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의 2025시즌은 ‘기적’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71승 6무 67패(승률 .514), 5위. 숫자만 보면 평범한 중상위권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을 들여다보면 쉽지 않은 고비를 수차례 넘겼고, 마지막 보름을 불태운 9연승으로 3.5%에 불과하던 포스트시즌 확률을 100%로 바꿔 낸 드라마가 있다. 구조물 사고로 홈을 잃었던 초봄, 선발진 붕괴와 부상, 순위 다툼의 피로까지 겹쳤지만 끝내 버티고, 마지막에 치고 올라간 팀. 2025년 NC는 그렇게 ‘실력+인기’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무엇이 이 반전을 만들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이호준 감독의 첫해 팀 빌딩 방향이다. 화려한 한 방보다 “수비-주루-집중력”을 기둥으로 삼았다. 스프링캠프부터 100m 캐치볼, 반복 수비, 상황별 번트·주루 훈련을 꾸준히 밀어 붙였고, 시즌 중에도 젊은 내야자원들의 실수를 “교정 과제”로 돌려 꾸준히 기회를 줬다. 이 과정은 초중반엔 시행착오를 부르고 압박을 키웠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기본기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접전 승부에서 빛을 봤다. 실제로 팀 전체 공격 지표는 리그 상위권(득점 3위, 출루·장타 상위권)이지만, 승부처에서 더 값진 건 주루와 수비였다. 도루 1위, 3루타 1위라는 숫자는 단순 스피드가 아니라 ‘타구 판단과 스타트, 다음 베이스를 노리는 태도’가 잘 작동했다는 증거다. 클러치에서 땅볼 한 개를 막아내고, 90피트 더 나가는 주루가 점수로 바뀌는 그림이 NC의 후반기 시그니처였다.

반면 명확한 약점도 있었다. 팀 평균자책 4.85(하위권), 특히 선발 ERA 5.15(리그 최하위)는 시즌 내내 발목을 잡았다. 외국인 라일리 톰슨이 17승으로 분전하며 다승 공동 1위까지 올랐지만, 토종 선발 뎁스는 얇았다. 이호준 감독이 초반에 6~7선발 확대 운영으로 ‘옥석 가리기’를 택했던 이유다. 이 전략은 초반엔 로테이션을 흔들리게 했고, 불펜 사용량을 늘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중반 이후엔 “누가 올라오고 누가 내려가는지”가 분명해지며 역할이 정리됐다. 불펜 축은 김영규–전사민–김진호–류진욱으로 이어졌고, 필요한 날엔 1+이닝을 과감히 맡겼다. 특히 막판 9연승 땐 선발이 짧더라도 5회 이전 과감한 교체, 필승조 6~8이닝 분할 투입 같은 ‘저점 회피’ 운영이 통했다. LG전에서 선발이 1회 내려간 뒤 김영규·전사민이 3이닝씩 가는 승부수는, 후반기 NC 운영의 압축판이었다.

타선은 ‘연결’이 강했다. 박건우–박민우라는 중추가 출루와 상황 타격으로 흐름을 잡고, 김주원이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도약해 수비와 주루, 장타에서 모두 팀을 끌었다. 김휘집, 김형준 같은 젊은 타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장타를 보태고, 맷 데이비슨이 한방과 승부처 장타로 존재감을 남겼다. 팀 타율은 .260으로 중간이지만, 득점권 타율 .283(2위)와 선발 전원 안타 같은 ‘집중력’ 데이터가 말해 주듯, 한 번 기회가 오면 점수를 쌓는 힘이 있었다. 홈런 128개로 파워가 없지도 않았다. 다만 이 라인업은 좌우 스플릿과 특정 구종 대응에서 기복이 있었고, 초반엔 스몰볼의 실패(무리한 스타트·주루사)로 흐름을 끊기도 했다. 감독이 시즌 중반 이후 번트·히트앤런을 ‘필요한 날만’ 꺼내는 쪽으로 미세 조정을 하면서 손실이 줄었다.

올해 NC가 특별했던 지점은 ‘악재를 핑계로 삼지 않은 태도’다. 개막 직후 홈구장 사고라는 큰 충격 속에 두 달 가까이 원정팀처럼 살았다. 이럴 때 팀은 흔히 두 가지 방향으로 간다. “이 정도면 선방”이라며 현실화하는 길, 혹은 “그래도 돌아가야 한다”는 길. NC는 후자를 택했다. 멀어진 팬심을 다시 부르기 위해 경기력으로 답했고, 실제로 하반기 창원NC파크는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지표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후기 성적에 직결됐다. 관중과 팀이 같이 올라가는 그림이 나왔고, 마지막 9연승은 ‘실력+분위기’가 서로 밀어 올린 결과물이었다.

그렇다고 이 성과가 우연만은 아니다. 7월 KIA와의 3대3 트레이드는 야수 뎁스를 두텁게 만들며 라인업의 ‘버티는 힘’을 키웠다. 또, 시즌 내내 라인업을 고정하지 않고 컨디션 좋은 타자에게 상·하위 타순을 열어 주는 유연성도 있었다. 물론 주전 의존이 과했던 날도 있고, 특정 선수의 타격 부진이 길어질 때 교체가 늦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감독 1년 차에 ‘원칙과 유연성’의 균형을 이 정도로 맞춘 건 높게 살 만하다. 더구나 시즌 내내 실책·수비 미스가 뽑히긴 했어도, 결정적 경기에서의 실수는 빠르게 줄었다. 이는 반복 훈련과 책임 분배의 산물이다.

이제 시선을 가을로 돌리면, NC의 키워드는 세 가지다. “선발의 최소 이닝”, “불펜의 분담”, “주루로 압박”.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짧다. 선발이 5이닝만 던져도 이긴다. 그래서 선발의 질보다 “빨리 흔들릴 때 버티는지, 아니면 신속 교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호준 감독이 정규시즌 막판에 보여준 과감한 결정을 한 번 더 꺼낼 타이밍이다. 불펜은 역할을 명확히 쪼개야 한다. 가장 좋은 투수에게 가장 많은 타자를 맡기는 방법(브리지 1.1~1.2이닝)과, 매 이닝을 다른 타입으로 던지게 하는 방법을 상대 타선 구조에 맞춰 섞어야 한다. 올가을 일기예보·구장 특성·대타 카드 성향까지 반영해 ‘좌/우·높낮이·구속대’ 배치를 미리 짜두는 게 포인트다. 그리고 공격에선 초구 스트라이크 성향의 투수에게 초구 강공, 느린 스타터에게는 초반 번트·히트앤런으로 수비를 흔드는 패턴을 준비해야 한다. NC의 장점인 주루는 가을에서 더 큰 무기가 된다. 단, 3루에서의 무리한 스타트, 포수 송구 능력이 좋은 팀을 상대로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성공률 70% 아래의 도루·과감한 홈 쇄도는 단기전에서 바로 독이 된다.

개인별 포인트도 짚자. 김주원은 수비 범위와 송구 일관성이 팀의 실점을 줄였다. 포스트시즌에선 바운드 변형·세컨드 움직임이 많은 구장(예: 사직·대구)에서도 에러를 최소화해야 한다. 박민우의 컨디션은 공격 템포 그 자체다. 출루에만 그치지 않고 2루에서의 리드·태그업 판단이 점수를 만든다. 박건우는 여전히 해결사. 스윙을 작게 가져가 라인드라이브를 늘리는 날, NC는 쉽게 이긴다. 톰슨은 초구 커맨드가 생명이다. 초구 직구로 스트를 넣으면 포크·슬라이더가 산다. 반대로 초구 볼이 쌓이면 불리한 카운트에서 장타를 맞는다. 불펜에선 김영규의 롱릴리프가 보석 같은 카드다. 선발 조기 강판 시 2~3이닝 제로를 깔아주는 날, 승률이 확 튀었다. 전사민–김진호는 좌·우 타자 분할 매칭을 강화해 ‘한 타자 더’ 욕심을 줄이는 게 좋다. 류진욱이 언제 돌아오느냐, 그리고 돌아오면 어느 이닝을 맡느냐도 변수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NC가 “관중과 함께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전반기엔 딱 한 번이던 매진이 후기엔 일상이 됐다. 마지막 홈경기엔 가득 찬 관중이 막판 폭발력을 밀어 줬다. 구단과 지역사회 사이에 어색함이 남았던 초여름과 달리, 지금 창원은 야구로 하나가 된다. 이 온도는 포스트시즌에서 분명 힘이 된다. 선수 입장에선 한 타석 더, 한 구 더 힘을 얹게 된다. 그 작은 차이가 단기전의 큰 차이가 된다.
물론 숙제도 명확하다. 내년을 보자면 토종 선발 뎁스 보강이 1순위다. 파트타임 오프너·불펜데이로 시즌을 건너뛸 순 있어도, 장기적으로 불펜 부하가 커진다. 올 가을만 놓고도 “등판 간격 관리”와 “투구 수 제한”은 민감한 주제다. 9연승 피날레의 감동을 유지하되, 피로 누적의 신호(높게 뜨는 포심, 변화구 릴리스 지연, 사구 증가)를 수치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타선은 좌완 파워피처 대응 플랜B가 필요하다. 번트·주루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경기에서, 초구 체인지업·백도어 슬라이더에 대한 준비 스윙이 있어야 한다. 수비에선 더블플레이 완성률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선발 ERA는 자동으로 내려간다.

정리하자. 2025 NC는 약한 팀이 아니었다. 부상을 버티고, 홈을 잃고, 여론의 벽을 넘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버틴다 → 기회를 만든다 → 몰아친다’라는 승리의 루틴을 후반기에 굳혔다. 9연승은 우연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였다. 이호준 감독은 한 시즌 동안 원칙을 심고, 필요할 때 칼을 빼는 법을 배웠다. 선수들은 서로의 약점을 가려 주고 강점을 키웠다. 그래서 지금의 NC는 ‘가을에 위험한 팀’이다. 강팀을 이기는 공식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마지막 계단에서의 집중력이 올라가 있다.
가을은 디테일의 계절이다. 초구 하나, 태그 한 번, 던지지 않은 볼 한 개가 시리즈를 가른다. NC가 지금까지 보여 준 집요함과 유연함을 포스트시즌에서도 반복한다면, 3.5%를 100%로 만든 그 손으로 또 하나의 확률을 바꿀 수 있다. 봄에 멈췄던 함성이, 가을밤 창원에 더 크게 울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건 하나뿐이다. 마지막까지, 오늘의 야구를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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