 걸었다. 발라조빅이 두산의 기대에 부응하며 5회까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이번에는 타선이 응답하지 않았다. 상대 선발 투수인 윌리엄 쿠에바스를 공략하지 못한 채 6이닝 9탈삼진 무실점을 헌납했다. 두산은 이날 총 8명의 투수를 동원하며 2회부터 9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버텼으나 1회 4실점을 전혀 만회하지 못한 채 경기에서 졌다.
4위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은 와일드카드 제도다. 실제 제도 도입 이후 한 번도 5위 팀이 4위 팀을 이긴 적이 없다. 첫 판을 잡았으나 2차전에서 져 탈락한 경우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여전히 두산이 유리하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이제 핀치에 몰린 건 오히려 두산이다. 외국인 투수 한 명(브랜든)을 부상으로 잃어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한 명(발라조빅)은 1차전에 구원으로 나가 58구를 던졌다. 평상시 같았으면 이틀 연속 출전이 어려울 법한 투구 수다. kt는 2차전 선발로 웨스 벤자민, 두산은 최승용을 선발로 예고했는데 이 선발 매치업에서 두산이 앞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산이 올해 벤자민을 잘 공략한 것(두산전 3경기 평균자책점 8.18)은 사실이지만, 올해 부상으로 고전했던 최승용의 컨디션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타선이 벤자민을 얼마나 잘 공략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이승엽 감독이 적절한 투수 교체를 통해 경기를 끌고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한 판이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고난이도의 경기다. 이승엽 감독은 1차전 패배 후 총력전을 예고했다. 이 감독은 “우선 초반에 4점을 주면서 힘들게 시작했고 믿었던 곽빈이 초반에 난조를 보이면서 먼저 실점을 하고 간 것이 경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면서 1차전에서 36개의 공만 던지고 내려간 곽빈의 2차전 등판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있다. 내일 패하면 올 시즌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다. 여차하면 발라조빅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예고했다. 말 그대로 끝장 승부 의지다.
발라조빅은 몰라도 곽빈은 대기가 가능해 보이는 가운데 최승용 곽빈으로 경기 초반을 잘 끌어간다면 양질의 불펜을 통해 kt의 도전을 따돌릴 수 있다. 한편으로 벤자민을 잘 분석해 최적의 타선을 구축하는 것도 과제다. 이 감독은 “타선이 잘 할 때도 있고 부진할 때도 있고 쿠에바스의 공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타선에 업다운이 있는 법이다. 내일은 타선이 빵빵 쳐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기대를 걸면서 “시즌 마지막 날 끝나고 결정했다. 최승용이 컨디션이 좋다. KT든 SSG든 누가 올라 오더라도 상관 없이 최승용으로 결정을 했다”고 기대를 걸었다.
만약 두산이 3일 열릴 2차전에서도 진다면 이승엽 감독은 2년 연속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물러나게 된다.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전패를 했다는 성적,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업셋을 당한 4위 팀이 된다는 점에서 두산 이미지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승엽 감독의 지도자 경력의 첫 이미지를 좌우할 대단히 중요한 경기가 될 수도 있다. 반면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은 이강철 kt 감독은 업셋에 대해 “기대가 된다. 한번은 가야 하는데. 우리가 마법사 팀이라. 항상 최초 기록을 가지니까. 좋은 기운 받아서 가고 싶다”면서 “2년 전에 4위를 해보니까. 1경기 이긴다고 하니까 사실 부담스럽더라. 우리보다 4위팀이 부담을 갖고 있지 않을까”면서 첫 대업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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