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개인정보 유출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가 플랫폼 규제 총력전에 나섰지만 노동·금융·공정거래 등 각기 다른 맥락의 이슈들이 '쿠팡 때리기' 프레임 안에서 한데 묶이며 졸속 입법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용직 기준, 플랫폼 수수료, 지배구조 규제 등은 본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구조적 과제인데 한 기업 처벌을 위한 '맞춤형 규제'로 설계될 경우 시장 전체에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 개인정보 유출 한 건에서 출발한 논쟁이 노동, 지배구조, 공정거래, 금융 전반으로 번지며 다층적인 규제 논의로 확산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청문회에서 영업정지 가능성을 언급했고, 공정위는 쿠팡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과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재검토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쿠팡파이낸셜의 '판매자 성장대출'을 갑질 대출로 보고 조사 중이며, 국회는 집단소송법과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 칼날…각종 규제 총동원
가장 날을 세운 곳은 영업정지까지 거론한 공정위다. 영업정지는 전자상거래법상 소비자 피해 방지 의무를 위반했을 때 시정조치만으로는 피해 복구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검토되는 가장 강한 조치다.
하지만 쿠팡을 거래 창구로 삼는 소상공인 23만명과 쿠팡 생태계 고용 규모 40만명 이상을 고려하면 실제 영업정지까지 가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영업정지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아예 폐쇄하는 것”이라며 “위반 사안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되 소비자들이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탈팡’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동시에 쿠팡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통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단일 기업 점유율 50% 이상, 또는 상위 3개사 합산 점유율 75% 이상일 때 추정되지만 이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시장 구조와 영향력, 진입장벽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정할 수 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묶이면 시장지위 남용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위법 판단 시 매출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을 둘러싼 총수 지정 재검토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과 친인척의 주식 보유·거래에 대한 보고 의무가 강화되고 사익편취 규제 등 공정거래법상 여러 규제를 직접 부담해야 한다.
국회도 쿠팡을 향한 강경 카드를 연이어 꺼내 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 100명 이상이 단체를 통해 대기업을 상대로 한꺼번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이 고의로 법을 어기거나 피해 구제를 지연하면 실제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입법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전담 TF를 발족하고 노동·배달앱 수수료 등을 쿠팡과 연관된 다양한 의제를 다룰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쿠팡 계열사 쿠팡파이낸셜에 ‘판매자 성장대출’이 입점 업체에 대한 ‘갑질 대출’이라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성장대출은 쿠팡 입점 업체의 플랫폼 내 판매 실적과 반품률 등을 바탕으로 최대 5000만원까지 연 8.9~18.9% 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이다. 신용평가사의 점수 대신 쿠팡 내부 거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도와 금리를 매기는 구조다.
당국은 쿠팡이 플랫폼 지위를 앞세워 시중은행보다 과도하게 높은 금리를 부과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성장대출은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매출을 기준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만큼 회수 불확실성이 크고, 사실상 ‘미래 매출’을 담보로 삼는 구조다. 은행 선정산 대출과 담보, 리스크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금리 비교가 실상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장대출을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우회 금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선 성장대출을 1금융권 신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소상공인들이 사용하는 2금융권 상품과 비교하면 금리 격차가 크지 않다. 매출이 급감할 경우 3개월간 상환을 유예해 주고 중도상환수수료 없이 조기 상환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 입점업체들도 있다.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가 2023년 5월 취업규칙을 고쳐 도입한 이른바 ‘퇴직금 리셋 규정’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용직 노동자가 1년 넘게 일했더라도 4주 동안 주당 근로 시간이 15시간에 못 미치는 구간이 한 번이라도 생기면 그 시점부터 계속근로기간을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도록 한 것이다.
쟁점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하루 단위 계약으로 일해 온 인력에게 퇴직금을 줘야 했는지다. 법은 형식상 일용직이더라도 일정 기간 이상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고 일정 수준 이상 시간을 채워 일하면 상용직과 비슷한 보호를 받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조항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플랫폼 물류처럼 단기 계약이 반복되는 업종에서는 해석 여지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쿠팡 기준 규제의 역설
문제는 이러한 규제들이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용직 퇴직금 산정은 플랫폼만이 아니라 건설·제조·서비스업 전반의 노동법 해석 문제고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는 영세 자영업자 보호와 시장 경쟁력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산업정책 이슈다. 그러나 현재 논의는 이 모든 것이 '쿠팡 처벌'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한꺼번에 추진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위험을 낳는다. 먼저 쿠팡의 자본력을 기준으로 만든 규제가 중소 플랫폼에도 동일 적용되면 진입장벽만 높아져 오히려 쿠팡의 독과점을 강화할 수 있다. 집단소송제가 전면 도입되면 법률 대응 비용을 감당 못 하는 중소 플랫폼들은 퇴출당하고 쿠팡만 살아남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산 기한 단축이나 수수료 상한제 또한 자금력이 약한 중소 납품업체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정산 기한이 당겨지면 유통사가 재고와 자금 부담을 떠안게 돼 신규 납품을 꺼리거나 검증된 상품만 들여올 것"이라며 "중소 납품업체는 문턱을 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퇴직금 리셋 규정 논란도 마찬가지다. 일용직 노동자의 계속근로기간 산정 기준은 플랫폼 물류뿐 아니라 택배·배달 등 전체 플랫폼 노동시장의 고용 관행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수십만 플랫폼 노동자의 퇴직금이 현실화할 수도, 현행 구조가 유지될 수도 있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개별 기업 편법 여부를 넘어 플랫폼 노동자의 상근성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종우 아주대 교수는 "쿠팡의 지배력 남용은 처벌해야 하지만, 시장지배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 제재를 가하면 미국과의 통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제재는 불공정 거래와 개인정보 유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요한 것은 '대타협'
서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 소상공인과 대형 플랫폼 간 공정거래, 소비자 권익 보호는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하나를 극대화하면 다른 가치가 훼손되는 트레이드오프 관계"라며 "이해관계자들이 합의점을 찾는 과정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를 높이면 시장 전체가 위축되고 혁신이 막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쿠팡 사태는 한국 사회가 플랫폼 경제 시대에 어떤 노동 기준과 공정거래 질서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묻는 시험대가 됐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킹 사건 하나로 촉발된 논의가 성급한 규제 경쟁이 아닌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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