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벌써 나온 지 두 달이 다 됐는데, 아직도 핫하다.

OST가 빌보드차트에 오르고, 유명 가수들과 댄서들도 각각 노래나 댄스를 커버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주인공 루미가 팬들 앞에서 ‘Golden’을 부르는 무대는 특히 장관인데, 무대 뒤 이 그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유튜브 댓글로 ‘케데헌 무대 뒤 그림을 자세히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일단 요 그림의 정체는 ‘일월오봉도’. 뭔가 익숙하다면 사극 팬이거나 게임 ’문명’을 좀 해봤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평소에 쓰는 만 원짜리를 유심히 봤던 왱구님도 있을 테다. 그만큼 조선왕조의 상징으로 은근 자주 쓰이는 그림이다.

서울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이 그림의 오리지널판을 여럿 볼 수 있다. 왕이 앉는 ‘어좌’ 뒤에 병풍으로 배치하거나, 역대 왕을 그린 ‘어진’ 뒤에 배경으로 놓는 용도였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실 휘장과 비슷한 용도인 셈.

현재 구치소에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아예 추석 대국민 메시지 영상 배경으로 이 일월오봉도를 쓰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Uhh…더 이상은 말을 아껴야겠다.

이 그림은 어쩌다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그림이 됐을까.

문서상 첫 등장은 17세기 초인데, 그전부터 왕실에서 썼을 순 있는데 임진왜란 중 기록이 많이 타버려 정확히 알 순 없다.

그래서 학설도 갈리는데, 조선 건국공신 정도전이 새 왕조를 위해 일월오봉도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고, 왜란 이후 왕권을 재강화하기 위해 그린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어쨌거나 현재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학설은 이 그림이 당대 성리학·도교적 세계관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상징한다는 거다. 좌우 양쪽의 달과 해가 각 ‘음’과 ‘양’이고, 다섯 개 봉우리가 세상을 구성한다는 다섯 가지, 즉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라는 설명이다.

취재하다 알게 된 건데, 뜬금없지만 ‘도믿걸’로 유명해진 대순진리회도 이 일월오봉도를 쓴다.

스스로를 ‘옥황상제’라 칭한 교주의 그림 좌우로 장식해놓았다는데, 조선왕조의 상징을 본인들이 왜 갖다 쓴다는 건지 쉽게 이해 가진 않는다.

일월오봉도는 무당들이 쓰기도 하는데, 헌트릭스가 쓰는 무기가 무당들의 소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무당용품 쇼핑몰에선 이렇게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조선왕조의 상징이었던 일월오봉도를 여기저기서 갖다 쓰는 풍조는 이미 조선 말기부터 시작됐다. 왕실의 장식이 대중화됐다고 보면 된다.

[명세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19세기에 ‘한양가’라고 하는 한양의 그런 풍물 같은 거를 막 읊는 시가 있거든요. 거기서 보면 광통교 아래 병풍을 파는데 거기에 일월오봉도도 있고 뭐 모란도도 있고 아마 그냥 팔았던 것 같아요, 시장에서도.

(점집에 있는) 관우상 있잖아요. 관우 사당에도 그 관우상 뒤에 오봉도를 설치했었어요.

현재도 서울 동묘에 관우를 신으로 모신 ‘동관왕묘’에 가면 관우상 뒤에 일월오봉도를 볼 수 있다.

헌트릭스 무대를 자세히 뜯어보면 조선왕조를 연상시키는 또다른 숨은 요소도 존재한다.

바로 단청 무늬를 형상화한 듯한 무대 모양. 고궁에 갔을 때 지붕 처마 끝에 그려진 그 꽃문양이다.

단청무늬는 헌트릭스 멤버 중 조이가 입은 이 옷에도 들어가 있다.

다른 멤버인 루미, 미라의 옷에도 구름, 산 등 전통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연꽃은 단청에서 볼 수 있고(조이), 구름무늬는 조선시대 남자들 복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양 중 하나고요. 산 무늬는 십장생문 등에서 자주 확인됩니다.

이 의상에 달린 노리개도 선조들이 쓰던 색깔과 모양 그대로라고 한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기본적으로 오방색이 중심이고, 거기 간색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노리개의 색은 얼마든지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지방석매듭을 비롯해 생쪽매듭, 나비매듭으로 만들었고 노리개에 달린 술은 낙지발술, 딸기술 등 전통기법을 활용한 겁니다. 다만 방울, 꽃 등은 전통적이진 않고 현대적 해석으로 창작된 걸로 볼 수 있고요.

케데헌에는 우리의 전통문화적 요소가 넘쳐난다.민화의 호랑이와 까치, 헌트릭스의 무기들, 루미의 댕기머리도 그렇다.

또 영화 초반 요괴 두목의 얼굴은 경주 신라 유적지에서 출토된 귀신 혹은 도깨비 얼굴(귀면와)에서 따온 걸로 보인다.

작품 하나에 들어간 수많은 한국 전통문화. 그만큼 제작진이 한국을 향한 애정을 탈탈 쏟아 넣었다는 게 느껴진다.

세계적인 흥행 덕에 케데헌을 ‘겨울왕국’ 같은 시리즈로 제작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는데, 더 성공해서 K팝뿐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도 더 널리 알렸으면 싶다.