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된다. 의·정 마주앉았지만 '동상이몽' "
[헤럴드경제=김태열 선임기자] 의료계와 정부가 10일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연 토론회에서 의료공백 해법 모색에 머리를 맞댔지만, 기존의 각자 입장을 반복하며 평행선을 내달렸다. 의료계 내에선 토론회 개최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나왔고 본격적인 의정 대화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지만, 의정이 힘들게 대화의 장에 나온 만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서울의대 비대위 교수들과 정부 측 인사들 사이에서는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놓고 뚜렷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정부는 충분히 과학적 근거로 증원 규모를 내놨는데, 정부가 참고한 3개의 전문가 연구에서 2035년에는 의사가 1만명 부족하다고 했다"며 "이 연구들에서 몇 가지 비현실적 가정들까지 보완해 보니 부족한 의사 수는 1만명이 아니라, 2배 이상 늘어나 사실상 (1년에) 4천명을 증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의대 증원과 관련한 의료계와의 협의 여부와 관련해서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별도 협의체를 만들어 37차례 협의했다. 의료계에 적정 증원 규모를 묻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종합병원협회만 3천명이라는 답변을 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서울에서는 늘었지만, 충남이나 경북 등 지역에서는 늘지 않았다"며 "(의사 증원보다는)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가게 해주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배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은진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도 "과도한 개혁 조치나 급진적인 변화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국민, 정부, 의료계가 한 팀이 돼 신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논의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를 놓고는 의료계 내에서 토론 대신 투쟁을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토론 주최 측인 서울의대 비대위가 의료계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온다.
경기도의사회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서울의대 비대위는 의료농단 사태의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 의대생들을 대변할 수 없다"며 "그들의 뜻에 반하는 의료 농단 주범들과 야합하는 이적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전공의 한 명이라도 건드리면 강력히 투쟁하겠다던 약속을 지켜 최후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를 정상화하는 것보다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안타깝다"면서도 "의대 정원과 의료개혁 정책을 책임지는 대통령실 수석과 의료개혁추진단장이 토론자로 나와 정부와 의료계가 만났다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환자들은 각자도생하며 버티며 견디고 있다"며 "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더라도 이런 만남이 어떻게든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환자들의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의정 간 대화의 자리가 계속 만들어질지는 미지수다. '2025년 의대 증원'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지 여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가능성은 당장은 높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의사가 위원의 절반 이상 참여하는 의사인력추계위원회를 구성해 의대정원 문제를 논의하겠다면서 의료계에 18일까지 위원을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의협은 지난달 30일 2025년 의대 정원을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며 위원을 추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2025년도 증원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며 물러서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계는 여당이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도 같은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성과가 있는 의정 대화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이탈 당사자인 전공의와 의대생이 적극성을 보여야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여야의정 협의체 등 대화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25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입장 변화 없다"고 재차 밝힌 바 있다.
결국 집단행동의 당사자인 전공의와 의대생 등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 이들의 허심탄회한 얘기를 듣고, 견해 차를 점차 좁혀나가는 것이 향후 의정 대화의 실마리를 풀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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