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휴대폰 등장 뒤 전화번호 못 외우듯, AI 의존땐 연구 능력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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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무작위 숫자 7개로 된 전화번호를 50개씩은 외웠지만 이제 인간은 그걸 못하죠. 휴대전화가 있으니까요. 연구자들이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AI)에 위임한다면 인간이 스스로 연구할 능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허 교수는 "현재 시점에서 AI는 대단한 문제 해결 전문가이지만 이론 구축에서는 아직 약하다"며 "인간 수학자들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다가 가끔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와서 그 전 세대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의 돌파구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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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경쟁에 답만 빨리 내는 AI… 수학 본질적 가치-연구에 해 끼쳐
무한한 인내-고통 견뎌야 하는 수학
AI가 고통스러운 단계 해주는 덕에, 우린 ‘맛있는’ 창조에 집중할수 있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AI와 수학은 ‘협업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경계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휴대전화 등장과 함께 전화번호 암기력을 잃었듯, 인간은 사용하지 않는 능력을 생각보다 쉽게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도구로서 AI는 인류 사상 최고의 발명이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를 망각하지 않는 수준에서 잘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 “빅테크 경쟁에 답만 낸 수학 아쉬워”
앞서 허 교수를 포함해 테런스 타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등 역대 필즈상 수상자 25명은 “AI 기업과 수학계의 목표가 심각하게 어긋나 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내 화제가 됐다. 오픈AI가 수학계 7대 난제로 불리는 ‘나비에-스토크스 문제’를 88시간 만에 해결했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세계적 수학자들이 성명을 낸 것이다. 빅테크가 기술 과시를 위해 수학 난제 풀이를 활용하는 것이 연구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허 교수는 “AI 사용과 규제 정도에 대해선 (성명에 참여한) 25명이 모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만한 뼈대 부분만 발표가 됐다”며 “수학계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AI 논문이 본질적으로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인 글이라기보다는 본인의 해법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이 이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돼 있는 이 논문이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수학의 본질적인 가치가 (답이) 맞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AI가 더 잘하게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비에-스토크스 논문에 대해서도 “빅테크들이 난제의 해답을 먼저 찾고자 속도 경쟁을 하다 보니 빠르게 답만 낸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아름다운 수학을 창조해 내고 서로가 배우며 발전하는 선순환이 있었을 텐데, 이런 식으로 답을 발표해 그럴 기회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 우려점이다. 허 교수는 “특정한 한두 개의 기업 모델을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며 “만약 우리가 머리로는 연구를 할 줄 모르게 됐는데 기업들이 ‘한 달에 200달러가 아니라 2만 달러씩 내라’고 하면 곤란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 “AI는 ‘격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수학 친구’”
우려점에도 불구하고 허 교수는 AI를 도구로서 사용한다면 어려운 수학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선대 수학자들의 유산을 효율적으로 상속받게 해주는 도구”라며 적극적으로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즈상 수상자지만 어린 시절 ‘수학 천재’는 아니었다는 그는 “ 항상 억울하게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수학이 머리 좋은 사람들한테 너무 유리한 분야라는 것”이라며 “수학경시대회에서 매번 우승하고 복잡한 계산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한한 인내 속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구조를 창조해 내는 게 수학의 가장 맛있는 부분인데 그 전 단계가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AI가 그 ‘지난한 과정’을 해주고, 나는 수학의 가장 맛있는 부분인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과정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가 수학 동료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격 없이 물어볼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며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일까 봐, 체면을 차리느라 공개적으로 던지지 못하는 질문을 AI와 격 없이 나누면 새로운 지식을 훨씬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AI와 수학자는 서로 다른 진화 과정을 가진 지성체”라며 서로의 역할이 각각 유효하다고 본다. 허 교수에 따르면 수학은 ‘문제 해결’과 ‘이론 구축’ 두 갈래로 나뉜다. 문제를 풀어 답을 내는 수학과 이론을 구성해서 새로운 현상을 해석하는 수학이다.
허 교수는 “현재 시점에서 AI는 대단한 문제 해결 전문가이지만 이론 구축에서는 아직 약하다”며 “인간 수학자들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다가 가끔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와서 그 전 세대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의 돌파구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인류 역사를 통해 쌓아온 이 같은 능력을 잃지 않으려면 AI를 활용하되 동시에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허 교수는 “우리가 수천 년간 개발해 온 값진 능력을 5년, 10년 안에 개발된 AI에 의해 잃는 것은 불필요한 도박”이라고 했다.
김소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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