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부터 컨템포러리까지 풍성..춤으로 빚은 드라마,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갈라'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의 선율과 함께 무대 위에 남녀 무용수가 등장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피아노 반주와 바이올린 한 대가 빚어내는 느리고 고요한 선율 위에, 무용수의 몸짓이 더해진다. 음악에 몸을 맡긴듯 나란히 서서 몸을 기울이는 오프닝, 느릿하면서도 섬세하게 이어지는 춤이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듯 하다. 여성 무용수는 발레 무용수에게서 흔히 떠올리게 되는 화려한 튀튀와 토슈즈가 아닌 살구색 레오타드에 소프트 슈즈를 신었고, 남성 무용수의 복장도 단순하다. 두 무용수가 오로지 춤으로만 만들어낸 내밀한 드라마에 객석도 숨죽이게 된다.
8분 남짓 이어지는 이 춤은 안무가 크리스토퍼 윌든이 2005년 초연한 ‘애프터 더 레인(After the rain)’의 파드되(2인무). 춤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컨템포러리 발레다. 28~29일 양일간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2 에투알 갈라>의 두 번째 무대로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선보인다.

이번 갈라 공연은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가 1993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이후 29년 만에 여는 내한 공연인 데다, 지난해 동양인 최초로 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에투알’이 된 발레리나 박세은이 에투알 지명 후 처음 서는 고국 무대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10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번 갈라는 프랑스 발레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클래식 작품 뿐 아니라 국내에서 자주 접하기 힘든 컨템포러리 발레를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발레팬들에게 더욱 반가운 공연이다.
무용수들과 함께 방한한 발레 마스터 리오넬 델라노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안무가들의 작품을 모은 갈라”라며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 고전부터 세련된 현대 작품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예고했다. (관련 기사: 파리오페라발레의 ‘별’ 박세은 “에투알 첫 시즌 고국에서 마무리해 행복”)
공연 하루 앞서 27일 열린 프레스 리허설에서 박세은과 동료 무용수들은 “우아하고 섬세한 프랑스 발레의 강점”(박세은)을 살린 무대를 선보였다.

두 무용수의 내밀한 대화를 보는듯 했던 ‘애프터 더 레인’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은 박세은이 기대작으로 꼽았던 제롬 로빈스 안무의 ‘인 더 나이트’.
1970년 뉴욕시티발레단 초연작으로 별빛이 쏟아지는 밤, 파티장에서 빠져나온 세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박세은은 발레리노 폴 마르크와 함께 ‘제1 커플’로 나서 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연인의 춤을 보여줬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소속 피아니스트인 엘레나 보네이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에 맞춰 세쌍의 무용수들은 낭만적 서정부터 우울하고 위태로운 관계까지 사랑의 다양한 국면을 표현했다.
특히 이 작품은 발레단의 ‘별’이라 불리는 에투알들의 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무대다. 박세은과 폴 마르크를 비롯해 발랑틴 콜라상트, 제르망 루베, 도로테 질베르 등 발레단의 간판 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2부 무대에 오르는 ‘랑데부’와 ‘아모베오 파드되’ 역시 자주 볼 수 없는 컨템포러리 발레다. ‘랑데부’는 고전발레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솔직한 욕망을 다뤄온 실존주의 발레의 거장 롤랑 프티의 작품이다. 전쟁 말 프랑스 파리의 우울한 뒷골목 풍경을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이번 갈라에선 남녀 무용수가 마치 대결하듯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춤을 보여준다. 프티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죽음과 에로티시즘을 담은 작품으로, 보헤미안 청년이 검은 단발머리의 여성에게 살해 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아모베오’ 는 2014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돼 2년간 활동했던 뱅자맹 밀피예의 작품이다. 무용수 11명이 맨발로 역동적인 춤을 추며 끊임없이 무대에 등장하고 퇴장한다. 이번 갈라에선 남녀 무용수가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침대’ 아리아에 맞춰 관능적이고 강렬한 춤을 보여준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남녀 에투알이 선보이는 독무도 이번 갈라에서 만날 수 있다. 도로테 질베르는 미하일 포킨의 ‘빈사의 백조’를 첼리스트 문태국, 피아니스트 엘레나 보네이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발레리노 제르망 루베는 안무가 알리스테어 메리어트가 ‘빈사의 백조’의 남성 버전을 의도해 만든 ‘달빛’을 2부 첫 무대로 보여줬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그랑 파 클래식’ ‘로미오와 줄리엣’ 파드되 등 고난도 테크닉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클래식발레 작품도 무대에 올랐다.
공연의 피날레는 박세은과 폴 마르크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가 장식했다. 두 무용수가 60번의 점프와 22번의 리프트, 8번의 주테(jute) 점프, 24번의 아라베스크, 5번의 키스를 쉴 새 없이 퍼붓는 강도 높은 춤이다. 박세은과 폴 마르크는 이날 리허설에서 고난도 테크닉을 모두 소화하며 정확하면서도 우아한 춤을 보여줬다. 박세은은 “공연을 하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어려운 작품”이라며 “객석에서 보실 때 힘들어보이지 않도록,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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